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민은 얼른 일어서서 강윤아에게 말했다."사장님, 디자인팀 새로 온 부팀장 강수아 씨입니다."“전 왜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죠?”강윤아의 표정은 엄청 차가웠고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았다.온지민은 왜 강윤아가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얼른 해명했다.“오늘 금방 면접을 통과했어요. 내일부터 정식 출근하기로 했는데 회사 업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 미팅에 참석했어요.”강수아의 얼굴은 이미 완전히 창백해졌다. 비록 일찍이 강윤아가 이 빌딩에서 출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강윤아가 자기 상사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수아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어!강윤아는 강수아를 차갑게 훑어보고 이어서 온지민을 힐끗 훑어보았는데 불만이 뚜렷했다. 온지민은 갑자기 어리둥절해 졌고 자신이 무슨 일을 잘못했는지 몰랐다. 이어 강윤아가 질문 조로 묻는 말을 들었다.“온지민 씨, 일반적으로 임원의 고임은 사장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습니까?”온지민은 잠깐 멍했다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었다.“네, 맞습니다. 필요한 절차입니다만…….”그러자 온지민은 강윤아가 불쾌함을 느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제때 알리지 않았기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강윤아는 강수아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에 담긴 뜻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강수아도 강윤아가 왜 이런 얘기를 물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강수아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지만 강윤아가 하필 이곳의 사장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곳에 계속 있으면 강윤아한테서 차별를 받을거라 생각까지 하니 더 이상에 이곳에 남아 굴욕을 참고 싶지 않았다.강수아는 강윤아를 째려보았고 강윤아가 얘기하기도 전에 강수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죄송해요, 갑자기 이 회사가 싫어져서요.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강수아의 이 말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방금 입사한 사람이 뜻밖에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회의실에 직원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강수아때문에 회의의 엄숙한 분위기가 완전히 흐려졌다. 비록 강수아는 이미 떠났지만 강윤아는 다소 불쾌하다는 듯이 온지민을 바라보았다.온지민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이런 호의를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다니 정말 기가 막혔다. 그리고 지금은 강윤아의 그런 눈빛까지 받으니 순식간에 식은땀이 흘렀다."저기…… 사장님, 보상금을 받으러 나갈게요."이 말을 하고 온지민은 재빨리 회의실에서 나갔다.강윤아는 온지민의 뒷모습을 보고도 부르지 않았다. 회의실이 완전히 조용해진 후에야 강윤아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자, 이제 회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합시다."회의에서 강윤아는 회사가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에 관한 방안을 발표했는데 임원들은 아주 동의하는 눈치였다.이때 온지민은 이미 따라가서 강수아의 앞에 가로막았다.“뭐 하자는 거예요? 그만두겠다고 했잖아요,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예요?”강수아는 짜증을 내며 말했고 이 회사와 관련된 사람을 다신 만나고 싶지 않았다.온지민은 표정이 변했고 부드럽던 태도를 포기하고 강경하게 말했다.“강수아 씨, 잊어버리셨나 본데, 보상금을 지불한 후에야 떠날 수 있어요.”비록 방금 강수아는 바로 승낙했지만 돈을 헛되이 쓰라고 하니, 마음은 여전히 좀 내키지 않았다. “내가 왜요? 저리 안 비켜요?”“협조를 거부하시는 거예요?”온지민 능청스러운 강수아의 표정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강수아를 경멸한 뒤 경비원을 불렀다.“협조를 해주지 않으시면 저도 수단을 써서 협조하게 만들 수밖에 없네요.”강수아는 이를 악물고 지금 배상하기 싫더라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핍박에 의해 1400만원의 위약금을 납부하게 되었다.비록 강수아의 눈엔 이 돈은 작은 돈에 불과했지만 이것이 강윤아가 있는 회사에 배상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수아는 엄청나게 불쾌했다.고승현은 원래 밖에서 강수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수아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얼른 쫓아갔지만 뒤에 가로막혔
고승현을 바라보았지만 고승현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변화가 없었다.강수아는 아직 좀 미친 것 같았고, 고승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만하고 따라와."말이 끝나자 고승현은 강경하게 강수아의 손을 잡고 강수아를 끌고 이곳을 떠나려 했다."날 놔줘." 강수아는 힘껏 벗어나려고 했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강윤아는 고승현의 뒷모습을 보고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회사의 각 임원은 이미 강윤아의 계획서에 따라 운행하고 일하기 시작했다.강윤아의 건의에 따라 그들 회사가 새로 출시할 화장품은 정식으로 가인 시리즈로 명명하였고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마케팅을 시작했다.며칠 후 마케팅팀의 팀장은 건의서를 제출하였는데 톱스타를 가인 시리즈의 광고 모델로 계약할 계획을 얘기했다.“사장님,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에요. 이분이 저희 모델로 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지 않을까요?”마케팅팀 팀장은 진지하게 말했다.강윤아는 기획안을 뒤적이고 안된다고 거절했다.“아뇨, 더 좋은 선택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마케팅팀 팀장은 자신의 의견이 그렇게 쉽게 거절되는 것을 보자 어쩔 수 없이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그럼 사장님은 또 어떤 최선의 선택이 있다고 생각하세요?”강윤아는 담담하게 마케팅팀 팀장을 한 번 본 후 자신의 모든 계획을 모두에게 한 번 보여주었다.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보고 있을 때 강윤아는 옆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고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발전 단계에서는 굳이 연예인이랑 계약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홍보 및 전달 우세가 있는 것 같아요.”강윤아의 계획을 들은 뒤 많은 사람이 찬성했고 곧 다양한 조치도 취했다.강윤아의 건의에 따라 회사 직원들은 각종 동영상 사이트에서 오리지널 블로거를 찾아 각각 두 가지 동영상을 제작하게 했다.첫 번째 영상은 화장으로 변신하는 주제였다. 간단히
강범석은 강윤아가 자기를 거절할 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는지 머뭇거리지도 않고 곧바로 말을 보충했다.“윤아야, 네가 나 보기 싫어한다는 거 안다. 하지만 이건 네 엄마와 관련된 일이니까…… 우리 제대로 얘기해 보자.”그 말에 강윤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강윤아는 강범석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관계된 일이라면 가볼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뱉은 말은 지키기 바랄게요.”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한 강윤아는 약속 장소를 정하고 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윽고 차 한 대를 불러 강범석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창가에 자리 잡은 강범석이 바로 눈에 띄었다. 분명 얼마 전에 만났지만 오늘 보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이 초췌해진 건 물론 흰 머리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많아졌다.이런 강범석을 보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왔음에도 강윤아는 씁쓸해 났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가 보네.’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강범석이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강범석 앞에 앉은 강윤아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뻐금거렸지만 “아버지”라는 단어를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강범석의 상황이 아무리 안 좋다 할지라도 전에 자기한테 줬던 상처는 쉽게 지워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상황이 안 좋다고 그 모든 걸 용서하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무슨 일이세요?”강윤아는 끝내 입을 열었다.맞은편에 사람이 앉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강범석은 발견하지 못한 채 반쯤 넋을 놓고 있다가 강윤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비로소 눈을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앞에 앉은 강윤아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강범석은 끝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윤아 왔구나.”강윤아는 가방을 옆자리에 벗어두고 강범석을 빤히 쳐다봤다.“말해요. 저는 왜 불러냈는데요?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어요?”딸애의 날 선 모습에 강범석은 억지 미소를 짓더니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힐끗 확인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불안한 듯 손을 비비
강윤아는 강범석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나한테 조금은 미안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랜 시간 지나도 다른 사람 감정 고려하지 않는 건 여전하네.’‘분명 자기의 이익을 위해 딸을 팔아넘기는 거면서 나를 위해서라고? 내가 바보도 아니고, 재벌 집 며느리로 들어가게 해줬다고 내가 고마워하기라도 바라나?’“역시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파렴치한 건 어쩜 몇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어요?”울화가 치밀어 목소리 톤더 더 높아졌다.강윤아는 옆에 놓인 가방을 집어 들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 이상 강범석과 한 공간에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기분만 더러워질 테니까.강윤아가 떠나려고 하자 강범석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른 강윤아를 잡아 끌며 애원했다.“윤아야, 아무리 그래도 넌 내 딸이잖니. 이 아비를 좀 구해줄 수는 없는 거니?”“딸?”강윤아는 콧방귀를 뀌며 강범석의 손을 뿌리치더니 싸늘한 눈초리를 쏘아붙였다.“내가 딸이라는 걸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그런데 딸이라고 다 자기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줄 알아요? 게다가 당신한테 나 말고도 딸 하나 더 있잖아요.”강윤아의 말에 강범석은 감전이라도 된 듯 바로 반응했다.“수아는…… 수아는 아직 어려. 이런 일은…… 감당 못 할 거야. 게다가 너 혼자 애 키우는 거 힘들잖아. 나도 다 너 생각해서 이러는 거라니까.”“참 자기가 한 짓을 잘 포장한다니까. 사실은 나 팔아치우는 거면서.”강윤아는 냉소를 지으며 강범석을 밀어버렸다.하지만 강범석은 여전히 강윤아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가며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윤아야, 아빠 좀 살려 줘.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네 아빠잖아.”강윤아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더니 몸을 돌려 강범석을 싸늘하게 훑었다.‘참 얼마나 더 추악한 일을 벌일 수 있는지 한계가 궁금해지네.’“어디 들어나 봅시다. 나를 얼마에 팔았는지.”강윤아가 겨우 걸음을 멈추자 강범석은 자기의 설득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윤아야, 아빠 사업 실
“아!”무방비한 상태에서 발을 밟히자 강범석은 바로 비명을 지르며 이를 악물었다.그리고 강범석이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틈에, 강윤아는 그를 뿌리치면서 재빨리 도망쳤다.“강윤아! 거기 서!”강윤아가 점점 멀리 도망가자 강범석은 다급하게 소리쳤다.하지만 도망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그가 부른다고 다시 돌아올 리는 만무했다. 강범석이 아무리 목이 빠져라 소리쳤지만 강윤아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강범석은 얼른 그 뒤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그저 둥그렇게 부릅뜬 눈으로 도망치는 강윤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이대로 단념하려니 배알이 꼬이고 울화가 치밀었다. 어렵사리 강윤아를 속여 불러냈는데 이런 기회를 놓쳐 버렸으니 앞으로 다시 불러내기 더 어려울 게 뻔하다.강범석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 끝내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젠장! 배은망덕한 계집애 같으니! 네가 몇 년 전 집안 망신을 줬을 때 내가 너한테 그렇게 대한 건 너그러운 편이었어! 그런데 집안에 어려움이 있다는 데 이것도 못해?”그때, 강수아와 박미란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강범석에게 다가왔다.솔직히 수 사람은 방금 벌어진 일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박미란은 팔짱을 끼면서 콧방귀를 뀌었다.“쯧, 강윤아 그 계집애가 걸려들지 않았다니, 헛고생만 했네. 애 딸린 미혼모 주제에 재벌가 며느리로 들어갈 수 있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감히 거절해?”옆에 있던 강수아도 시큰둥한 듯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엄마, 이 방법 진짜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요. 불쌍한 척 동정을 구걸하는 게 웬 말이에요? 게다가 도박으로 빚을 졌다는 걸 누가 믿어요?”박미란은 딸의 말에 곧바로 투덜거렸다.“이 방법이 뭐 어때서? 들킬 위험도 없잖아.”“엄마, 생각해 봐요. 강윤아더러 상속권을 포기하라고 협박한지 얼마나 됐다고 집이 파산했다고 협박을 하면 강윤아가 믿겠어요?”강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끌끌 찼다.그 말에 박미란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
의사가 동의하자 강윤아는 마침내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기뻐하기도 잠시, 곧바로 다른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얼마 전 집안에 CCTV가 설치되었다는 걸 발견한 뒤로 지금까지 쭉 권재민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으니 상황이 난감하게 되어버렸다.자기 집이라면 모를까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병든 어머니까지 그 집으로 모셔가면…… 권재민에게 너무 큰 신세였다.하지만 한참 동안 고민하던 끝에 좋은 수를 떠올리지 못한 강윤아는 끝내 권재민에게 전화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 건너편에서 곧바로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재민 씨, 저예요. 저…… 재민 씨한테 드릴 얘기가 있어요…….”강윤아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권재민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무슨 일인데요?”“저 어머니를 모시고 퇴원하고 싶은데, 재민 씨 집에서 잠시 신세 질 수 있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살 곳을 구하면 바로 나갈게요. 절대 재민 씨 생활을 방해하지 않을 게요…….”강윤아는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하고 싶은 대로 해요. 그런데…… 앞으로도 나갈 필요 없어요. 그 집에서 쭉 살아도 돼요.”심각하게 고민했던 게 무색하게 권재민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강윤아는 한참 전에 끊어진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상황을 인지하는 순간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방금…… 뭐라고 했지? 계속 살아도 된다고? 이게 내가 생각한 그런 의미일까?’선 자리에서 한참 동안 멍때리고 있다가 강윤아는 번쩍 정신이 들었는지 손으로 뜨거운 얼굴을 감쌌다. 그러고는 천천히 병실로 돌아가 이것저것 짐을 싸며 퇴원 준비를 했다.서만옥은 권재민의 별장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그곳 생활에 적응했다. 그 사실에 강윤아는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권재민에게 점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이미 빚진 것도 많은데 아예 자기 식구들 모두 데리고 권재민의 집에서 신세 지고 있으니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강윤아가
“젠장…….”강윤아는 낮은 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써봐도 약효가 돌기 시작하자 끝내 밀려오는 잠을 참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강수아가 앞으로 걸어가 쿡쿡 밀었지만 강윤아는 그대로 축 늘어진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강윤아가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강수연은 씩 미소 짓더니 고개를 돌려 박미란을 바라봤다.“어때요? 제 말이 맞죠?”박미란도 이번 결과에 꽤 만족했는지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려있었다.“그러게. 역시 우리 수아가 제일 똑똑하네.”그러다가 무심코 눈을 들었을 때, 강범석의 복잡한 표정이 눈에 들어와 박미란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강범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콧방귀를 꼈다.“왜요? 마음 아파요?”강범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박미란의 눈빛을 비했다.“아니야.”“흥, 내가 당신 생각 모를 줄 알아요? 미리 말해두는데, 이젠 일을 돌이킬 수도 없어요. 게다가 지금 마음 약해져 내버려 두고 있다간 앞으로 당신한테 무조건 복수할 거예요.”박미란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강범석을 싸늘하게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강범석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강범석이 서만옥에 대한 마음만 생각하면 가뜩이나 불편하고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강윤아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으면서 여전히 측은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견딜 수가 없었다.강범석이 아무 말 없이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박미란은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갔다.“여보, 정신 좀 차려요.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후회라도 하는 거예요?”“하…….”강범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변호사를 바라봤다.“됐어요, 변호사님도 볼일 보세요.”변호사는 갑자기 불안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오늘 저를 불러낸 게 공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요?”“공증하기 위해서 부른 거 맞아요. 방금 끝냈으니 이미 된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