예수진이 고개를 돌리니 계지원의 잘생긴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지금 몇 시예요?"입을 연 예수진은 자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목소리가 왜 이렇게 된 거지?목소리가 갈라져 듣기 싫었다.계지원은 그녀의 목소리에 웃음이 터졌다.그건 분명한 비웃음이었다."웃지 마요."예수진은 발끈했다.그녀가 화를 내면 낼수록 계지원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갔다.예수진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웃지 말라고!'그녀도 목소리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예수진에 의해 입이 막히자 그는 겨우 웃음을 멈출 수 있었다.웃음을 멈춘 후에도 작은 손이 여전히 그의 입을 막고 있었다.계지원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에 입 맞추었다.따듯하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지자 예수진은 놀라 손을 빼냈다.대단한 테크닉은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에 그녀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미안해요. 어젯밤 참을 수 없었어요."계지원은 진지하게 사과했다.그의 말에 예수진은 어이가 없었다.계속 소리치며 거절했으나 계지원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바람에 목소리가 다 쉬어버렸다."다음엔 참아 볼게요.""칫."예수진은 할 말을 잃었다.함께 한 두 번 중 그는 한 번도 자제해 본 적이 없었다.모르는 사람이라면 그가 오랫동안 솔로였을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순간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프로그램 녹화 중 계지원은 그녀와 처음이었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이후 계지원이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덧붙이지 않았지만 예수진은 그 인터뷰 내용이 거짓이었다고 혼자 단언했었다.그러나 지금.예수진은 자신 이외에 다른 여자는 없다고 했던 그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배고파요?"계지원이 물어왔다.아까 자신의 행동에 미안했는지 다른 화제로 돌린 것이다.그제야 예수진은 정신이 돌아왔다.점심과 저녁 모두 먹지 않았으니 배가 너무 고팠다."조금 기다려요. 먹을 것 가져올게요."계지원은 안간힘을 쓰며 침대에서 일어났다."내가 갈게요."예수진이 그런 그의 모
예수진은 급히 다른 화제로 돌렸다.[늦은 시간인데 아직 안 잤어?][늦은 시간에도 너는 문자를 보냈잖아?]예수진은 할 말을 잃었다.소이연은 또 답장을 보냈다.[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와서.][내일 루카스랑 임아영이 결혼하는 것 때문에 그래?]예수진이 허를 찔렀다.[그거랑 상관없어. 그냥 불면증이야.][정말?][그래.] [말해줄 비밀이 있다고 했잖아?]소이연은 한참이나 답장이 없었다.예수진은 그 시간 동안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그녀는 성격이 급했지만 소이연은 덤덤한 성격이었다.예수진은 그런 소이연의 성격에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예수진이 답장을 쓰고 있는데 소이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무슨 비밀이기에 통화로 얘기하는 거지?예수진은 궁금해서 급히 전화를 받았다."이연아.""목소리가 왜 그래?"소이연이 미간을 구겼다."..."예수진은 자신의 목이 쉰 것을 잊어버렸다."감기 걸린 거야?""아니.""그럼 목소리가 왜 이래? 왜 이렇게 된 거야?""어..."예수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목이?"똑똑한 친구여도 너무 피곤했다. 아무런 비밀도 존재할 수 없으니."축하해."예수진이 아무런 대답도 없었으나 소이연은 자신의 추측을 확실시했다."사실 좀 힘들었어.""응?""그게..."예수진은 참지 못하고 말을 털어 놓았다.원래는 소이연의 얘기를 들으려 했었으나 어느새 예수진이 쉰 목소리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소이연은 듣고 난 후 한참이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내가 욕심이 많은 거야?"소이연이 급하게 대답했다."아니. 하지만 네가 더 적극적이여도 될 것 같애.""너는 해 봤어?""그런 기회가 없었어.""맞다. 너 아직 혼자지.""수진아, 할 말 있어. 나 연애 시작해.""헐!"소이연의 말에 예수진은 깜짝 놀랐다.비밀을 들으려고 통화를 시작했다는 게 이제야 기억이 났다.그러나 이 비밀은 너무나 놀라웠다."연애하기 시작했다고? 루카스?"예수진이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은 후, 예수진이 고개를 돌리자 방문 앞에서 휠체어에 앉은 계지원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언제부터 여기서 있었단 말인가.그제야 그가 먹을 것을 가지러 나간 것이 기억났다.애를 낳은 후 기억력이 빠르게 감퇴해졌다.계지원은 휠체어를 밀며 팥죽을 들고 들어왔다.사실 예수진은 달콤한 죽을 먹고 싶었다.계지원에게서 팥죽을 받아 들고 예수진은 허겁지겁 먹으면서 물었다."먹었어요?""아니요.""...""먼저 먹어요. 나는 조금 있다가 먹을게요.""같이 먹어요.""당신이 부족할까 봐요.""한 그릇만 남은 거예요?""그건 아니에요.""그럼 혼자 한 그릇 덜어 먹어요."예수진은 진짜 할 말을 잃었다.계지원이 임신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멍청해진 거지?갑자기 그가 당한 교통사고가 생각났다.그때 진통제를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 건가?"네."계지원은 낮게 답했다.휠체어를 밀면서 떠나려고 할 때 걔자원아 갑자기 물었다."소이연 씨가 연애를 한다고요?""들었어요?"예수진은 팥죽을 먹으면서 답했다."목소리가 너무 커서요.""네. 연애 한대요, 심문헌이랑.""잘됐네요 "계지원은 낮게 중얼거렸다."잘 됐다고요?"예수진은 살짝 발끈했다."이연은 육현경이랑 함께 해야죠?""육현경 씨는 이미 죽었어요. 이연 씨가 평생 혼자 살 수도 없잖아요.""육현경이 죽지 않았다면요?""사람은 죽어서 환생할 수 없어요.""말해도 믿지 않을 거예요."예수진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어찌 됐든 소이연은 이미 심문헌과 연애를 시작했다.계지원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어도 스트레스만 던질 뿐이다."이연이가 서울 쪽 일만 마무리되면 심문헌 씨랑 같이 만나재요.""네."계지원은 심드렁하게 답했다.소이연이 연애를 시작한다는 소식에도 그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팥죽 안 먹어요?"예수진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이미 그녀는 한 그릇을 비웠다.계지원은 고개만 끄덕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예수진이 왜 그러냐고 묻기 전에 계지원은 큰 용기를
소이연은 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랬다.그녀도 인정했다.내일 육현경과 임아영의 결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이미 모든 것을 받아 들였기에 무덤덤할 수 있었다.그러나...계속 마음이 불편했다.아마 육현경이 결혼을 하고 나면 괜찮아질 수도.소이연은 몸을 뒤척이며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그때, 카카오톡 알람이 울렸다.소이연은 처음에 예수진인줄 알았다.그러나 예수진은 몇 분 간격씩 자주 메세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핸드폰을 들어 올리자 심문헌이 보낸 메세지임을 알았다.[자는 건가요? 이미 서울에 도착했어요.]소이연은 마음이 살짝 아파왔다.심문헌이 서울에 온다는 말도 없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다음 날 둘은 서울에서 함께 놀 생각이었다. 그러나 심문헌은 일 때문에 급히 낙성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렇게 두 날 동안 연락도 없었기에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깊은 밤에 소이연은 급히 심문헌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디예요? 금방 비행기에서 내린 건가요? 데리러 갈까요?""아직 안 잤어요?"예수진과 똑같은 그의 에 소이연은 미간을 구겼다.그녀를 방해할까 봐 밤에 메세지를 가득 보낸 두 사람이었다.어쩌면 심문헌과 예수진은 잘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예수진이 그를 만난다면 아마 그에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아직요.""내일 육현경의 결혼 때문에요?""알면서 물어요?" 소이연은 투정 부리듯 되물었다."... 상처받았어요."심문헌은 가슴 아프다는 듯 입을 열었다."됐어요. 어디 있어요? 데리러 갈게요.""괜찮아요. 형님 보고 데리러 오라고 했어요.""..."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워졌단 말인가."안 오겠다고 해서 안 오면 당신을 부르겠다고 하니까 오더라고요."심문헌은 우쭐대듯 말했다.천우진은 항상 심문헌의 말을 결국 잘 따랐다."결국 이연이를 깨웠네요."전화기 너머에서 천우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형님, 제가 깨운 게 아니라 옛애인 때문에 이연 씨가 잠에 들지 못한 겁니다."심문헌은 불쾌감을 내뿜으며
심문헌은 심드렁한 표정에서 소이연의 기습 키스로 갑자기 눈을 번쩍였다.그는 눈을 크게 뜨고 소이연을 바라보았다.믿을 수 없었다. 소이연이 먼저 키스하다니.너무... 놀라웠다!"빨리 자요."심문헌이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아서 소이연은 얼굴이 뜨거워났다.이럴 줄 알았으면 입 맞추지 않았을 것이다.심문헌은 자신의 기분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했다.그는 너무 기뻐 자리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이연 씨."소이연이 뒤돌아 떠나려 할 때 심문헌이 그녀를 잡아당겼다.소이연은 가슴이 떨려왔다.그녀는 다시 한번 입 맞춘 것에 대해 후회했다.그는 아마 더 많은 것을 원할 것이다.역시나, 심문헌은 그녀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그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소이연의 머리는 그의 품 안에 완전히 가두어졌다.숨을 쉬기 힘들어 소이연은 발버둥 쳐 멀어졌다."문헌 씨, 나를 죽일 작정이에요?"소이연은 숨을 헐떡이며 발끈해 물었다."그럼 너무 기쁠 것 같아요."심문헌은 활짝 웃으며 되받아쳤다."살인의 변명이 되지는 못해요."심문헌은 화가 잔뜩 난 소이연의 알굴을 쓰다듬었다."내가 어떻게 당신을 죽이겠어요. 사랑해도 시간이 부족한데."소이연은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그를 바라보면서 벗어나려 했지만 눈앞의 심문헌의 열정을 바라보며 입가를 맴돌던 말은 끝까지 뱉지 못했다.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소이연은 떨려왔다.그녀는 지금 감정이 기대 때문인지 다른 감정인지 헷갈렸다...너무 빠른 느낌이었다. 사이가 확립되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키스를 해도 되는 건가?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끝내 참았다.소이연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은 그에게 먼저 입 맞추어도 되고 그는 안 되다니.사람이 너무 이기적이면 안 된다. 짧은 갈등의 시간을 거친 후 소이연은 눈을 꼭 감았다.조금씩 익숙해지면 된다.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으니 되돌릴 수 없다.그러나 그때."뭐 하는 거야!"외침이 들려와 소이연과 심문헌은 마치 잘못된 행동을 한 것처럼
"결혼을 해야 입 맞출 수 있는 건가요? 조선시대에서 오셨나요? 결혼 전에 미리 맞추는 것 몰라요? 고지식하게!""난 몰라요. 아직 결혼 전이니 합법적이진 않죠.""..."심문헌은 기가 찼다."이봐요, 천우진 씨..."천우진은 심문헌의 말을 무시하며 그의 손에서 소이연의 손을 빼냈다.소이연운 심문헌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요."천우진의 협박에 심문헌은 이를 악물었다.화가 났으나 그는 모든 화를 삼켰다.그런 모습을 보며 소이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이유는 모르지만 심문헌은 천우진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천우진은 심문헌을 손바닥 위에 놓고 놀았다."가서 자."천우진은 어두운 얼굴로 소이연에게 명령했다.소이연은 심문헌을 돌아보았지만 천우진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소아연은 어쩔 수 없었다.천우진이 결정한 일은 그녀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문헌 씨도 빨리 쉬어요.".소이연은 부드럽게 말했다."그래."천우진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소이연이 뒤돌아 떠나자 등 뒤에서 심문헌의 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천우진, 내가 마음에 안 들죠? 마음에 안 들면 말해요. 한판 싸울까요?""미친."천우진이 냉정하게 말을 뱉었다."빨리 가서 자요.""자기는 뭘 자. 우리 한판...악!"심문헌의 비명에 소이연은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그냥 말싸움을 하는 줄 알았던 둘이 진짜 싸우다니.소이연이 뒤를 돌자 천우진이 심문헌을 어깨에 둘러메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 모습은 참으로 묘했다."천우진, 날 내려놔요."심문헌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고 그들은 결국 방 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싸웠다."조심해요. 날 넘어지게 하지 말고."소이연은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모든 일은 시간이 흐르면 다 지나간다.시간이 흐르면 모든 건 그렇게 옅어져 갈 것이다.모든 건 잊혀질 것이다... ... 다음날.소이연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어
차는 쇼핑센터의 지하 주차장에 세워졌다.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머리가 삐죽 나온 몰골을 보고도 쇼핑하러 올 생각을 하다니."내려요."심문헌은 신사답게 그녀에개 문을 열어주었다.소이연은 창피하여 내리고 싶지 않았다."빨리요."심문헌은 다시 한번 재촉했다."문헌 씨, 내가 이 꼴인데 괜찮아요?"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닐 믿어요."소이연은 이를 악물고 끝내 차에서 내렸다.그를 한번 믿어보자.둘은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사람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아니면 소이연은 쥐구멍에 숨고 싶었을 것이다.목표층에 도착하자 심문헌은 소이연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를 나왔다."문헌씨, 내 옛 애인이지 당신의 옛 애인이 결혼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더 열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소이연은 심문헌이 뭘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래서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그의 방식은 참으로 독특했다.소이연은 결국 그에게 이끌려 엘리베이터를 나왔다.의외로 쇼핑센터에는 직원 빼고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직원들은 매일 부우한 고객을 상대로 하기에 잠옷을 입고 나온 소이연을 빤히 쳐다보는 실례는 범하지 않았다."왜 누구도 없는 거예요? 너무 이른 시간인가?"소이연은 이상했다."형님더러 비우라고 했으니까요.""..."심문헌의 말에 소이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렇게 둘은 고급 명품 샵으로 들어갔다.소이연은 놀란 눈빛으로 심문헌을 돌아보았다."옛 애인이 결혼하는데 아름답게 꾸며야죠. 그렇고말고."심문헌이 아침부터 그녀를 데리고 나온 건 결혼식에 누구보다 아름답게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었다.소이연은 하마터면 그가 자신에게 고백이라도 하는 줄 착각할 뻔했다."아가씨, 여기로 모시겠습니다."직원이 열정적으로 다가오자 소이연은 힐끗 심문헌을 쳐다보았다."가서 바꿔 입어요. 예쁘게 꾸며서 오늘 주인공이 돼야 해요." 유치하기 짝이 없었지만 소이연 거절하지 않았다. 그의 보살핌은 정말 따듯했다.소이연운 심문헌이 준비한 드레스를
"선남선녀인가요?"소이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직원이 답했다."그럼요. 두 분은 정말 선남선녀에 하늘이 맺어준 짝이에요.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어요."심문헌은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그의 웃음은 얼굴에서 떠날 줄 몰랐다.소이연은 직원에 이끌려 메이크업을 받으러 들어갔다.심문헌은 그동안 옆의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다른 사람이라면 핸드폰을 놀거나 잡지를 보면서 시간을 때웠을 텐데 심문헌은 달랐다.그는 계속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너무 쳐다보아서 소이연에게 메이크업을 해주던 직원도 쑥스러워 한마디 하였다."이연 씨를 잡아먹겠네요?"소이연은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문헌 씨, 할거해요. 계속 쳐다보지 말고요."소이연이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내 사람 보고 있어요."심문헌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당신이 바로 내 거잖아요. 다른 여자는 보지도 않았어요."직원들도 그의 말에 빵 터졌다.소이연은 쑥스러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소이연은 메이크업을 마쳤다.그녀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시뿐사뿐 심문헌의 앞으로 걸어 나오며 활짝 웃었다.그 순간, 심문헌은 그녀에게 자신의 심장이라도 바칠 수 있었다.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바라보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들 만큼."가요."소이연이 입을 열었다.지금 결혼식장으로 가면 시간이 딱 알맞을 것이다.소이연은 적극적으로 심문헌의 팔짱을 끼었다.심문헌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왜 그래요?""다리가 풀려서요.""네?""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겠어요.""문헌 씨."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애정 표현을 하는 그 때문에 소이연은 너무 쑥스러웠다."거짓말 아니에요."심문헌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럼 옷 갈아입고 올게요.""안 돼요."그가 소이연을 막아 세웠다."안 갈 거예요?"심문헌은 코를 만지다가 그녀와 함께 쇼핑센터를 나와 차에 들어섰다.그때 천우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소이연이 받았다."결혼식장에 가는
그리고는 하지수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지수의 입술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청 부드럽네.”야한 꿈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남자의 행동에 하지수는 화가 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이제 좀 정신 차리나 했더니 꿈속에서까지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 여자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문수는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문수 씨, 눈 좀 떠봐.”생리도 끝나지 않은 와중에 이렇게 꿈을 꾸는 남자랑은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수는 이번에는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아까보다 좀 더 힘을 주어 흔들었다.“무슨 꿈이 이렇게 진짜 같아?”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몸에 어지러워진 송문수는 그제야 눈을 뜨며 말했다.“그럼 꿈이 아닌가 보지.”“꿈이 아니라고?!”하지수가 짚어줘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한 송문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꿈에 누가 나왔는데 그래?”누가 나오긴, 송문수의 꿈에 나올 사람은 늘 하지수 한 명뿐이었다.전에는 꿈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되어버려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하지만 송문수는 턱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은 굳이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나 어떻게 잠든 거야?”평소에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 하지수 앞에만 서면... 속마음을 제대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피곤했나 봐.”진실이라는 게 알아서 다 좋은 건 아니었기에 하지수도 모른 척 말을 돌리는 송문수를 따라가 주었다.괜히 끝까지 캐물어서 상처받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쩌다 쉬는 날도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얼른 씻고 자, 내일부터 또 출근해야지.”“너는?”하지수의 재촉에 방으로 들어가던 송문수는 갑자기 걸음을 멈
“맛있어.”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간 남자가 이런 맛을 낸 건 객관적으로 대단한 일이라 하지수는 송문수가 그토록 바라는 칭찬을 결국 해주었다.사실 이미 사약 같은 맛일 거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꽤나 달달해서 하지수도 놀라웠다.한편 원하던 칭찬을 들은 송문수는 신나서 채널을 돌리며 물었다.“이거 맞지?”“응.”“법률 채널이네?”여자들은 다 예능이나 멜로 드라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울리지 않게 이런 지루한 채널을 좋아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법 좋아해서 대학 때도 법 배운 거야. 난 이런 거 좋아해.”“그래.”하지수의 말에 그제야 그녀가 변호사였다는 걸 떠올린 송문수였다.그렇게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포기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한 번 더 감동받은 송문수는 저도 하지수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나도 같이 봐.”그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이렇게 완벽한 판례분석이라면 송문수도 관심 있어 할 것 같아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접하지 않던 분야라 처음엔 싫어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 다룬 사건들을 계속 보다 보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법률 지식까지 알게 되니 그거야말로 일거양득일 것이다.역시나 하지수는 법조인답게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는데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잘 보던 송문수는 시간이 지속될수록 점점 지루해하고 있었다.당장이라도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던 그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티비에 빨려 들어갈 듯 열중하고 있던 하지수가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송문수는 이미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져 있었고 고개도 반쯤 돌아가 있는 누가 봐도 불편한 자세를 하고도 잘 자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지루하면 지루하다고 말이라도 하지.하지수는 미련한 송문수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담요도 덮어주었다.하지만
송문수를 따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가지고 갔던 생리대로도 부족했었는데 양까지 많았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생각을 마치고 나니 심심해진 하지수는 자연스레 티비를 켜고 법률 채널을 틀어놓았다.주방에서 돌아치는 송문수는 진작에 잊은 하지수가 전형적인 판례들을 넋 놓고 있는 와중에 송문수는 마침내 흑설탕물을 다 끓여냈다.맛없는 걸 가져다주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먹어보고 괜찮으면 그때 가져다주라는 소이연의 당부가 있었기에 송문수는 맛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맛이어서 그는 용기를 내어 그걸 하지수에게로 들고 갔다.“이게 뭐야?”하지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 친구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지만 송문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흑설탕물이야. 뜨거울 때 마셔.”“뭐?”“생리 기간에는 이런 거 마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나 주려고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당연하지, 내가 생리 올 리는 없잖아.”진지하게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어떨 때는 신기하리만치 제 마음을 몰라주다가 또 이렇게 어설픈 모습으로 저를 위해주는 걸 보면 그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송문수는 정말 밉지만 싫어할 수가 없는 존재였다.“고마워.”낮에 있었던 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살짝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흑설탕물 한번 가져다줬다고 하지수의 화는 또 사르르 풀려버렸다.“어때?”그런데 하지수가 마셔보려고 컵을 든 순간 송문수는 맛을 물으면서 자연스레 채널을 돌려버렸다.한창 판례를 보고 있었는데 또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의 행동에 하지수는‘사랑이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사에 깊은 공감이 가 순간 한숨을 쉬어버렸다.정말 송문수에게는 기대를 품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기대하는 족족 그것들이 실망으로 이어지니 말이다.한편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쉰 하지수를 본 송문수는 당황하며 물었다.“맛없어?”“내가 먹어볼 때는 맛있었는데? 너 생리만 아니었으면 내가 다 마
가슴을 졸이며 부둣가에 도착하니 술을 마신 송문수 때문에 하지수는 역시나 운전석에 앉아야만 했다.진짜 이런 데이트를 하는 건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빴던 하지수는 집으로 가는 동안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삐진 티를 내고 있었지만 송문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부르며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송문수는 오늘이 아주 완벽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집으로 돌아온 하지수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송문수는 그 속도 모르고 또 그녀를 붙잡았다.“왜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 좀 앉아있지.”아직 이른 시간이라 송문수 딴에는 하지수와 함께 티비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나 씻고 싶어.”“나중에 씻어.”“보트 탈 때 몸이 다 젖어버려서 아직도 추워. 나 생리 와서 생리대도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싶어.”하지수의 말을 듣던 송문수는 그제야 여자가 생리 기간일 때는 더욱더 신경 써서 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간만의 데이트라 너무 신난 탓에 그만 까먹어버린 것이다.“먼저 보고 있어, 나 금방 씻고 나올게.”“응.”하지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송문수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단톡방에 문자를 보내보았다.[생리 기간에는 어떤 걸 신경 써줘야 하는 거예요?][송문수, 너 생리 기간도 못 참고 하려고 그러는 거야? 짐승 같은 놈.][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면 어디 덧나니? 나 그런 놈 아니거든.][그럼 그건 갑자기 왜 묻는데?][생리 때는 체온 유지에 신경 써줘야 해서 춥게 굴면 안 되고 피곤하지 않게 많이 쉬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술이랑 찬 건 되도록이면 안 먹는 게 좋고요. 하지만 지수 씨 성격이라면 남한테 기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했을 거예요 이미.]소이연은 이내 송문수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문수 씨는 흑설탕물이나 끓여주세요. 피도 잘 통하게 해주고 생리통 푸는 데에도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흑설탕물은 달달하
하지만 그리 남사스러운 말은 아니라서 하지수는 한마디 더 보탰다.“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 말을 들은 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린 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려고 일부러 더 너스레를 떨었다.“내가 매력이 넘치는 걸 어떡하겠어.”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하지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하지수, 내가 전에 좀 막살았던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하는 사람이야 나. 내가 너랑 잘 만나보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대 너한테 미안할 짓은 안 해.”“응, 알겠어.”하지수는 송문수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었다, 아니 다 믿고 싶었다.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바뀔 걸 알기에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네가 나한테 맞춰주는 만큼 나도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알았어.”우쭐대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송문수의 말이라면 늘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바로 하지수였다.밥을 다 먹고 난 둘은 해변가를 거닐었는데 붉은 태양이 바다에 걸쳐져 있어 노을이 아주 예쁘게 져 있었다.주변 환경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경치는 봐줄 만해서 하지수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날에 좀 있으면 파도가 더 거세질까 봐 걱정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보며 말했다.“문수 씨, 우리 이제 가자.”“가고 싶어?”“응.”“좀 더 있다 가자, 여기 좋잖아.”“좀 있다 보트도 타야 하잖아, 저녁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낮에 올 때도 무서웠는데 밤엔 더할 것 같아 하지수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무서워?”송문수는 그런 하지수가 웃긴지 입꼬리를 씰룩이며 물었다.“응. 무서워.”“그럼 가자.”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 송문수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제 의견을 바로 수락해줄 줄 몰랐던 하지수는 어벙벙한 채로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사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원래의 그녀였다면 하지 않았겠지만 소이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한평생 참고 살
“왜 안 먹어?”송문수의 재촉에 하지수는 손으로 게를 잡고 뜯었는데 다른 곳보다는 맛있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들였던 노력에 비하면 그리 맛있는 것도 아니었다.“어때? 맛있지?”“맛있어.”하지만 기대에 찬 송문수를 보며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하지수는 웃으며 말했다.“역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하지수를 긍정을 듣고서야 드디어 먹기 시작한 송문수는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하도경이랑 여기 자주 왔었는데 현경이랑 지원이는 바빠서 같이 몇 번 못 왔었어.”“그랬구나.”“술 마실래?”“나 생리 왔잖아.”영혼 없이 답을 하던 하지수는 신나서 술을 제안하는 송문수에 또 체념한 듯 말했다.반복되는 실망에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송문수의 무관심이 이젠 원망스럽지도 않았다.“아, 맞다. 그럼 음료수라도 마실래?”“물 줘 그냥.” 그녀의 대답에 송문수는 직원에게 물과 맥주를 부탁했다.지금 술을 마시면 좀 있다 돌아갈 때 운전은 또 하지수의 몫이 되겠지만 오랜만에 신난 송문수를 위해 하지수는 한 번 더 참기로 했다.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만 계속 참는 건 좋은 연애가 아니라고들 하는데 하지수는 송문수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하지수는 정말 상대방에게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다.밥을 먹으면서도 그녀는 간간이 소이연과 예수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어디에서 데이트하는지 많이 궁금하길래 솔직하게 알려주니 예수진이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진짜 송문수답다, 연애 고자잖아 이건.][지수 씨, 문수 씨한테 거기 별로라고 얘기 못 했어요?][안 했어요,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니까 나도 문수 씨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보고 싶어요.][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렇다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건 아니죠. 지수 씨, 부부 사이에는 그렇게 내외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인데 불편한 게 있으면 용기 내서 말해야죠.]소이연의 말에 고개를 들어 본 하지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친구들 말고는 다른 사람 데려간 적도 없는 곳이야. 네 기억에 남을 만한 맛집이니까 기대해.”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하는 송문수에 하지수는 또 괜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영화는 별로여도 식당은 좋은 데로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차가 부둣가에 도착하고 송문수와 함께 차에서 내린 하지수는 울퉁불퉁한 길을 하이힐을 신은 상태로 걷자니 발이 아파왔지만 얼마나 대단한 맛집일까 싶어 애써 참으며 그를 따라 걸었다.그런데 식당은커녕 눈에 보이는 건 보트에 타라고 저를 향해 손짓하는 송문수뿐이어서 하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바다에서 먹는 거야?”역시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했었던 걸까.송문수는 하지수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며 보트에 태웠다.곧이어 출발한 보트는 물살 때문에 심하게 휘청였는데 워낙 물을 무서워하던 하지수는 난간을 꽉 붙잡고 몰아치는 파도를 버텨내고 있었다.“와아!”송문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아주 신나 보였지만 하지수는 도저히 소리를 지를 정신이 아니었다.밀려오는 파도에 온몸이 다 젖어버린 그녀는 번진 화장부터 열심히 세팅한 머리까지 지금 걱정투성이였다.데이트한다고 치마까지 꺼내입었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게다가 생리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는 화장실도 하나 없었다.도통 무슨 생각으로 이곳을 데이트코스로 선정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서프라이즈가 있을 거라고 본인을 위로하며 하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지수가 기대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의 놀라움은 끊이지 않았다.파도를 헤치며 달리던 보트는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멈춰 섰는데 해변가에 세워진 집으로 가려면 맨발로 거기를 걸어가야 했기에 딱딱한 모래 때문에 하지수는 안 그래도 아픈 발이 더 아파왔다.그래도 아무 말 없이 송문수를 따라갔더니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도착한 곳이 바로 시골 식당이었다.두 사람은 허름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
그 말에 더 신이 난 송문수는 평소에는 그냥 사진도 찍기 싫어하던 사람이 하지수와 함께 필터가 잔뜩 씌여진 카메라 앞에서 바보같이 웃어 보였다.사진을 다 찍은 두 사람은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영화가 시작하기 전이라 하지수는 빠르게 인스타를 올려버렸다.아무 문구도 없이 올려버린 셀카에 하도경이 곧바로 댓글을 달았다.[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죠?][이 바보같이 웃고 있는 게 진짜 송문수에요?]계지원과 육현경도 이내 좋아요를 눌렀고 예수진은 본인다운 댓글을 달았다.[이젠 남자 친구 생겼다고 나랑은 영화 안 본다는 거지?][송문수 웃는 거 진짜 바보 같긴 하다.][무슨 영화 봐요? 재밌어요?]소이연까지 댓글을 달고 회사 사람들도 수많은 좋아요를 보내며 각양각색의 축하 인사를 해오자 하지수는 깜짝 놀라버렸다.평소에 감명 깊게 본 문구나 올리던 하지수가 갑자기 일상을 올려버리니 사람들의 반응이 폭주해버린 것 같았다.그에 하지수는 답장이라도 하려 했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송문수에 핸드폰을 가방에 찔러넣을 수밖에 없었다.“영화 곧 시작하는 데 뭐해?”“아무것도 아니야.”처음에는 송문수와의 데이트라는 생각에 설레어 영화에 집중을 못 했지만 영화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하지수는 점점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어 버렸다.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의 불이 켜졌을 때도 넋을 놓고 있었는데 저를 흔드는 송문수 덕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영화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끝났으니까 이제 가자.”차에 올라타서도 아무 말도 안 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그녀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왜 영화 보고 나와서 한마디도 안 해?”미간을 찌푸린 채 묻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오히려 본인이 더 따져 묻고 싶었다.누가 데이트하러 나와서 를 보냐고.너도 날 죽일 거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으니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하지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설마 나도 널 죽일 거냐 뭐 그런 질문이 하고 싶은 거야?”그런데 그때 송문수가 헛
처음에는 그냥 곁눈질로만 보던 송문수는 제 눈에 들어온 낯선 하지수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옷차림에 그의 심장은 빠르게 쿵쾅대기 시작했다.이게 연애라는 건가 싶어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뻘쭘했던 하지수가 물어왔다.“나 별로야?”역시나 이런 여성스러운 원피스는 저한테 안 어울리는 건가 싶어 예수진의 말을 믿은 걸 후회하는 하지수였다.“나 옷 갈아입고... 아!”본인도 이런 착장이 어색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송문수가 하지수의 팔을 잡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하지수는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상대방에게 들릴 것만 같아 애써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문수 씨, 왜 그래?”제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며 물어오는 하지수를 바라본 송문수는 그녀와 한참 동안 시선을 맞추다가 말했다.“나 못 참을 것 같아.”“응?”“못 참겠어.”의문문이 서술문으로 바뀌는 순간, 둘의 상황도 완전히 변해버렸다.그녀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 그래도 괴로웠는데 치마까지 입으며 자신을 유혹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그녀를 집어삼킬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영화 보러 안 가?”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하는 그녀의 모습조차 예뻐 보였던 송문수는 그딴 영화는 개나 줘버리고 그저 그녀의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지만...망할 놈의 생리 때문에 또 한 번 자신의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이 죽을 만큼 힘들었던 송문수는 예전에 누렸던 방탕했던 생활에 대한 벌을 이렇게 받는 건가 싶기도 했다.“가자.”“나가자 이제.”송문수와의 키스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이 상태로 더 있다가는 그가 이성을 잃고 자신을 덮쳐 피가 사방으로 흐르게 될까 봐 하지수는 그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잠깐만.”“왜?”하지만 송문수는 허리에 두른 팔을 풀 생각이 없는지 괜히 시간을 끌며 하지수 쪽으로 점점 더 다가갔다.훅 들어온 얼굴 공격에 볼이 빨개진 하지수는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