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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eur: 밤새
그들은 마치 실에 꿰인 구슬처럼 손에 붉은 실을 쥐고 흰 안개 속을 누볐다. 문기범이 가장 앞에서 걸었고 손경진이 뒤에서 문기범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옷을 꽉 잡고 있었다.

안개가 너무 짙게 낀 탓에 꼭 붙어 있어도 서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촉감에 의지하며 혹시라도 일행과 떨어지지 않게 바짝 붙어서 걸었다.

안개숲 중심에 도착하여 더는 아무도 도망칠 수 없게 되었을 때 문기범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래?”

손경진은 살짝 당황하며 불안해했다. 문기범의 옷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문기범은 씩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황천길은 알아서 걸으세요.”

손경진은 그제야 뒤늦게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어 문기범을 자신의 곁으로 끌고 온 뒤 그를 공격했다.

찌지직 소리와 함께 옷이 찢겼다. 그러나 옷에 감싸인 것은 문기범이 아니라 큰 바위였다.

문기범은 언제 도망친 것일까?

손경진은 경악한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혹시라도 문기범이 허튼수작을 부릴까 봐 줄곧 그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결국 함정에 빠져버렸다.

“어서 돌아가야 해.”

손경진은 황급히 몸을 돌리며 초조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더니 서둘러 붉은 실을 잡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안개 속에서 제일 마지막에 서 있던 사람이 외쳤다.

“큰일입니다.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붉은 실이 끊어졌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다들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안개숲에 들어왔는데 붉은 실이 끊어졌으니 어떻게 무사히 돌아간단 말인가?

손경진은 이를 악물면서 발을 굴렀다.

“젠장, 망할 놈이 나를 농락했어. 여봐라, 홍씨 가문의 호위대장을 데려오거라.”

“큰일입니다. 호위대장이 사라졌습니다.”

“빌어먹을!”

손경진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고 바닥에 1미터 깊이의 구덩이가 생겼다.

손경진은 평생 노련하고 주도면밀하게 살아온 자신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는 소년에게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빌어먹을 놈, 난 너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았다. 겨우 안개숲으로 날 곤경에 빠뜨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손경진은 하늘을 향해 크게 외쳤다.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그런 기회는 절대 없을 거예요.”

돌연 안개숲 속에서 문기범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흰색 안개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안개가 붉게 변하고 있어요!”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주위 환경을 둘러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사람을 죽일 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산적들조차 이런 기괴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식견이 넓으신 관리인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 산적이 초조한 얼굴로 외쳤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그만 이 숲속에 홀로 남은 듯했다.

다른 이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처음에 붉은 실 하나를 따라가던 이들 모두 사라졌다.

손경진은 이러한 상황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댔다.

“설... 설마... 진법인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많은 것을 보아온 손경진은 이 진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더욱 놀라워했다.

진법이라면 모두 자연의 힘을 빌려야 했다. 진법을 조종한다면 혼자서도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 십여 명, 심지어 수십 명을 죽일 수 있었다. 그만큼 진법의 위력은 대단했다.

손경진은 본인이 이런 진법에 갇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문기범,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손경진은 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난생처음 깊은 두려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제야 문기범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진법을 알겠는가? 문기범이 처음부터 진법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손경진은 그를 추격할 생각 따위 추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안이 있는 곳에서 대진을 조종하던 홍은진은 진법 내의 상황을 모두 알 수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옆에 있던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문기범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더니 한결같이 태연한 얼굴로 덤덤히 말했다.

“죽여요!”

죽이라는 지령에 홍은진은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그 순간 핏빛 안개가 완전히 검은색으로 뒤바뀌며 모든 이들을 짙은 검은 안개 속에 휩싸이게 했다. 조금 전까지는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자기 자신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귓가에서 처절한 울부짖음만이 들리는 듯했다.

사람들이 외로움과 두려움 때문에 반항할 힘을 잃자 검은색의 기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그들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육체와 영혼이 무언가에 잠식당하는 기분을 느꼈지만 전혀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문기범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빠르게 움직여 다른 진안이 있는 곳에 도착한 뒤 가부좌를 틀었다.

구유비록에 따르면 모든 진법은 천마대화결과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진법 안의 사람들은 모두 마화가 되었으니 문기범은 이제 그들의 원력을 모두 빨아들이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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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많은 생사 고비에서 문기범은 항상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위기를 해결해 왔다. 채용준을 상대할 때도 안용구를 상대할 때도 문기범이 마음에 품은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 거물들에 비하면 지금 눈앞의 이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홍은진은 깨달았다. 문기범이 당황하지 않으면 문제없다는 것을. 무표정의 문기범을 보며 홍은진은 무심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우리 홍씨 가문은 풍인성에 수백 년을 뿌리내렸어요. 그렇게 쉽게 멸문당하겠어요? 손은비 씨, 손씨 가문이 풍인성에 온 지 고작 수십 년밖에 안 되었죠. 말조심하세요.” 이 순간, 홍은진은 비로소 홍씨 가문의 아가씨다운 긍지와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 자신감에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가문이 흥성한 손은비는 오히려 양아치처럼 보였고 홍은진이야말로 진정한 세가의 아가씨다운 모습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본 손은비는 얼굴이 빨개지며 원력이 절로 분출되었다. “홍은진, 오늘 네게 날개 꺾인 독수리는 닭만도 못하다는 걸 가르쳐주겠어.” 말을 마친 손은비는 홍은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성훈은 다급하게 홍은진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양측이 맞붙기도 전에 부채 하나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빠...” 손은비는 부채의 주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눈이 빨개져 있었다. 젊은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손은비는 쳐다보지도 않고 홍은진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가씨, 제 사촌 동생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사실 오늘 저희는 홍씨 가문의 관리인을 찾으러 왔습니다. 제 사촌 동생이 받은 모욕에 대한 공의를 구현하고자 함이지 아가씨와는 무관하죠. 그 사람만 넘겨주신다면 홍씨 가문 사람들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사촌오빠, 우리 다 같이 없애기로 했잖아요. 왜...” 손은비는 당황하며 말했지만 남자는 부채를 펴 그녀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게다가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홍씨 가문

  • 마황의 귀환   제29화

    다음 날 아침, 문기범은 여관방에서 좌선 중이었다. 갑자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들었다. 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헐떡이는 방성훈이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큰일 났어! 밖에 손씨 가문 사람들이 포위했어!” 천천히 눈을 뜬 문기범은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시비 거는 놈들이 왔네요.” “음, 넌 왜 하나도 급해하지 않아?” 방성훈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문기범은 태연하게 손을 저으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저는 기다리고 있던 참이에요. 홍씨 가문 남매도 불러서 같이 나와요.” 이 말을 들은 방성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문기범은 명목상 홍씨 가문의 관리인이었고 외부인 앞에서는 홍씨 남매를 아가씨, 도련님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사사건건 그 남매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방성훈이 대신 가법을 집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가장 중요한 건 문기범이 말투는 매섭지만 속은 부드럽다는 점이었다. 매일 홍재호와 홍은진을 욕했지만 위급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도 그였다. 어제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홍은진을 호되게 꾸짖은 것도 그랬다. 잠용각과의 협상을 망칠 뻔했다며 말이다. 홍은진은 마음속으로 억울해했다. 그녀는 어제 대체 어떤 협상이 이루어졌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용구가 떠날 때의 표정으로 보아 문기범이 홍씨 가문을 위해 큰 이득을 챙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홍씨 가문이 풍비박산 난 처지에서도 백만 개의 영석을 단숨에 얻어 거리로 내몰리거나 남의 밥줄을 구걸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모두 문기범 덕분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어제 모두가 안용구가 문기범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는 점이다. 그가 있는 한 홍씨 가문은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고 했다. “재능 있는 사람은 하인이라도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구나!” 방성훈은 턱을 쓰다듬으며 문기범의 뒷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 마황의 귀환   제28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문기범은 그림을 안용구 앞으로 내밀며 웃었다. “영석 천만 개로 하죠. 우선 저희는 백만 개를 받고 나머지는 천천히 갚으세요. 당신이 저희에게 빚진 셈이죠.” “그건...” 안용구는 앞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 갚을 때까지 우리 잠용각이 홍씨 가문에게 빚진 것으로 하지.” 말을 마친 안용구는 그림을 들고 객실을 나갔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수야, 그들에게 백만 개를 주고 보내.” “음, 네!” 안지수는 잠시 망설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안용구가 이렇게 우울한 표정을 지은 걸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문기범을 바라보니 그는 문을 들어온 이후로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어 안지수는 1백만 개의 영석을 문기범에게 건네주고 그들을 바래다주었다. 문 앞에서는 두 경비가 그들이 나오는 대로 혼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안지수가 그들을 매우 공손하게 배웅하는 걸 보자 멍해졌다. 게다가 이번 거래 금액이 영석 백만 개라는 말을 듣고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에서 이렇게 큰 거래가 이루어질 줄이야. 잠용각의 거래 역사상 상위 3위 안에 들 만한 액수였다. “이런, 손을 대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뻔했어.” 한 경비가 네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마의 땀을 닦고 탄식했다. 다른 한 명도 병아리가 쌀을 쪼아먹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용각은 고액 고객을 극진히 예우하는 곳으로 만약 잠용각 소속 사람이 이들을 함부로 대하면 가문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특히 이렇게 백만 개 이상의 거래를 한 고객에게는 조금이라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이를 생각하니 두 경비는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편, 안지수는 문기범 일행을 보내고 다시 안용구의 방으로 갔다. 이때 안용

  • 마황의 귀환   제27화

    “삼촌, 이건...” 안지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안용구를 바라보며 눈빛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안용구는 그저 손을 저으며 외눈으로 차분하게 앉아 있는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문기범 역시 안용구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너무 적어요.” “뭐...” 문기범의 말에 모두가 숨을 멈추었다. 안용구는 물론, 홍은진과 방성훈마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180만 개의 영석은 홍씨 가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였다. 홍은진 같은 아가씨도 꿈에서조차 홍씨 가문에 이렇게 많은 영석이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을 터인데 하인 출신의 문기범은 오히려 액수가 적다고 투덜대는 격이었다. 이에 홍은진과 방성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만약 문기범이 귀운산장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가 왕실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안목은 정말 너무 높았다. 하지만 문기범의 이 발언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안용구의 대답은 다시 한번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점은 이 늙은이도 알고 있네. 하지만 180만 개는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이야. 그 이상은 없어.” “음, 그럼 안용구님의 체면을 봐서 180만 개로 하죠.” 홍은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문기범이 대충 그린 그림 한 폭이 이렇게 가치가 높을 줄이야. 신안 안용구가 모든 재력을 쏟아부어 사려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안용구의 표정을 보니 이 그림을 반드시 손에 넣으려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인정을 팔고 동시에 잠용각과 친분을 다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역시나 안용구는 홍은진의 말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림을 말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문기범이 손바닥으로 그림을 탁자에 눌러버리며 차갑게 말했다. “더 높은 가격을 내실 수 없다면 이 거래는 취소하겠습니다.” “문기범!” 홍은진은 깜짝 놀라 문기범에게 계속 눈짓을 했지만 문기범은 전혀 보지 못한

  • 마황의 귀환   제26화

    “뭐, 뭐라고요? 제가 모른다고요?” 안지수는 멍해지며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속으로는 은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릴 적부터 그녀가 한 번 본 것이라면 그 모든 특성을 정확히 기억하고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장에서 가짜 먹옥의 문제점을 몰라도 진위를 가릴 수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천재성이자 잠용각 내에서 급속도로 최고의 감정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한마디로 천재였다. 하지만 문기범의 말은 그녀의 천재성에 대한 타격이자 감정 기술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건 어떤 인신공격보다도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문기범 선생님, 당신의 안목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 자만하지 마세요.” 안지수는 분노보다 더한 분노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기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감정사는 없나요?” 잠시 침묵하던 안지수는 마침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기다리세요.” 말을 마친 안지수는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홍은진은 걱정스럽게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우리 잠용각을 건드린 건 아니지?” 문기범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안지수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녀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외눈의 노인이었다. “신안 안용구님?” 홍은진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문기범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은 잠용각 풍인성 총주관자이자 수석 감정사인 신안 안용구님이야.” “홍씨 가문의 아가씨로군.”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안용구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모두의 귀에 전해졌다. “20년 전 아가씨의 아버지를 만났을 땐 그놈이 얼마나 기개 넘치던지. 그런데 이제 후손이 가보를 팔 지경이 되다니 참으로 뜻밖이네.” 문기범은 마음속으로 긴장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사람의 실력은 채용준보다 훨씬 높아서 문기범으로서는 도저

  • 마황의 귀환   제25화

    “20만 개라, 하하...” 문기범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림을 받아들이려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안수지 아가씨가 이렇게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거래는 취소하겠습니다.” 안지수는 몸을 뒤로 젖히며 그림을 꼭 끌어안았다. 마치 문기범이 빼앗아 갈까 봐 두려운 듯했다. “선생님, 1급 진식도일 뿐이에요. 20만 개도 적지 않아요. 게다가 이것은 옥간에 보관된 것이 아닌 수제잖아요. 20만 개를 제시한 것도 매우 공정한 가격이에요.” “하하, 안수지 아가씨. 제가 책을 적게 읽었다고 해도 이렇게 속이시면 안 됩니다. 어서 그 그림 돌려주세요.” 문기범은 손을 내밀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림을 꽉 움켜쥔 안지수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이번에는 제가 손해 보겠습니다. 30만 개.” “안수지 아가씨, 여전히 성의가 없으시군요.” 문기범은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그림을 다시 가져오려고 손을 뻗었다. 안지수는 계속 뒤로 움츠리며 문기범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 이 그림에 그려진 것은 확실히 1급 진식도였다. 안지수는 1급 진식도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감정으로는 25만 개가 적당했다. 20만 개를 제시한 것도 문기범이 이 분야 전문가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식도 위의 많은 진식들은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잠용각이라는 천우 제국 제일의 보감 명가의 진식도 속에서도 그녀가 모르는 진식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매우 신선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이 진식도를 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기범은 마치 이 점을 꿰뚫어 본 듯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실권 없는 홍씨 가문의 홍은진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이 그림은 기껏해야 30만 개입니다. 게다가 천우 제국 전체에서도 우리 잠용각만이 이 그림을 살 실력이 있어요. 다른 곳에 가시면 이 가격도 받기 힘들 겁니다.” “

  • 마황의 귀환   제24화

    “오호?” 안지수는 눈빛이 번뜩이며 홍은진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내놓으실 보물을 저도 꼭 보고 싶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지수는 말하며 앞장섰다. 문기범은 움츠러든 세 사람을 데리고 뒤따랐다. 두 경비만이 멍하니 네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보며 중얼거렸다. “방금 그 사람은 아가씨의 친구인가?” “아니겠지. 아가씨께서 그런 궁색한 친구를 두셨을 리 없어. 아마도 감정 실력 좀 늘려보시려는 거겠지. 하지만 막상 꺼낸 보물이 아가씨 마음에 들지 않으면 쫓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땐 히히히...” “맞아, 그때는 반드시 저 사람들을 혼내줘야겠어. 특히 저 오만한 문기범을. 하지만 만약 진짜 보물을 내놓아 아가씨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런 궁상맞은 놈들이 먹옥이라도 내놓으면 다행이지, 하하하.” 이 말을 들은 다른 경비 역시 큰 소리로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곧 있을 작업을 준비하는 눈치였다. 한편, 안지수는 네 사람을 호화로운 방으로 안내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안지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보물을 가져오셨는지 어서 보여주세요.” 문기범은 안지수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 소녀는 세속을 초월한 듯 보이지만 매우 영리했다. 아까 문밖에서 일어난 일을 이 소녀가 모두 알고 있었을 거라고 문기범은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두 경비를 이용해 그들을 시험했고 이를 통해 협상 전략을 결정하려 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문밖에서 조금이라도 굴복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지금 이 소녀의 태도는 훨씬 강경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소녀가 영악하더라도 문기범이라는 늙은 마왕 앞에서는 아직 한참 어렸다. 문기범이 손을 휘젓자 한 폭의 그림이 그녀 앞에 펼쳐졌다. 그림에는 빽빽이 이상한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애매모호한 것이 안지수의 시선을 순간적으로 사로잡았다. 두 손으로 그림을 조심스럽게 받아 든 안지수는

  • 마황의 귀환   제23화

    풍인성의 가장 동쪽 끝에는 수십 장 높이의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우뚝 서 있었다. 웅장한 대문은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압박감을 느끼게 해서 백 미터 안에는 아무도 머물지 못했다. 문 앞에는 황금색 옷을 입은 두 명의 경비만이 서 있었지만 그들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기세는 마치 백 명의 정예 병사가 서 있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 두 경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칼날이 스치는 듯한 날카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평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곳에 어느 날 네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취기경 절정!” 문기범이 이곳으로 걸어오며 중얼거렸다. 뒤에는 홍은진, 홍재호, 방성훈이 따라오고 있었다. 문기범의 태연한 모습과 달리 세 사람은 두 경비의 눈길을 마주치자마자 온몸이 굳어버려 걷는 법을 잊은 듯한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멈춰!” 문기범이 문 앞에 다다르자 두 경비가 손을 내밀며 그를 막았다. “잠용각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려는 것이냐?” “전달해 주세요. 귀운산장 홍씨 가문의 홍은진이 이곳의 주관자를 만나고자 합니다.” 문기범은 앞만 바라봤으며 경비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런 태도에 두 경비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풍인성에서 잠용각의 주관자를 만나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전전긍긍하며 허리를 굽혀 간청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없었다. “홍씨 가문? 들어본 적도 없는 가문은 주관자님께서 만나주지 않아!” 한 경비가 차갑게 말했다. 이 말에 홍은진은 고개를 숙였다. 잠용각 같은 어하칠세가에게 홍씨 가문은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다. 동맹은커녕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문기범...” 홍은진은 문기범의 소매를 잡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문기범은 소매를 뿌리치며 비웃듯 말했다. “만나주는 건 당신들 주인의 결정이죠. 노예 따위가 주인을 대신해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뭐라고?” 두 경비는 호통치며 화를 머금은 얼굴로 전신의 기세를 확 터뜨렸다. 순간 모두가 숨이 막히는 듯

  • 마황의 귀환   제22화

    사실 손은비가 맞은 걸 가장 통쾌하게 여긴 건 바로 홍은진이었다. 이 점은 방성훈도 눈치챘을 터, 문기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기범은 더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악연이 생긴 이상 상대방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손씨 가문은 칠세가와 관련된 가문이로군요.” “어, 어떻게 알았어?” 홍은진의 손이 덜컥 떨리며 불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문기범이 장난이라고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문기범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고 진지했다. “아까 그 여자가 외쳤어요. 어하칠세가의 위력을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무의식중에 어하칠세가를 건드리게 된 거야?” 순간 홍은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사고가 멈춘 듯 굳어버렸다. 방성훈 역시 눈알이 툭 튀어나올 듯하며 심장 박동이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멸망이라도 한 듯 고요해졌다. “문기범, 어서 손은비 씨에게 사과하러 가자.” 홍은진은 다급하게 문기범의 소매를 잡고 채씨 가문 저택 쪽으로 가려 했지만 문기범은 마치 땅에 박힌 말뚝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가봤자 죽으러 가는 겁니다.” 문기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이 말에 홍은진은 멍하니 주저앉으며 무력감에 빠졌다. 문기범의 말이 비록 가혹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실이었다. 어하칠세가를 건드린 것을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범 형님, 그럼 이제 어떡하면 좋죠?” 갑자기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홍재호가 어느새 문기범 앞에 서서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의외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문기범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평소 남을 얕보기 일쑤였던 이 말썽꾸러기가 이렇게 순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이야. “이제 저를 개 같은 놈이라 부르지 않는군요?” 문기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말했다. “기범 형님은 저희 남매 생명의 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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