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희도 찔리는 것이 있었기에 이렇게 흥분한 것이다.이건 예수진과 계지원의 사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계지원이 아니면 자신은 연예계에서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그런 계지원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예수진에게 간다면 예수진의 능력에 계지수의 영향력까지 더해져 가희는 더욱 밑으로 밀려나고 말것이다...그녀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그녀는 모든 면에서 자신과 예수진을 비교하고 있었다.예수진이 활동하지 않은 몇 년간, 가희는 예수진과 자신을 일일이 비교했다. SNS팔로워수나, 드라마 시청률, 영화 관객수, 트로피 개수나 연봉까지 모든 것을.곧 예수진의 기록을 넘기려 하고 있었는데 예수진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가희는 다시 추월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어렸을 때부터 예수진은 그녀의 가족, 교육, 행복까지 빼앗았다. 예수진이 뭐라고!“협박이기도 하고 경고이기도 하죠.”예수진은 가희를 보며 냉정하게 웃었다.“예수진. 삼촌은 공과 사를 분별하...”“반말하지 마요.”예수진은 가희의 말을 끊었다. 그녀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이미 지원 씨랑 결혼 했어요. 그러니 내가 어른이죠.”예수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육씨 가문에 먹칠 하지 마시고요.”이 말을 내뱉고 예수진은 자리를 떴다.그런 모습에 가희는 화가 더욱 치밀었다.‘이런 이유로 나를 협박하다니?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그녀는 예수진을 숙모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절대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예수진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기도 전에 이미 술을 따르러 온 사람이 있었다.“수진 씨. 계 감독과의 관계는 진짜 꽁꽁 숨겼네요...”한채영은 술이 좀 취했는지 예수진에게 말을 내뱉었다.“우리 같이 계 감독의 뒷담화를 한 건 어쩌죠?”“뭘 어쩌겠어요. 비밀로 하면 되죠.”“...계 감독이 뒤에서 슬프겠어요.”그는 아마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어쨌든 술 한잔해요. 예전에 서운한 것 있으면 그냥 잊어줘요.”한채영의 말에
한밤중에 계지원이 지팡이를 짚으며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죄송합니다,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어요. 다음 기회에 만나요.”“집에서 애기가 기다리나 봐요?”“애를 금방 재웠어요.”같이 산후 하연은 그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계지원이 집에 들어가면 하연에게서 벗어나기 힘들었다.“애를 재우고 나니까 수진 씨를 보러 나오셨네요.”계지원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많이 마시면 힘드니까 왔어요. 시간도 늦었으니까 저 먼저 수진 씨를 데리고 갈게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잘 들어가세요.”예수진은 계지원을 따라가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사람들의 앞에서 예수진은 거절하지 못하고 그와 손깍지를 꼈다.차 안에서 예수진은 그의 손을 밀쳤다.“늦게 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소문이 날 가봐요.”“그럴 리가요.”“미디어는 뭐든 다 만들어내요.”예수진은 그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았다.“암튼 데리러 오지 말아요. 미디어에 우리 사이를 좋게 포장하고 헤어지면 더 욕먹어요. 지금부터 냉담하면 헤어져도 괜찮아요.”계지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매번 기분이 안 좋으면 그는 침묵했다.그가 온몸으로 안 좋은 기분을 표현했지만 예수진은 그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지금의 기회를 빌어 좋은 남자 행사를 하는 그의 모습을 예수진은 이해할 수 있었다.연예계의 사람은 항상 자신을 좋게 포장해야 한다.단지 이후에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하고 싶은 것뿐이었다.둘이 꼭 묶여진다면 더욱 헤어지지 힘들어질 것이다.차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예수진은 계지원을 쉽게 상대한 적이 없었다.그건 익숙하면서 어려운 어색함이었다.그때 예수진의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누구란 말인가?낯선 번호에 그녀는 상냥하게 받았다.“여보세요.”“안녕하세요, 수진 씨. 저는 [짝을 찾는 여정] 프로그램 제작자 장여정입니다. 혹시 시간 있으시면 계 감독님이랑 같이 미팅 한번 하실래요?”[짝을 찾는 여정]은 예수진도 잘
예수진은 계지원을 돌아보았다.그가 이런 프로그램을 허락할 줄 꿈에도 몰랐다.[배우님, 자리에 앉아 주세요]는 그가 직접 좋은 연기자를 뽑기 위해 참가했었지만 연애 프로그램은 참가할 이유를 생각하지 못했다.아니면 그냥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인가?예수진은 프로그램 제작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다. 계지원과 헤어진 후에 이들을 홀로 맞서야 했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하고 악역은 그에게 맡겨야 했다.그런데 계지원이 한발 먼저 그녀에게 책임을 떠넘기다니.“수진 씨도 괜찮으시다면 내일 만나 뵙고 싶은데요.”장여정은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들어가세요, 내일 뵐게요.”예수진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계지원을 바라보았다.“장여정과 통화를 한 적이 있어요?”“네.”“왜 거절하지 않았어요?”예수진은 조금 화가 났다.“이런 프로그램을 싫어하지 않았어요?”“당신이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그럴 리가요!”예수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화면에 나올 기회를 더 원하는 줄 알았어요.”계지원의 해명을 그녀는 믿지 않았다.“그리고 상대방이 제시한 금액도 괜찮았고요.”“얼만데요?”예수진이 흥분하여 물어오자 계지원은 낮게 웃었다.그녀는 그가 일부러 자극한다고 느꼈다.“말하지 않으면 됐어요.”“이 정도요.”계지원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8자리요?”예수진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죽었다 깨나도 이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두 명의 금액이요.”예수진은 이를 꽉 깨물었다.역시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그러나 계지원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계지원은 감독이지만 외모가 잘났기에 연예계에서 인기가 많았다.“참가하면 절반으로 나눠요...”계지원의 말에 예수진은 눈을 반짝였다.절반으로 나누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예수진은 그 돈이 욕심났지만 계지원과 이런 프로그램에 나와서 “잉꼬부부”인 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할 때는 정말 걷
장여정은 계약서를 가져왔다.계지원은 그 계약서를 구체적으로 보지도 않고 예수진의 앞에 내밀었다.“당신이 결정해요.”예수진은 이를 꽉 깨물었다.계지원은 너무 이기적이었다.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는 너무 애처가였다. 그냥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만드는 것이다.예수진은 화를 꾹 참으며 계약서를 훑었다.모든 조항을 꼼꼼히 보다가 마지막 금액을 확인한 후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 금액을 계지원과 절반으로 나누면 그녀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세를 내고 남는 돈도 꽤 될 것이다.금방 좋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을 것이다.예수진은 이 금액에 마음이 동했다.“수진 씨, 어때요?”장여정은 친절하게 물어왔다.“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지금 수정할 수 있게 변호사 불러올게요.”장여정의 진심과 금액에 예수진은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저는 괜찮은데 지원 씨 좀 보실래요?”예지원은 계약서를 계지원에게 들이밀었다.“괜찮아요. 당신이 보면 됐어요.”계지원의 말에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정말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예능에 나와서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단 말인가?아니면 돈이 부족한가?그건 아니다.계지원이 몇 년간 찍은 드라마에서 그는 투자자이기도 했기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니 계약금의 절반을 원하지도 않는다.“다른 사항 없으면 계약서를 맺도록 하죠.”장여정은 적극적으로 말했지만 예수진은 여전히 주저했다.계지원이 먼저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모습에 예수진은 이를 꽉 깨물고 자신도 싸인을 했다.한동안 계지원과 이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벌어 돈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계약서에 싸인을 마친 후 장여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우리 프로그램은 모레부터 촬영에 들어갑니다.”“이렇게 빨리요?”예수진은 경악했다. 한두 달 정도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네, 수진 씨와 계 감독님이 제일 마지막으로 정해진 커플이어서 어쩔 수 없어요. 일정은 이미 정해진 거라 조정이 불가능할 것 같아요.”“아...네.”예
“그래요.”계지원은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수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결혼에서 그녀는 결코 손해 볼 것이 없었다.“장여정 씨가 준 일정표를 봤어요?”“일정이요? 이거요?”계지원의 물음에 예수진은 앞의 파일을 보았다.아까는 계약금만 신경 쓰다 보니 구체적인 일정표를 볼 새도 없었다.“이거 봐요.”예수진은 일정표를 받아 들어 자세하게 읽어 내려갔다.일정은 합리적이였다. 다른 프로그램의 일정처럼 타이트하지도 않았고 야외에서 찍을 필요도 없었다. 단지 부부나 커플 간의 여행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예수진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반응이 이게 끝인 건가요?”“뭐 문제 있어요?”계지원은 입을 열었다.“모레부터 촬영에 들어가니까 감독님들이 먼저 와서 인터뷰를 할 거예요.”“그래서요?”예수진은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오면 오는 거지, 왜 이렇게 오버지?’“우리는 지금 따로 자잖아요.”“...”예수진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말을 뱉었다.“우리가 자는 것도 찍는 거예요?”“그건 아니지만 우리의 생활을 찍다가 뭔가를 발견할까 봐 걱정돼서요. 요즘 대중들은 집요해서 우리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할 거예요.”그의 말에 예수진은 미간을 찌푸렸다.한참이나 말을 없던 그녀는 겨우 입을 열었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요?”“당연히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죠.”그의 태도에 예수진은 마음속으로 욕을 내뱉었다.그가 굳이 이 말을 꺼낸 건 같이 자고 싶다는 말이 아닌가?이제 와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한다니?“당신이 싫은 게 아니면 우리 같은 방을 쓰죠.”예수진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싫지 않아요.”“그럼 내 물건을 방으로 옮길게요. 들키지 않게 미리 방을 숙지할게요.”“그래요, 내가 도울게요.”“괜찮아요, 혼자 하면 돼요.”예수진은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할 일 없으면 하연이와 놀아 줘요. 하연이는 당신을 좋아하니까.”예수진은 그들이 헤어지면 자신이 하연을 데리러 갈
계지원의 집으로 온 이후 하연은 항상 아빠와 잠을 잤다. ‘아빠랑 엄마가 같이 자면 나는?’하연은 엄마를 좋아했지만 자신과 아빠를 뺏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이제 커서 혼자 자도 돼.”예수진은 화가 났다.언제부터 하연이 계지원을 이렇게 의지한 것인가. 그와 함께 한 날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엄마는 어른인데 더욱 혼자 자야 하지 않아요?”하연의 말에 예수진은 할 말이 없었다.계지원이 옆에서 낮게 웃었다. 그녀를 도와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가연이 와서 급하게 예수진의 편을 들어주었다.“하연아, 엄마랑 방을 뺏을 수는 없어. 아빠랑 말고 외할머니랑 자자. 외할머니가 하연이 보고 싶었어.”“하지만...”하연은 조금 난처해 보였다.“나는 아빠랑 자고 싶어요.”“그럼 할머니는 어떡해? 예전에 평생 할머니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잖아?”가연은 일부러 하연을 놀렸다.하연은 이를 꽉 깨물었다.“오늘 아빠랑 자고 내일 할머니랑 자면 안 돼요?”“하연아, 계속 항경이가 동생이 있는 것을 부러워했잖아.”항경은 하연의 유치원 친구다.“그래요, 항경의 동생은 너무 귀여워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아빠랑 엄마가 동생을 낳길 원하는 거야?”“원해요.”“원하면 아빠랑 엄마가 한방에서 자게 해야 돼. 같이 자야 동생을 낳을 수 있는 거야.”“진짜요?”가연의 설명에 하연은 놀랐다.“그래.”“그...럼 어쩔 수 없죠.”하연은 설득당했는지 진지하게 예수진에게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를 줄게요. 동생을 낳으면 아빠랑 자면 안 돼요.”“...”‘누가 동생을 낳는다고 했어?’예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하연에게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몰라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아싸.”하연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방방 뛰어다녔다.“동생이 생기면 나는 누나가 되는 거야...”“...”저녁. 하연은 계지원과 자지 않았지만 계속 자신이 잠든 후에야 나갈 수 있다고 투정을 부렸다.계지원이 그런 하연을 돌보고 돌아왔을 때,
예수진도 거절하지 않았다.뭐가 대수라고!“그럼 침대에 올라갈게요.”“샤워도 했고 잠옷도 새것이예요.”계지원은 어안이 벙벙하여 한참이나 반응이 없었다.예수진은 그의 결벽증을 알았기에 그가 싫어할까 봐 배려한 것이다.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녀를 더럽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이런 말을 계지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예수진은 침대의 오른 쪽의 끝머리에 누웠다. 그를 만지기 싫은 것이다.계지원도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둘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누웠다.적막속에서 이르지 않은 시간에도 누구도 자는 사람은 없었다.같이 잠은 잔 건... 저번이었다.계지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와 등을 대던 몸을 마주 보게 돌아누웠다.그는 한참이나 예수진의 뒷모습을 보았다.방안에는 따뜻한 불이 켜져 그녀의 등을 볼 수 있었다.다이어트 탓인지 그녀는 출산하기 전보다 더욱 날씬했다.요즘같이 밥을 먹을 기회가 늘어나면서 그녀의 밥양이 정말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예전에도 적게 먹었지만 지금과 비할바가 없었다.계지원이 그녀를 품에 안으려고 손을 뻗으려 했지만 결국 단념했다.예수진은 계지원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그가 금방 몸을 돌아누워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어색할까 봐 뒤로 돌아눕지 않은 그녀는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었다.그러나 너무 불편했다.자세뿐만 아니라 속옷도 너무 불편했다.평시에 혼자 잘 때는 불편한 옷들을 다 벗어 던졌지만 계지원과 함께이니 속옷도 없으면 너무 가벼워 보인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불편하여 몸을 뒤척이며 등을 긁었다.계지원은 그녀의 속옷을 보았다. 육씨 가문에서부터 그는 그녀가 속옷을 입고 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예전에 예수진은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일부러 속옷을 입지 않고 그의 방으로 들이닥쳐 그가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벗어요.”적막 속에서 계지원은 입을 열었다.예수진은 몸을 떨었다.계지원은 그제야 자
셋째 날.약속대로 제작진들이 계지원의 집으로 들어와 간단한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예수진은 가연이 하연을 데리고 나가게 했다.하연이 대중들의 앞에 노출되기를 바라지 않았다.제작진들도 만약 하연이를 찍었다고 해도 알아서 모자이크 처리를 해줄 것이다.“평시에 집에서 누가 요리를 하나요?”“둘 다 안 해요.”진행자의 물음에 예수진이 대답했다.“지원 씨는 너무 바빠서 요리는 막론하고 집에 있을 시간도 얼마 없어요. 그리고 저도 잘하지 않고요.”진행자는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이렇게 솔직할 줄 꿈에도 몰랐다.일반적인 부부들은 모두 포장을 어느 정도 한다.“아이는 누가 더 돌보나요?”“지원 씨가 집에 있을 때는 그이가 돌보고요. 없을 때는 제가 돌보죠.”하연이와 같이 산 이후부터 그와 있는 시간이 가연과의 시간보다 많았다.“마음속에 서로는 어떤 존재인가요?”“수진 씨부터 얘기해 볼까요?”예수진은 계지원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를 이기적인 냉혈한이라 말할 수 있나?아니.그녀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말이 많지는 않지만 자상하고 저한테 잘해줘요.”“계 감독님이 그렇게 잘해주시나요?”“네, 저한테 잘해요.”진행자의 장난어린 물음에 예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프로그램 때문에 한 말이었지만 예수진도 사심이 담겼다.그녀가 계지원을 칭찬할수록 그도 그녀에게 더욱 잘해 줄 것이다.아니면 대중들의 큰 질책을 받을 것이다.“그럼 감독님은요? 수진 씨는 어떤 존재인가요?”계지원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예쁘고 성격이 호탕하지만 착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해요.”“평시에 싸움을 하면 누가 져주나요?”“저요.”예수진은 옆에서 웃었다.“수진 씨는 왜 웃으시나요?”진행자는 그 모습을 빠르게 포착하고 물었다.“너무 행복해서요.”“깨가 쏟아지네요.”진행자는 계속하여 질문을 쏟아냈다.“이번 여행에 대해 어떤 기대가 있나요?”“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지원 씨가 다리가 불편하니 편한 여행이었으면 좋겠어요.”“수진
송문수가 사 온 물을 건네도 부모님은 고개만 저으며 손을 모으셨다.그래서 하지수에게 건네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을 받아들었다.서울에 온 뒤 송씨 일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줄곧 자리를 지키며 송승우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송승우가 눈을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하지수는 받아든 물이라 몇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물을 마시면서도 신경은 온통 송승우에게 쏠려있었다.그런데 그때 하지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송승우의 몸을 보게 되었다.너무 아파서인지 아니면 힘이 없어서인지 몸은 미세한 떨림 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송승우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어 하지수는 잔뜩 흥분한 채 외쳤다.“승우 오빠 일어났어요!”“문수, 문수야! 얼른 의사 불러와!”하지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부모님이 송문수에게 의사를 데려오라 했고 송문수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의사는 중환자실에서 각종 검사를 진행했다.방음효과가 워낙 좋은 중환자실이라 의사와 송승우의 대화를 듣지 못했던 가족들은 또다시 초조해 났다.한참이나 지나서 중환자실 빠져나오는 의사에 허영지가 다급히 달려가 물었다.“선생님, 저희 아들은 좀 어떤가요?”“방금 검사 진행했는데 생명엔 아무 지장 없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돼요.”“하지만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여기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세균감염이라도 되면 큰일이거든요.”“알겠습니다, 입원은 며칠 하든 상관없으니까 저희 애 잘만 치료해주세요. 그런데 저희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주는 건 괜찮을까요?”“아직은 들어가지 마세요. 환자분도 방금 깨어나셔서 머리가 어지러울 겁니다.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두시고 내일 상태 좀 나아지면 그때 들어가 보시게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 선생님!”“아닙니다.”감격 어린 허영지의 말에 의사가 한마디 더 보탰다.“환자가 아직은 본인 몸 상태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면회하실 때도 다리 절단한 사실은 일단 말하지 마세요. 환자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 말에 허영지는 대성통곡을 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끄떡없던 송기명마저 아들 일에 눈물을 보였다.평소에 사이는 안 좋았지만 그래도 친형이었기에 송문수도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했고 하지수 역시 송승우가 다리를 잃는다는 말에 눈물을 떨어뜨렸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는데.어릴 때부터 본인 잘난 멋에 살던 사람이 자신이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되려 죽겠다고 난리를 칠 것 같아 하지수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목숨이 다리 한쪽보다는 더 중요했기에 결국 사인을 한 송기명은 온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기분 좋게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인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레 닥친 비극에 송문수도 아버지를 부축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수술에 다들 정신을 반쯤 놓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요한 복도에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가족들 못지않게 속을 태우던 장지석은 피곤한 듯 마스크를 벗는 의사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승우는 좀 어떻습니까?”그제야 가족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지수와 송문수가 어머니 아버지를 부축한 채 의사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다른 말보다 먼저 나온 게 의사의 한숨이라 허영지는 쓰러질뻔한 걸 간신히 버텨내며 물었다.“왜 그래요 선생님, 우리 아들 잘못된 거 아니죠?!”“생명엔 지장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데...”“그런 데라뇨!”“환자분이 다리를 잃었으니 깨어나시고 나서도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할 겁니다. 가족분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오른쪽 다리 외에도 몸 각 부위가 다 강한 충격을 받아서 일단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의식 돌아오고 모든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일반병실로 옮길 겁니다.”의사의 말에 허영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송기명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그들은 전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그들도 송승우가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
만약 하지수가 송승우의 교통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제가 그런 하지수를 제대로 바라볼 수나 있을지 송문수는 지금 모든 게 미지수였다.송승우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정말 친오빠처럼 생각했던 하지수는 역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서울 가장 좋은 병원에 입원해 있대.”“나 서울 가야겠어.”“그래요 여보.”마침내 정신을 차린 허영지가 입을 열자 송기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갈 거면 다 같이 가야죠. 오늘 파티는 일다 취소하죠.”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문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파티장 취소할 테니까 지수 너는 서울 가는 티켓이랑 차량 좀 준비해줘.”“알겠어.”이미 혼이 반쯤 나간 부모님을 모시려면 본인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기에 하지수는 바로 기사에게 연락하며 공항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그리고는 한 시간 뒤에 출발인 항공편까지 끊어놓았다.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문수는 서둘러 파티를 취소하고 있었는데 직원을 시켜 손님들께 나중에 아버지와 직접 찾아뵙고 취소이유를 말씀드리고 사과까지 드린다는 말도 전하게 했다.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송문수는 여러 가지 일을 지시하느라 바삐 돌아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하지만 다들 송승우를 걱정하고 있어서 확 달라진 송문수에게 주의를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1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내린 송씨 일가는 바로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서울 대학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나와 있던 송승우의 동료가 그들을 맞아주었다.“아주머니, 아저씨 오셨어요? 저는 승우 형 직장 동료 이찬혁이라고 합니다. 형은 안에서 수술 중이에요.”“우리 아들 많이 심한가요 지금?”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던 송기명이 이찬혁을 붙잡고 묻자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저도 좀 전에 연락받고 온 거라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히 몰라요. 형이 실려 올 때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니까 아마도...”
문자를 본 허영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사모님, 무슨 일이라도 난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특종을 잡은 것마냥 달려드는 기자들에 송씨 일가 사람들도 다 같이 허영지를 주목했다.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 그를 보며 송기명이 물었다.“여보, 왜 그래요?”아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시울만 붉히고 있자 조급해 난 송기명이 다시 한번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요?”“엄마, 무슨 일 있어요?”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긴장한 채로 물어왔지만 허영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그에 미간을 찌푸린 송문수는 아직 켜져 있는 엄마의 핸드폰을 가져와 문자를 확인했는데 그 역시 문자를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송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핸드폰으로 뭘 봤길래 사모님이 저러시는 겁니까?”기자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그는 바로 허영지의 핸드폰을 들고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대표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무슨 일인지 한 말씀 해주세요!”하지만 그런 무시에도 굴하지 않는 기자들이 송문수를 따라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그들을 막기 시작했다.송문수의 표정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아챈 하지수도 입술을 말아 물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복도로 나오자 송문수는 이미 통화 중이었는데 통화가 거듭될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송문수의 표정이 저 정도로 굳어있다는 건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뜻이었다.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본 적 없던 표정이라 하지수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음주운전으로 잡혀갈 때도 침착하기만 하던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러는지 하지수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한참 동안 통화를 하다 전화를 끊은 송문수는 입술을 말아 문 채 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지수에게로 다가갔다.밖으로 나온 허영지와 송기명도 그저 장난 전화이길 바라며 송문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가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
“오해 아닙니다, 전에는 저 그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변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송 회장님의 입원 때문입니까?”“제 우상이시던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도 하나의 이유죠. 제 눈에 아버지는 늘 이 집안을 지키는 영웅이셨고 절대 늙지도 않을 것 같던 분이셨는데 갑자기 아프다고 하시니까 그때 이 집안을 책임질 사람은 저뿐이더라고요.”이젠 다 커서 자신의 고초도 이해해주는 어엿한 아들을 보며 송기명은 아주 감동스러워했다.“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제 아내인 하지수 씨입니다.”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모든 카메라도 그녀에게 집중되었다.갑작스러운 이목에 놀랄 새도 없이 송문수는 말을 이어나갔다.“제 아내가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회사를 지키기 위해 같이 밤을 새우면서도 불평불만 한마디 없었던 사람입니다. 성격 안 좋은 저를 보듬어주고 격려해주면서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제 아내한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를 언급하며 고맙다고 하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두 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하던데, 진짭니까?”“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저희 사이좋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철이 없어서 아내한테 상처 주는 일도 많이 해서 사이가 위태로웠겠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지금 혹시 사모님한테 고백하시는 겁니까?”기자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반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을 붉히는 송문수를 보며 다들 제 눈을 의심했다.파파라치한테 찍힐 때도 이미지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까지 휘두르던 사람이 언제 이렇게 쑥스러움이 많아졌나 싶어 다들 당황해하고 있는데 하지수는 그의 모습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으면 그간의 이상하던 태도와 관계를 피했던 이유도 더 이상은 따지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송승우 씨는 왜 오지 않으신 겁니까, 오늘은 불참하시나요?”“두 분은
화장을 마치고 머메이드 드레스로 갈아입은 하지수는 불빛 아래에서 더 반짝이는 드레스를 보며 아무래도 자신이 허영지를 가리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송문수를 불러보았다.“문수 씨, 이게 진짜 괜찮다고?”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한 질문이었지만 송문수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걱정 마, 이거 네 거 맞다니까.”“진짜 어머님이 준비하신 거 맞지?”“너 나 안 믿을 거야?”송문수가 목소리를 깔며 말하자 하지수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입을게.”정말 허영지의 뜻이라면 하지수도 걱정할 게 없었다.사실 평소 하지수에게 검소하다는 말을 자주 하던 허영지였기에 그녀가 이런 드레스를 준비했다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이번 기회에 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시어머니의 마음인가보다 하며 하지수는 나갈 준비를 마쳤다.“가자 이제.”“엄마가 인터뷰 있다고 빨리 오래. 사진도 찍어야 한대.”“그래.”차에 탄 뒤에도 송문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며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했다.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하지수가 그를 부르자 송문수는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문수 씨.”“어?”“더워?”에어컨을 틀어 시원한 차 안에서도 땀을 흘리는 게 이상해서 한 질문인데 송문수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아니.”“땀 나는데?”“그래?”제 이마에 묻은 땀을 훔치던 송문수가 또 말을 바꾸자 하지수는 그를 수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좀 더운 것 같기도 해.”“오늘 왜 이래? 당신 좀 이상한 것 같아.”“아무것도 아니야.”송문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어갈 하지수가 아니었다.“어디 아파?”“그럴 리가, 나 소처럼 건강한 남자야, 병도 잘 안 걸린다고.”“...”누가 봐도 오바하는 것 같았지만 사정이 있겠지 싶어 하지수도 더는 묻지 않았다.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매체들에서는 더 빨리 와 있었기에 기자들과 송기명, 허영지 모두 그들 부
아침 일찍 디자이너를 불러 단장을 마친 송기명과 허영지는 나이 들면 가만히 잊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른 시간부터 호텔로 향했다.그리고는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차피 송문수는 전화를 잘 받지 않으니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하지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배 있었다.좀 전에 일어나서 스타일링을 받고 있던 하지수는 시부모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다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네, 저희 일어났어요. 문수 씨는 씻고 있고 저는 화장하고 있어요.”“네, 먼저가 계시면 저희도 금방 갈게요. 8시 전엔 도착할 거에요.”통화를 마친 하지수는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다.본인이 주인공도 아닌데 화장이 너무 화려한 것 같았다.게다가 원래는 송문수와 커플룩으로 어머니께서 맞춰주신 복고풍 드레스를 입기로 했으니 어찌저찌 의상을 수정하다 보니 오늘 입어야 할 건 민소매인 머메이드 드레스가 되어버렸다.예쁘긴 예쁘지만 꾸민 티가 너무 많이 나서 고민됐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불렀다.“문수 씨, 나 진짜 이거 입어? 이거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도 아닌데...”오늘 아침은 하지수보다도 더 빨리 일어난 송문수는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있었다.그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알람 소리에 눈을 뜬 하지수는 제 옆에 없는 송문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었다.출근할 때도 알람이 몇 번이나 울려서야 화를 내며 일어내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가 싶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60세 생일파티라 신경을 쓰는 건가 싶어 하지수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었다.“뭐라고?”그런데 제가 한참 불러서야 모습을 드러낸 송문수가 혼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덜덜 떨고 있자 하지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신 오늘 뭐 발언이라도 할 거야?”“아니, 왜?”“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해?”“내, 내가? 아, 아니야! 그럴 리가!”“아직 잠이 덜 깨서 그래!”송문수는 말까지 더듬으며 손사래를 쳤고 하지수는 또
아내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괜히 사람을 붙였다가 제 프러포즈를 망칠까 봐 겁났던 송문수는 결국 자신이 소이연, 예수진과 함께 꾸미는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그러자 친구들의 놀림은 당연했고 육현경과 계지원은 임신한 사람을 부려먹는다고 구박까지 했지만 프로젝트가 이미 막바지에 돌입했기에 송문수는 온갖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면서 도와달라고 읍소를 했다.그렇게 가장 성가신 친구들한테까지 알리고 나니 모든 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기다리고 기다리던 송기명의 생일파티 당일이 되자 세상은 아주 시끄러워졌는데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속 기사를 내대는 기자들 때문에 언론도 시끌벅적했다.그런데 기사의 대부분은 송기명이 아니라 송문수에 대한 것이었다.그에게 송승우라는 훌륭한 형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송 씨 그룹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게 망나니 같은 송문수라는 기사에 다들 놀라고 있었다.그러면서 그에 대한 찬양기사가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송승우도 그걸 보게 되었다.아버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야근을 몰아 한 덕에 오늘 시간을 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던 송승우는 송문수를 추앙하는 기사들이 늘어나자 점점 언짢아졌다.몇 년 전만 해도 송문수는 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망나니였는데 이제는 제가 그의 배경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사람들이 제가 아닌 송문수에게 관심을 쏟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운전을 하면서도 방송을 듣고 있던 송승우는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송기명보다 송문수에 대한 말이 더 많이 나오자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미간을 펴지 못했다.지금 시간은 6시지만 비행기는 7시 출발이라 호텔에 도착하면 10시는 넘을 것 같아 송승우는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려 양해를 구했다.송승우에게 너그러웠던 부모님은 역시나 안 좋은 소리 한마디도 없이 오히려 서두르지 말라며 그를 걱정해주었다.어릴 때부터 받아왔던 편애였지만 오늘의 송승우는 왠지 그게 저에 대한 방치 같았다.이젠 부모님에게도 송문수라는 대단한 아들이 하나 더 생겼으니 저에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지수 씨의 의심을 풀어주는 거예요.]허를 찌르는 소이연의 말에 송문수는 조심스레 하지수를 바라보았다.하지수도 송문수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던 터라 제게 보내지는 시선을 느끼자마자 고개를 들어버려 둘은 의도치 않게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하지만 찔리는 게 있었던 송문수가 먼저 눈을 피하자 하지수는 입술을 말아 물며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송문수 역시 잘못한 것도 없는 제가 왜 하지수를 피하는지 몰랐지만 몸이 먼저 한 반응이라 어쩔 수 없었다.[그건 저도 모르겠어요.][아니면 오전에 어디 갔었다고 대충 둘러대기라도 해봐.][안돼요, 그럼 더 수상하잖아요. 우리가 방금 지수 씨 달래주자마자 문수 씨가 해명하면 지수 씨도 우리가 알려줬다는 거 눈치챌 거에요. 지수 씨가 우릴 탓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별로 인 것 같아요.][그럼 어떡해요?]예수진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소이연이 말했다.[그냥 이대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 ?][? ? ?][서프라이즈는 원래 이런 거에요. 실망을 하면 할수록 감동이 큰 법이죠. 어차피 다음 주가 디데이인데 며칠만 더 버티다가 프러포즈 잘하면 되죠.]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왠지 불안했던 송문수가 물었다.[그게 서프라이즈가 될까요? 괜히 놀래키는 거면 어떡해요? 그리고 지수가 나 안 받아줄 수도 있는데...][너 진짜 바보냐? 아니다, 너한테는 바보라는 말도 아까워. 진짜 지수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야?][걱정 마요, 절대 거절은 안 할 거예요.]예수진의 핀잔과 소이연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그들을 믿으며 대화방을 나왔다.[알겠어요 그럼.]여자들과의 대화를 마치자 남자들의 단톡방에서 또 송문수를 찾아댔다.[문수야, 지수 씨는 요즘 괜찮아?][뭐가?][이연이랑 수진 씨 요즘 지수 씨 자주 불러내진 않아?][아니? 왜 그러는데.][수진이랑 이연 씨 요즘 이상한 것 같아서, 둘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