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수는 말을 입밖에 내뱉은 이상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도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그러는 사이 차는 송씨 그룹에 도착했다.송문수는 마음을 많이 다잡고 나서야 차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함께 회사로 들어갔다.오가는 직원들 중 몇몇은 송문수와 하지수를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송 매니저님, 하 매니저님.”송문수는 이 상황이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굳혔다.무표정인 상태의 송문수는 약간 무서운 인상이었다. 게다가 키도 유난히 큰 편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가가기 힘들어 보였다.그래도 하지수는 천천히 고쳐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송문수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먼저 상황부터 파악하고 해결책을 생각해 보자. 방금 유 비서님한테 전화했으니까 곧 와서 상황을 보고해 주실 거야.”하지수가 말했다.“알겠어.”송문수는 의자에 앉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거울을 꺼내 자신의 눈 주위를 여러 번 확인했다.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그러자 유하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하 매니저님.”유하준은 먼저 하지수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송문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송 매니저님.”그를 본 송문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유하준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하지수에게 상황을 보고했다.“회사가 최근 새 프로젝트에 투자를 했습니다. 주로 신에너지 자동차의 연구개발이죠. 따로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기술력이 좀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연구개발도 중단되었고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손해를 적게 보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서둘러 마무리하려 했습니다.”“해외에서 연구개발에 유명한 과학자들을 데려온 덕에 기술도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신에너지 자동차가 시장에서 주목받을 때를 노려서 수익을 보려고 했지만 그 중 한 사람이 자격증을 위조했다는 것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우리 회사의 기술력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의문이 제기되었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송문수가 입을 열었다.유하준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문수를 바라봤다.그는 송문수가 회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순조롭게 잘 흘러가던 때에도 회사에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었기에 지금 같이 엉망인 회사는 더더욱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하준은 또 송문수가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다.“구체적인 상황은 다 파악했습니다.”하지수가 말했다.“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우리가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서님은 본인 일에 집중해 주셨으면 해요.”하지수는 유하준이 송문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믿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빨리 그를 내보내려고 했다.그런 유하준의 태도가 송문수를 자극해서 그가 화를 낼까 걱정했던 것이다.송문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고 조금만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버리는 성격이었기에 지금은 그를 최대한 달래는 것이 중요했다.유하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나갔다.“문수 씨, 비서님 말에 의하면 지금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 있어. 투자 문제랑 사람들이 핵심 기술에 대한 불신인 것 같아.”하지수가 말했다.“현경 씨에게 물어봐. 지금 우리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응.”송문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지금 그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육현경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맞다, 현경이 신혼여행 중 아니었나?”통화 버튼을 누르다 말고 송문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음... 그랬던 것 같은데?”“상관없어. 현경이가 신혼여행 끝내고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사이에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송문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오랫동안 울리더니 전화는 겨우 연결되었다. 피곤한 듯한 육현경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송문수는 시간을 보며 말했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현경아, 저녁에 얼마나 달렸으면 지금 이
송문수는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육현경은 흘러가는 1분 1초마저도 아까웠다.그는 몸을 돌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소이연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전화를 거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는지 약간 불편해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소이연을 품에 안았다.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손은 그녀의 허리 주변을 맴돌았다.“안 돼.”소이연은 몸을 비틀며 말했다.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듯했는데도 불고하고 육현경이 뭘 하려는지 알아차렸다.“나 너무 피곤해...”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육현경은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넌 편하게 즐기면 돼.”“어떻게 즐기라는 거야...”소이연은 육현경을 밀쳐냈다.“매번 그렇게 말하고 자제도 못하면서.”“어제 너무 소리를 질렀나? 목 나갔네.”육현경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소이연은 얼굴이 빨개졌다.섬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부끄러운 짓만 잔뜩 했기 때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민망했다.“또 못 자게 하면 나 장안시로 돌아갈 거야...”그 말에 육현경은 바로 조용해졌다.그는 아직 다 즐기지 못했지만 며칠동안 소이연이 너무 힘들었으니 일단 잘 자게 해주기로 결심했다.소이연이 정신을 차리면 그때는 육현경에게도 많은 기회가 올 것이니 말이다.한편, 송씨 그룹.전화를 끊은 송문수는 하지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방금 현경이가 말했어. 먼저 회사 내부부터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이야.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방금 비서님도 말했잖아. 지금 회장님이 안 계시는 탓에 모든 것이 엉망이라 회사 내부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그래서 지금 회의를 소집할까 해.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임시로 회장 자리를 맡고 그룹의 모든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분명히 할 것을 제안하지.”“나 혼자서 괜찮을까?”송문수는 자신에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네가 잘 해보겠다고 약속했잖아. 이건 첫걸음일 뿐이야.”하지수가 단호하게 말했다.송문수는 입
“물 좀 마셔.”송문수는 하지수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그러자 하지수는 살짝 놀랐다. 송문수는 종래로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녀의 뜨거운 눈빛에 송문수는 조금 어색한 듯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목이 다 쉬었길래... 그 목소리 별로야.”“...”츤데레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듯했다.하지수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오늘 오후 2시 회의는 네가 아버님을 대신해서 참석해야 돼. 그리고 그때 네가 송씨 그룹을 임시로 맡게 될 거라고 발표할 거야.”“이렇게 빨리?”송문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못 하겠어?”“아니.”송문수가 말했다.“네가 이렇게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놀라워서...”“현경 씨 말이 맞아.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는 거야.”하지수는 진지하게 말했다.“문수 씨, 오늘 회의 좀 험난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무조건 네 편이니까 걱정하지 마.”송문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그냥 나이 든 늙은이들일 뿐이야. 할 수 있어.”“나이가 든 사람들일수록 겪어본 일들이 많아서 더 까다로워. 너무 방심하지 마.”하지수가 주의를 줬다.“걱정하지 마.”송문수는 자신만만하게 보였다.하지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말은 잘한다니까.’하지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대처하는 송문수의 성격이 좋았다. 그런 모습이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다.오후 2시, 회의실.송문수는 하지수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20명의 이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분위기는 꽤 경직되어 있었다.송문수는 바로 회장 자리에 앉았다.그 순간 회의실에 있는 이사들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송문수 씨, 여기서 뭐 하는 거죠? 이곳은 당신이 마음대로 장난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오늘 우리는 중요한 회사 결정을 논의하러 온 거니까 방해하지 마시죠?”“송문수 씨, 회장님께서는 병원에 계시지만 회사는 지금 위기 상황이에요.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주세요.”“빨리 나
‘내가 오히려 회사를 망하게 할 거라고? 내가 그렇게 무능한 사람인가?’송문수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에 회사에 출근했을 때 이사들은 그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해줬었다.하지만 송기명이 병원에 입원하자 다들 송문수를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젠장.’송문수는 욕을 입밖으로 내뱉고 싶었다.“빨리 나가세요. 저희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요.”누군가가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지금 회사의 문제는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투자가 없는 겁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하고 있어서 저희는 돈이 필요해요. 두 번째는 핵심 기술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손실이 심각해요.”송문수는 더 이상 이사들과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말했다.회의실에 있던 이사들이 잠시 멈칫했다.그들은 송문수가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회사 위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시네요. 그러니까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 주세요.”이사들은 여전히 그를 믿지 않았다.“저는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겁니다.”송문수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결할 건데요?”누군가가 비웃으며 물었다.송문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일주일이면 600억 원의 자금이 마련될 겁니다.”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뭐라고요?”그중 한 이사가 놀라며 물었다.“모자라는 600억 원의 자금은 일주일 내로 해결될 거라고 했습니다.”“어디서 돈을 구할 겁니까? 지금 은행에서도 대출을 거절하고 있어요.”“현경이한테서 빌렸어요.”송문수는 태연하게 말했다.송문수에게 뭐라 반박하려던 이사들은 이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정말로 육현경 씨가 600억 원을 빌려줄 거라고 확신하세요?”누군가가 물었다.“확신합니다.”송문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이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들에게 놓고 말해서 투자 문제는 정말 골칫거리였고 송문수는 그걸 아주 쉽게 해결해 버렸다.‘정말 운도 좋지. 육현경 씨 같은 친구가 있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초대가 안 된다는 걸 알죠?”송문수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게 굳이 시도할 필요가 있나요? 이건 분명한 사실 아닌가요?”오 이사는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송문수 씨, 제발 시간 낭비 좀 그만해요.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맞아요. 저는 아직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되는지 잘 몰라요. 하지만 오 이사님처럼 이렇게 부정적인 태도로 일을 처리하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생겨도 이렇게 소극적인 생각만 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요?”송문수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송문수 씨!”오 이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다소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저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 귀한 시간을 분명히 쓸모없는 일에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제 방법이 쓸모없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오 이사님께 더 좋은 해결책이라도 있으신가 보죠?”송문수가 물었다.오 이사는 말문이 막혔다. 만약 그에게 해결책이 있었다면 이렇게 급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송문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전혀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 오 이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그래서 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거잖아요!”“그럼 그렇게 하시죠. 저는 옆에서 듣고 있겠습니다.”송문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다른 이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도 아무런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논의하자는 거 아니었나요? 왜 아무도 말하지 않죠?”송문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다른 이사들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어색했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돌았다.오 이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송문수에게 따지며 물었다.“회장님 대신으로 오신 거 아니에요?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는데 회장님께서 해결하셔야죠.”송문수는 오 이사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오 이사는 송문수가 웃는 걸 보며 어이가 없었다.
오 이사는 분노에 차서 의자에 앉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유 이사가 입을 열었다.“문수 씨, 회장님도 안 계시는데 회사도 완전 엉망이에요. 일부러 우리를 더 화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저희도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지금은 정말 방법이 없어요.”“저도 여러분을 화나게 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회사 문제를 해결하러 온 거죠. 아니면 저같이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여러분같이 나이 든 사람들과 이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겠어요? 무시까지 당하면서 말이에요.”송문수가 직설적으로 말했다.하지수는 20명 이상의 이사들 안색이 모두 굳어버린 것을 발견했다.‘공개적으로 그들을 ‘나이 든 사람들’이라고 말하다니... 비즈니스계에서 유능한 사람들인데...’“다들 해결책이 없으시다면...”송문수는 이사들의 표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말했다.“왜 제 해결책을 시도해 보지 않는 거죠?”“송문수 씨 해결책은 시도할 가치조차 없으니까요!”오 이사는 다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무엇이든 시도해 볼 가치는 있어요.”송문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 매니저님께서 우리랑 신분이 다르니까 오지 않으실 거라고요? 또 경쟁 상대라서 오지 않으실 거라고요? 만약 경쟁 상대가 아니면요?”“어떻게 경쟁 상대가 아닐 수 있죠?”오 이사가 반박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우리가 그들의 기술 라이센스를 구매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송문수가 물었다.“만약 우리의 핵심 기술을 믿지 못하겠다면 새로운 기술을 다시 사들이면 되는 거죠.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라면서요? 그분과 협력하는 겁니다. 같이 만들면 되는 거죠. 저희끼리 만든 것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지 않을까요?”그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송문수는 조금 거만하면서도 무심한 듯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모두가 잠시 멍해졌다. 다들 그의 입에서 꽤 괜찮은 해결책이 나오게 될 줄 몰랐다.그들은 어떻게 이 신에너지 자동차를
송문수와 하지수는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갔다.송문수는 의자에 덜컥 앉으며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하지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겁먹었어? 방금까지 오 이사님을 그렇게 몰아붙였으면서?”“그래도 명색이 대리 회장님인데 당연히 회장 같은 포스를 보여야지.”송문수는 깊게 숨을 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그래도 이사님들이 앉아 있는 걸 보니 좀 무섭더라. 그나저나 방금 나 잘한 거 맞아? 이사님들이 나중에 나한테 복수하려 들지는 않을까?”“그럴 리 없어.”하지수가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오히려 송씨 그룹에 후계자가 생겼다고 생각할 거야.”“진짜?”송문수는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그렇게 오 이사님을 무시했는데 나한테 복수하려고 하진 않을까?”“그냥 잘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문수 씨가 잘하면 다들 문수 씨를 더 존중하고 믿게 될 거야.”하지수는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그럼 오늘 나 잘한 거야?”송문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잘했어.”그 말에 하지수는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송문수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기뻐할 때가 아니야. 송씨 그룹은 아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방심하면 안 돼.”하지수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송문수도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회사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해도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그는 하지수에게 물었다.“그럼 이젠 뭘 해야 하지?”하지수가 송문수를 바라보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예전에는 단지 회사에 놀러 오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회사를 관리하려니까 조금 혼란스럽네...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하지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문수 씨가 제대로 회사를 관리하려고 하니까 나도 너무 기뻐. 부모님도 정말 기뻐하실 거야.”칭찬을 받은 송문수는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 같았다.‘지수 요즘 칭찬을 너무 잘 해줘서 좋아...’“그럼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송문수가 의욕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투자 문제는
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지자 예수진이 다급히 말을 받았다.“너랑 나랑은 다르지.”“뭐가 다른데?”“난 너 안 좋아하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야.”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예수진에 하도경은 충격받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헤어질 때 준 상처로는 부족했는지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도경의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수진이었다.“진짜 사랑했던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어, 내 말이 맞지 지수야?”일부러 하지수를 언급했지만 그녀는 입술만 말아 물고 있었고 오히려 송문수가 대답을 가로챘다.“그냥 친구로 지낼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그럴 수도 있지.”하지수는 입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냈고 예수진은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막 뱉는 송문수를 노려보며 저 싹수면 이혼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우리 진짜 오랜만에 모인다, 다음에 만날 때쯤이면 우리 애도 다 태어났겠어.”“도경아, 오늘은 진짜 취하기 전엔 아무도 집에 보내지 말자.”계지원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하자 하도경도 눈치 있게 대꾸했다.“좋아.”어차피 예수진 때문에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 더 다칠 마음도 없었기에 하도경은 공허한 제 가슴에 술이나 퍼부으려고 맥주를 따기 시작했다.그렇게 남자들 앞에 한 병씩 놓아준 하도경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 여자분들은 물, 우유, 음료수 중에 고르세요.”“전 물 마실게요, 알아서 마실 테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전 맥주 주세요.”평소엔 술을 즐기지도 않고 예수진과 소이연이 마실 때만 한 잔씩 같이 마시던 하지수가 갑자기 맥주를 요구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요즘 송승우 옆에만 있느라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송승우는 좀 어때?”궁금한 건 못 참는 예수진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하지수를 향해 물었다.“아직도 죽겠다고 난리야?”“아니,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다 큰 남자가 왜 자기 목숨으로 가족들 협박하는 거야?”처음에는 송승우를 안타까워
그 한 달 동안 송문수는 하지수 앞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부모님이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집으로 불러도 송문수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말은 그렇게 해도 본인이 내키지 않아서 안 온다는 걸 허영지와 송기명은 알고 있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송승우의 회복속도는 눈에 띄게 빨랐다.송씨 집안 주치의가 매일같이 검사를 진행하며 회복속도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두 달 뒤에 바로 의족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소견도 듣게 되었다.그 말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내 큰 시름을 덜었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송승우와의 교제를 약속한 하지수도 매일 그의 옆을 지키며 함께 재활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그렇게 별장에서만 지내던 어느 날, 하지수는 예수진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곧 출산하는 데 그러면 산후조리원에 가야 해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 못하니 그전에 한 번 만나서 원 없이 밥이나 먹자는 연락이었다.그 말을 들은 하지수는 자신에게도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싶어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지금 본인의 상태가 우울한 건지는 잘 몰랐지만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송문수도 가는 거야?”예수진과 밥을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송승우에게 했을 때 그가 던진 첫마디가 바로 저것이었다.송문수와 예수진의 사이가 돈독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송문수와 하지수가 따로 만날까 봐 걱정돼서 한 질문인 것 같았지만 하지수는 바로 대답했다.“몰라요, 그건 안 물어봤어요.”“그런데 문수 씨가 간다고 해도 내가 못 갈 이유는 없잖아요. 송문수 때문에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안 볼 순 없어요.”하지수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 당황했던 송승우는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속 아프니까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네.”그날 저녁 하지수는 바로 예수진의 집으로 향했다.그때 집에는 예수진의 가족뿐이었는데 안 본 사이 더 커진 배를 보니 두
이혼 시간까지 다 정하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둘은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었다.그 숨 막힌 정적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송문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송문수는 하지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돌려 집을 나서버렸다.서울을 떠날 때처럼 미련 없이 돌아서는 송문수에 하지수의 시야가 흐려졌다.하지수는 뿌얘진 시야에 끝까지 그의 뒷모습을 담았다.이튿날, 하지수는 약속대로 송문수와의 이혼을 위해 법원으로 향했는데 송문수는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하지수가 차에서 내리며 안에 앉아있는 또 다른 이와 뭐라고 말하는 걸 지켜보았다.그 안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송승우일 것이기에 송문수는 시선을 돌리며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된 상태였기에 그는 이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잠재우고 있는 것이었다.하지수는 대화를 마친 건지 종종걸음으로 송문수에게 다가가 말했다.“오래 기다렸어? 미안해.”“아니야, 내가 빨리 온 거야.”그녀가 제게 다가오자 송문수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말했다.“들어가자.”“그래.”그렇게 둘은 법원으로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때 송문수가 합의서를 건네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작성했는데 맘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줘, USB 챙겼으니까 여기서 고칠 수 있어.”사실 어젯밤 송문수가 파일을 보내와서 하지수는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니 양육권 싸움도 없었고 이익을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재산분할에도 큰 문제 없었다.그럼에도 제게 40억을 주겠다는 송문수를 하지수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어차피 큰돈도 아니라서 헤어지는 대가로 주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가 그저 받기로 했다.송문수한테는 정말 적은 돈이긴 하니까.그리고 돈으로서 둘 사이를 깔끔히 정리하는 걸 송문수도 원할 것 같아 하지수는 결국 그걸 받는 조건으로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다.이혼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이 한 달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다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핸들을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임에도 송문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집으로 향했다.차가 멈추자 하지수는 송승우를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는데 송승우의 몸은 껌딱지처럼 하지수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다.그를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히는 모든 과정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마치 매일 하던 행동인 것 마냥, 그래서 몸에 배어버린 것마냥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하지수, 송문수, 송승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허영지와 송기명도 마침 도착해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보름 동안 돌아오지 못했던 집이 그리웠던 허영지와 송기명은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아무리 편한 호텔에서 자도 제집만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먼저 잠부터 청했다.그리고 송승우도 피곤해해서 하지수는 휠체어를 밀며 그를 방에 데려다주었다.순식간에 혼자 남아버린 송문수는 소파에 앉아 하지수를 기다렸다.원래는 송문수를 데려다주고 나가려 했는데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 하지수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솔직히 하지수가 언제 내려올지는 미지수였기에 송문수는 하지수가 잠에서 깬 다음에 내려올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지만 송문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 홀로 내려오는 하지수가 보이자 송문수의 심장박동은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몸에 힘이 자꾸만 들어가며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지 몸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하지수가 자연스럽게 송문수의 옆에 자리 잡고 앉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는 아직도 어색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부부인데도 부부답지 않았고 가족임에도 가족 같지 않은 둘의 애매모호한 사이 때문이었다.이렇게 보니 제 인생은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것 같아 송문수는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나한테 할 말 있다며, 뭐야?”송문수는 더 이상의 희망을 품지 않기 위해, 하지수와 한 지붕 아래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난 충동적인 적 없어요, 그리고...”하지수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송승우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그럼 너 나랑 다시 사귈 수 있어?”터무니없는 그의 말에 하지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송승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네가 내가 아닌 송문수를 좋아한다는 걸 난 못 믿겠어. 난 아직도 네가 그때 내가 말도 떠난 일로 화내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랑 다시 사귀자. 6개월만 만나보고 그때도 네가 송문수를 선택한다면 나도 깔끔하게 포기할게.”하지수는 자신이 송승우를 다시 좋아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완벽히 포기해야 끝나는 싸움이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버렸다.하지수는 이제 송승우와의 이 지긋지긋한 인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좋아요.”하지수가 긍정적인 답을 하자 자신만만했던 송승우의 얼굴에는 바로 미소가 번졌다.자신이 한쪽 다리를 잃긴 했지만 송승우는 그래도 하지수의 사랑을 다시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송승우는 단 한 번도 송문수를 제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하지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완벽한 저를 놔두고 멍청한 송문수를 선택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조건이 하나 더 있어.”“말해요.”“문수랑 이혼부터 해.”“네가 나랑 사귀겠다고 했잖아. 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게 싫으니까 당당하게 너랑 만나고 싶어.”송승우의 말에 하지수는 입술을 말아 물고 생각에 잠겼다.송문수와의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송승우와 만나는 건 바람피우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데 그건 서로에 대한 존중을 깨는 거라서 하지수도 썩 내키진 않았다.“알겠어요.”하지수가 이혼만 하면 저와 재결합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기에 송승우의 미소는 아까보다 더 선명해졌다.“대신 나도 조건이 있어요.”“뭐든 말만 해.”기분이 좋았던 송승우는 하지수가 제시한 조건을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송승우는 하지수는 어차피 저 아니면 안 된다고 자신을 하고 있었다....일주일 뒤, 송승우가 퇴원하자 드디어 가족들이 전부
“네.”“회사 일을 이제는 문수가 다 책임지고 있으니까 빨리 가는 것도 맞지, 승우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이제 매일 간호할 필요도 없잖아.”하지수를 직접 키워온 허영지는 그녀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그래서 빈말이지만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네.”그런 허영지의 노력을 보아낸 건지 하지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도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저 이제 중환자실에서도 나오고 의사 선생님도 별문제 없다고 했으니까 두 분은 먼저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도 가능하다고 하잖아요.”“그래.”송승우의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마음을 놓을 수도 있었고 또 지금 하지수와 단둘이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속내가 너무 눈에 훤해서 허영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우린 그럼 먼저 갈게. 지수야, 승우 잘 부탁해. 네가 고생이 많다.”말이야 친절하기 그지없지만 사실은 하지수의 발을 여기 묶어두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네.”하지수 역시 제 시어머니의 의도를 알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하지수의 대답을 들은 허영지는 마음이 한결 놓여 송기명을 밀며 병실을 빠져나갔다.송기명은 등 떠밀려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허영지와 송기명이 나간 병실에는 하지수와 송승우 둘뿐이었다.“과일 좀 먹을래요?”“응, 고마워.”하지수가 먼저 그 어색한 정적을 깨며 묻자 송승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배를 집어 든 하지수는 열심히 깎기 시작했는데 송승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한참 지나 껍질을 다 깎아낸 하지수는 배를 작게 썰어 송승우의 앞에 놓아주었다.“천천히 먹어요.”“넌 안 먹어?”“입맛 없어요.”송승우는 입맛 없다는 하지수에게 굳이 권하지 않고 천천히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도도하고 자신만만하던 송승우의 모습을 다시 본 하지수는 송승우의 말대로 거기에 자신의 공
하지수는 송문수를 따라 송승우의 병실을 빠져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송문수를 기다리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차 문도 열지 못하고 망설이던 송문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그냥 차에 타려 했는데 그 순간 하지수가 그를 불러세웠다.“문수 씨.”“장안시로 돌아가면 서울엔 다시 올 거야?”“안 올 것 같아 아마. 송승우도 많이 나았으니까 얼마 안 있으면 퇴원하겠지. 그럼 엄마 아빠가 송승우 집에 데려가서 보살피려 할 텐데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와 힘들게.”“그래서 나 혼자 여기 버려두겠다는 거구나.”하지수가 내뱉은 담담한 한마디에 송문수는 심장박동이 멎는 것만 같았다.숨을 내쉴 수조차도 없이 가슴이 아파와서 그는 이를 악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여전히 침묵만 유지하는 송문수에 마지막 기대도 사라져버린 하지수는 이제 그만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송문수 말대로 자신은 그저 그가 마음을 다잡을 때 마침 옆에 있었던 여자일 뿐이니,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것도 욕심인 것 같았다.아무리 노력해봐도 송문수의 마음은 저를 향하지 않으니 하지수는 이제 그와의 사이를 끝내려 했다.“조심히 가.”이렇게라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했으니 하지수는 그거면 된 것 같았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지만 저 짤막한 한마디만 내뱉고 웃으며 돌아섰다.그 작은 몸통이 외로이 돌아서는 걸 보던 송문수는 가슴이 아파왔다.정말 제가 하지수를 버린 것만 같아서, 또 하지수를 혼자만 남겨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왔다.주먹을 꽉 말아쥔 채 온몸을 떨어대던 송문수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그는 제 충동을 잠재우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뎌 결국 차에 올라탔다.하지수에게는 송승우가 있었으니, 그녀는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혼자일 리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서기로 했다.한편 한참을
송승우가 병실을 옮기고 나니 가족들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엄마,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저 걱정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죠.”“너만 괜찮을 수 있다면 우린 뭐든 다 할 수 있어.”병원 침대에 누운 채 감성 어린 말을 하는 송승우를 향해 허영지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허영지는 송승우가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았다.더 이상 나쁜 생각은 하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씩씩하게 본인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제가 하루빨리 마음 다잡아서 이제 엄마 아빠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넌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는 애야, 넌 계속 우리의 자랑이었어.”제 손을 잡은 채 저와 눈을 맞추며 말하는 엄마를 향해 송승우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정말 눈물 나도록 다정한 모자지간이었다.송승우가 병실을 옮긴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송문수도 병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끼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라이터만 만지작거리는 그는 어쩐지 제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한편 허영지와 대화를 나누던 송승우는 하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아직까지도 간호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물어가며 앞으로는 어떻게 재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묻고 있었다.자신의 일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하지수를 보며 송승우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 지수야.”“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요 뭘.”“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빨리 마음 다잡을 수 있었어. 너 아니었으면 현실을 이렇게 빨리 받아들이진 못했을 거야.”“나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하지수는 결국 그 감사 인사를 받아들인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다시 간호사를 보며 디테일하게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물었다.다들 제 자리를 잡은 듯한 모습에 송문수는 그만 병실을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송기명이 그를 불러세웠다.“문수야, 어디 가?”“장안시로 돌아가야죠 이제.”담담히 말하는 송문수에 송기명은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지금
허영지의 말에 다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고 그 시선 끝에는 하지수가 서 있었다.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하지수는 송문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지수야, 여긴 어떻게 왔어?”그런 하지수를 본 허영지는 다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하지수가 송문수의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들었다면 둘 사이에 감정이 있든 없든 마음이 아플 것은 당연지사였기에 허영지는 하지수가 안쓰러웠다.하지수는 굳어버린 고개를 힘겹게 돌리며 허영지를 향해 말했다.“일어나보니까 호텔에 아무도 없어서 왔어요.”눈 떠보니 사라져버린 송문수에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온 거지만 혹시나 송문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오지 말라고 말릴까 봐 연락은 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송문수가 또다시 허영지와 싸울까 봐 말도 없이 온 건데, 오자마자 하지수는 송문수가 내뱉는 차가운 말들을 모조리 들어버린 것이다.저를 물건 취급하며 송승우에게 넘겨주겠다는 송문수의 말에 하지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이제 좀 달라진 줄 알았는데, 송문수한테 저는 여전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란 걸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모든 게 다 저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아 하지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아직도 많이 피곤해서 전 이만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그래서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병원을 나섰다.자신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는 하지수를 보며 허영지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하지수가 친딸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같이 키워왔던 아이였기에 허영지는 그녀를 친딸 이상으로 아껴주었다.부모도 잃은 아이가 저렇게 충격받은 모습으로 자리를 뜨는 게 가슴이 아팠지만 허영지는 끝내 송문수 더러 하지수를 위로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허영지는 이번에도 이기적이게 송승우를 위해 송문수를 희생시킨 것이다.송승우가 나을 수만 있다면 송문수와 하지수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송기명은 그런 아이들을 두고 볼 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