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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Author: 밤새
바닥의 타일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취기경 고수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무릎이 부서지고 하반신이 마비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고통에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문기범이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또 너구나.”

두 사람은 이들 중 문기범만이 그들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젠 너희가 무릎 꿇고 빌어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손은비는 문기범의 차가운 얼굴을 노려보며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문기범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냥 발로 툭툭 차서 날려버렸다.

“무릎을 꿇으라고? 꿈도 꾸지 마.”

순간, 손은비와 채효군은 멍해졌다. 심지어 고통도 잊은 채 넋을 잃고 있었다.

처음 문기범이 그들을 때린 것이 홍은진을 위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홍은진이 직접 입을 열었는데도 감히 우릴 때려? 채씨 가문 저택에서 우리 모두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은가?’

방성훈은 화가 났지만 이 화를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홍씨 가문 남매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홍은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문기범을 잘 모르지만 그녀는 산속에서 도망치던 시절 문기범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했다. 그의 눈엔 주인과 하인의 구분 따윈 없이 항상 자기 멋대로였다. 홍은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어쩌다 우리 홍씨 가문에 이런 하인이 생긴 거지?’

하지만 이번엔 홍재호가 문기범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기범만 쳐다보던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존경심까지 담겨 있었다.

알고 보니 늘 그를 괴롭히던 그 하찮은 놈은 자신들과 같은 주인뿐만 아니라 바깥의 더 강한 세력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말 그대로 하늘도 땅도 무서운 게 없는 인간이었다. 그 순간, 홍재호의 눈에 문기범은 하찮은 머슴에서 홍씨 가문을 구할 영웅으로 변해버렸다.

“누가 감히 채씨 가문에서 난동을 부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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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문기범은 여관방에서 좌선 중이었다. 갑자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들었다. 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헐떡이는 방성훈이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큰일 났어! 밖에 손씨 가문 사람들이 포위했어!” 천천히 눈을 뜬 문기범은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시비 거는 놈들이 왔네요.” “음, 넌 왜 하나도 급해하지 않아?” 방성훈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문기범은 태연하게 손을 저으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저는 기다리고 있던 참이에요. 홍씨 가문 남매도 불러서 같이 나와요.” 이 말을 들은 방성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문기범은 명목상 홍씨 가문의 관리인이었고 외부인 앞에서는 홍씨 남매를 아가씨, 도련님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사사건건 그 남매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방성훈이 대신 가법을 집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가장 중요한 건 문기범이 말투는 매섭지만 속은 부드럽다는 점이었다. 매일 홍재호와 홍은진을 욕했지만 위급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도 그였다. 어제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홍은진을 호되게 꾸짖은 것도 그랬다. 잠용각과의 협상을 망칠 뻔했다며 말이다. 홍은진은 마음속으로 억울해했다. 그녀는 어제 대체 어떤 협상이 이루어졌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용구가 떠날 때의 표정으로 보아 문기범이 홍씨 가문을 위해 큰 이득을 챙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홍씨 가문이 풍비박산 난 처지에서도 백만 개의 영석을 단숨에 얻어 거리로 내몰리거나 남의 밥줄을 구걸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모두 문기범 덕분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어제 모두가 안용구가 문기범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는 점이다. 그가 있는 한 홍씨 가문은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고 했다. “재능 있는 사람은 하인이라도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구나!” 방성훈은 턱을 쓰다듬으며 문기범의 뒷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 마황의 귀환   제28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문기범은 그림을 안용구 앞으로 내밀며 웃었다. “영석 천만 개로 하죠. 우선 저희는 백만 개를 받고 나머지는 천천히 갚으세요. 당신이 저희에게 빚진 셈이죠.” “그건...” 안용구는 앞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 갚을 때까지 우리 잠용각이 홍씨 가문에게 빚진 것으로 하지.” 말을 마친 안용구는 그림을 들고 객실을 나갔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수야, 그들에게 백만 개를 주고 보내.” “음, 네!” 안지수는 잠시 망설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안용구가 이렇게 우울한 표정을 지은 걸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문기범을 바라보니 그는 문을 들어온 이후로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어 안지수는 1백만 개의 영석을 문기범에게 건네주고 그들을 바래다주었다. 문 앞에서는 두 경비가 그들이 나오는 대로 혼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안지수가 그들을 매우 공손하게 배웅하는 걸 보자 멍해졌다. 게다가 이번 거래 금액이 영석 백만 개라는 말을 듣고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에서 이렇게 큰 거래가 이루어질 줄이야. 잠용각의 거래 역사상 상위 3위 안에 들 만한 액수였다. “이런, 손을 대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뻔했어.” 한 경비가 네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마의 땀을 닦고 탄식했다. 다른 한 명도 병아리가 쌀을 쪼아먹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용각은 고액 고객을 극진히 예우하는 곳으로 만약 잠용각 소속 사람이 이들을 함부로 대하면 가문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특히 이렇게 백만 개 이상의 거래를 한 고객에게는 조금이라도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이를 생각하니 두 경비는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편, 안지수는 문기범 일행을 보내고 다시 안용구의 방으로 갔다. 이때 안용

  • 마황의 귀환   제27화

    “삼촌, 이건...” 안지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안용구를 바라보며 눈빛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안용구는 그저 손을 저으며 외눈으로 차분하게 앉아 있는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문기범 역시 안용구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너무 적어요.” “뭐...” 문기범의 말에 모두가 숨을 멈추었다. 안용구는 물론, 홍은진과 방성훈마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180만 개의 영석은 홍씨 가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였다. 홍은진 같은 아가씨도 꿈에서조차 홍씨 가문에 이렇게 많은 영석이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을 터인데 하인 출신의 문기범은 오히려 액수가 적다고 투덜대는 격이었다. 이에 홍은진과 방성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만약 문기범이 귀운산장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가 왕실 귀족 출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안목은 정말 너무 높았다. 하지만 문기범의 이 발언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안용구의 대답은 다시 한번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점은 이 늙은이도 알고 있네. 하지만 180만 개는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이야. 그 이상은 없어.” “음, 그럼 안용구님의 체면을 봐서 180만 개로 하죠.” 홍은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문기범이 대충 그린 그림 한 폭이 이렇게 가치가 높을 줄이야. 신안 안용구가 모든 재력을 쏟아부어 사려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안용구의 표정을 보니 이 그림을 반드시 손에 넣으려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인정을 팔고 동시에 잠용각과 친분을 다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역시나 안용구는 홍은진의 말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림을 말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문기범이 손바닥으로 그림을 탁자에 눌러버리며 차갑게 말했다. “더 높은 가격을 내실 수 없다면 이 거래는 취소하겠습니다.” “문기범!” 홍은진은 깜짝 놀라 문기범에게 계속 눈짓을 했지만 문기범은 전혀 보지 못한

  • 마황의 귀환   제26화

    “뭐, 뭐라고요? 제가 모른다고요?” 안지수는 멍해지며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속으로는 은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릴 적부터 그녀가 한 번 본 것이라면 그 모든 특성을 정확히 기억하고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장에서 가짜 먹옥의 문제점을 몰라도 진위를 가릴 수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천재성이자 잠용각 내에서 급속도로 최고의 감정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한마디로 천재였다. 하지만 문기범의 말은 그녀의 천재성에 대한 타격이자 감정 기술에 대한 부정이었다. 이건 어떤 인신공격보다도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문기범 선생님, 당신의 안목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 자만하지 마세요.” 안지수는 분노보다 더한 분노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기범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감정사는 없나요?” 잠시 침묵하던 안지수는 마침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기다리세요.” 말을 마친 안지수는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홍은진은 걱정스럽게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우리 잠용각을 건드린 건 아니지?” 문기범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안지수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녀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외눈의 노인이었다. “신안 안용구님?” 홍은진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문기범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은 잠용각 풍인성 총주관자이자 수석 감정사인 신안 안용구님이야.” “홍씨 가문의 아가씨로군.”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안용구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모두의 귀에 전해졌다. “20년 전 아가씨의 아버지를 만났을 땐 그놈이 얼마나 기개 넘치던지. 그런데 이제 후손이 가보를 팔 지경이 되다니 참으로 뜻밖이네.” 문기범은 마음속으로 긴장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사람의 실력은 채용준보다 훨씬 높아서 문기범으로서는 도저

  • 마황의 귀환   제25화

    “20만 개라, 하하...” 문기범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림을 받아들이려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안수지 아가씨가 이렇게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거래는 취소하겠습니다.” 안지수는 몸을 뒤로 젖히며 그림을 꼭 끌어안았다. 마치 문기범이 빼앗아 갈까 봐 두려운 듯했다. “선생님, 1급 진식도일 뿐이에요. 20만 개도 적지 않아요. 게다가 이것은 옥간에 보관된 것이 아닌 수제잖아요. 20만 개를 제시한 것도 매우 공정한 가격이에요.” “하하, 안수지 아가씨. 제가 책을 적게 읽었다고 해도 이렇게 속이시면 안 됩니다. 어서 그 그림 돌려주세요.” 문기범은 손을 내밀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림을 꽉 움켜쥔 안지수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이번에는 제가 손해 보겠습니다. 30만 개.” “안수지 아가씨, 여전히 성의가 없으시군요.” 문기범은 실망한 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그림을 다시 가져오려고 손을 뻗었다. 안지수는 계속 뒤로 움츠리며 문기범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 이 그림에 그려진 것은 확실히 1급 진식도였다. 안지수는 1급 진식도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감정으로는 25만 개가 적당했다. 20만 개를 제시한 것도 문기범이 이 분야 전문가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식도 위의 많은 진식들은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잠용각이라는 천우 제국 제일의 보감 명가의 진식도 속에서도 그녀가 모르는 진식이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매우 신선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이 진식도를 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기범은 마치 이 점을 꿰뚫어 본 듯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실권 없는 홍씨 가문의 홍은진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이 그림은 기껏해야 30만 개입니다. 게다가 천우 제국 전체에서도 우리 잠용각만이 이 그림을 살 실력이 있어요. 다른 곳에 가시면 이 가격도 받기 힘들 겁니다.” “

  • 마황의 귀환   제24화

    “오호?” 안지수는 눈빛이 번뜩이며 홍은진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문기범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내놓으실 보물을 저도 꼭 보고 싶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지수는 말하며 앞장섰다. 문기범은 움츠러든 세 사람을 데리고 뒤따랐다. 두 경비만이 멍하니 네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보며 중얼거렸다. “방금 그 사람은 아가씨의 친구인가?” “아니겠지. 아가씨께서 그런 궁색한 친구를 두셨을 리 없어. 아마도 감정 실력 좀 늘려보시려는 거겠지. 하지만 막상 꺼낸 보물이 아가씨 마음에 들지 않으면 쫓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땐 히히히...” “맞아, 그때는 반드시 저 사람들을 혼내줘야겠어. 특히 저 오만한 문기범을. 하지만 만약 진짜 보물을 내놓아 아가씨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런 궁상맞은 놈들이 먹옥이라도 내놓으면 다행이지, 하하하.” 이 말을 들은 다른 경비 역시 큰 소리로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곧 있을 작업을 준비하는 눈치였다. 한편, 안지수는 네 사람을 호화로운 방으로 안내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안지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보물을 가져오셨는지 어서 보여주세요.” 문기범은 안지수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 소녀는 세속을 초월한 듯 보이지만 매우 영리했다. 아까 문밖에서 일어난 일을 이 소녀가 모두 알고 있었을 거라고 문기범은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두 경비를 이용해 그들을 시험했고 이를 통해 협상 전략을 결정하려 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문밖에서 조금이라도 굴복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지금 이 소녀의 태도는 훨씬 강경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소녀가 영악하더라도 문기범이라는 늙은 마왕 앞에서는 아직 한참 어렸다. 문기범이 손을 휘젓자 한 폭의 그림이 그녀 앞에 펼쳐졌다. 그림에는 빽빽이 이상한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애매모호한 것이 안지수의 시선을 순간적으로 사로잡았다. 두 손으로 그림을 조심스럽게 받아 든 안지수는

  • 마황의 귀환   제23화

    풍인성의 가장 동쪽 끝에는 수십 장 높이의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우뚝 서 있었다. 웅장한 대문은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압박감을 느끼게 해서 백 미터 안에는 아무도 머물지 못했다. 문 앞에는 황금색 옷을 입은 두 명의 경비만이 서 있었지만 그들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기세는 마치 백 명의 정예 병사가 서 있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 두 경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칼날이 스치는 듯한 날카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평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곳에 어느 날 네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취기경 절정!” 문기범이 이곳으로 걸어오며 중얼거렸다. 뒤에는 홍은진, 홍재호, 방성훈이 따라오고 있었다. 문기범의 태연한 모습과 달리 세 사람은 두 경비의 눈길을 마주치자마자 온몸이 굳어버려 걷는 법을 잊은 듯한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멈춰!” 문기범이 문 앞에 다다르자 두 경비가 손을 내밀며 그를 막았다. “잠용각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려는 것이냐?” “전달해 주세요. 귀운산장 홍씨 가문의 홍은진이 이곳의 주관자를 만나고자 합니다.” 문기범은 앞만 바라봤으며 경비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런 태도에 두 경비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풍인성에서 잠용각의 주관자를 만나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전전긍긍하며 허리를 굽혀 간청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없었다. “홍씨 가문? 들어본 적도 없는 가문은 주관자님께서 만나주지 않아!” 한 경비가 차갑게 말했다. 이 말에 홍은진은 고개를 숙였다. 잠용각 같은 어하칠세가에게 홍씨 가문은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다. 동맹은커녕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문기범...” 홍은진은 문기범의 소매를 잡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문기범은 소매를 뿌리치며 비웃듯 말했다. “만나주는 건 당신들 주인의 결정이죠. 노예 따위가 주인을 대신해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뭐라고?” 두 경비는 호통치며 화를 머금은 얼굴로 전신의 기세를 확 터뜨렸다. 순간 모두가 숨이 막히는 듯

  • 마황의 귀환   제22화

    사실 손은비가 맞은 걸 가장 통쾌하게 여긴 건 바로 홍은진이었다. 이 점은 방성훈도 눈치챘을 터, 문기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기범은 더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악연이 생긴 이상 상대방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손씨 가문은 칠세가와 관련된 가문이로군요.” “어, 어떻게 알았어?” 홍은진의 손이 덜컥 떨리며 불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문기범이 장난이라고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문기범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고 진지했다. “아까 그 여자가 외쳤어요. 어하칠세가의 위력을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무의식중에 어하칠세가를 건드리게 된 거야?” 순간 홍은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사고가 멈춘 듯 굳어버렸다. 방성훈 역시 눈알이 툭 튀어나올 듯하며 심장 박동이 멈춘 것 같았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멸망이라도 한 듯 고요해졌다. “문기범, 어서 손은비 씨에게 사과하러 가자.” 홍은진은 다급하게 문기범의 소매를 잡고 채씨 가문 저택 쪽으로 가려 했지만 문기범은 마치 땅에 박힌 말뚝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가봤자 죽으러 가는 겁니다.” 문기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이 말에 홍은진은 멍하니 주저앉으며 무력감에 빠졌다. 문기범의 말이 비록 가혹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실이었다. 어하칠세가를 건드린 것을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범 형님, 그럼 이제 어떡하면 좋죠?” 갑자기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홍재호가 어느새 문기범 앞에 서서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의외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문기범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평소 남을 얕보기 일쑤였던 이 말썽꾸러기가 이렇게 순수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이야. “이제 저를 개 같은 놈이라 부르지 않는군요?” 문기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말했다. “기범 형님은 저희 남매 생명의 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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