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민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기현은 이미 병원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민은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기현에게 빠르게 다가갔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재민은 기현 앞에 성난 듯 서 있었다. 재민의 머리에서는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고, 코끝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눈썹은 화난 듯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입은 아래로 처져 있었기에 기현은 재민이 억눌러 참고 있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사실 자기 아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재민이 기현을 바로 때려도 이해할 수 있을 상황이었다. 기현은 권재민이 이렇게 초조하고 화가 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지만 기현은 재민이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정보를 놓칠까 봐 걱정했다.“재민아, 진정해. 여기서 이러면…….”“지금 나보고 진정하라고? 내 아내가 사라졌어, 그것도 아이를 가진 채로! 빨리 말해, 숨기지 말고.”기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윤아 씨가 산부인과 검사실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따라갈 수 없어서 밖에서 기다렸어. 우리 사람들이니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지.”“처음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어. 하지만 오래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까 뭔가 잘못됐다는 예감이 들었어.”“그리고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몇몇 의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윤아 씨는 사라진 뒤였어.”“어떻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어? 어디로 끌려갔는요? 여기 출구는 하나뿐인데,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 거야?” 재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병원을 지나던 의사와 환자들이 재민의 고함에 놀라 멈춰 섰지만, 재민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아무도 불평하지 못했다.기현은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재민을 진정시켰다.“재민아, 진정해. 여긴 병원이야.”“10분 전에 한 명의 간호사가 카트를 끌고 나갔어. 그 밖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간호사의 카트에는 검은색 쓰레기봉투가 가득했는데, 모두 쓰레기로 보였어요. 사모님이 그 안에 숨겨져 나간 것일 수 있어요.”“사건
윤기태도 이때 권재민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경찰과 함께 에릭 그룹으로 향했다.한기현은 재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 에릭 그룹이 완전히 망했다는 걸 알았다. 아마 해외의 회사들도 앞으로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에릭 그룹의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보안 요원들은 이들이 본사 소속이 아니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거친 모습을 보고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것 같다고 생각해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따라온 경찰을 보자마자 길을 터주었다.재민과 기현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에릭의 사무실로 직행했다. 에릭은 바로 그 의료 프로젝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쳐 깜짝 놀랐다.재민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에릭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에릭을 들어 올렸다. 주먹을 에릭의 얼굴로 휘두르려는 찰나, 기현과 기태가 막아선 덕분에 에릭은 간신히 한 대를 피했다.에릭은 화가 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언제 이런 모욕을 받아본 적이 있나 싶어 급히 재민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권재민, 미쳤어? 뭐 하는 거야?”옆에 있던 경찰이 에릭에게 다가가 자신의 경찰증을 보여주며 말했다.“에릭 씨, 당신은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에릭은 어리둥절했지만 태도는 여전히 단호했다.“나를 조사하려면 증거를 가져와. 증거 없이 나를 어떻게 범죄자로 몰 수 있어?”재민은 원래 기현과 기태에 의해 한쪽으로 끌려갔지만, 에릭의 도발적인 말에 화가 나 둘을 뿌리치고 에릭 쪽으로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재민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에릭은 놀라서 의자에 주저앉았다.“잊었나 본데, 여기는 경성이야. 여기서는 내 말이 법이야. 네가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얌전히 강윤아 데려와.”“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남을 생각도 하지 말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에릭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지만, 이 시점에서 그가 기뻐할 수는 없었다.“난 억울해. 나
서다은은 문밖에서 거절당하고 매우 화가 났지만, 권재민이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윤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그가 겉치레라도 며칠 동안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었으니까.조금 시간이 지나 윤아가 정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재민이 포기할 것이고, 그때 자신이 그에게 다가갈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재민 씨, 우리 앞날은 많으니까 일단 다른 여자를 며칠 좋아하게 해줄게. 나중에 당신은 나만의 것이 될 거야.”에릭은 연속 이틀 동안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데 바빴지만, 재민에게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재민은 에릭이 조금도 굴복할 기미가 없다는 것을 보고 에릭 그룹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로 결심했다.재민은 에릭 그룹에서 생산한 제품의 불량 증거를 다시 가져왔고, 에릭 그룹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졌다. 에릭은 회사가 혼란에 빠진 것을 보고 사무실에 좌절하여 앉아 있었고, 전체적으로 낙담한 모습이었다.어쩔 수 없이 에릭은 권재민과 협상하기 위해 찾아갔고, 태성 그룹에 순조롭게 들어갔다.“에릭 씨, 드디어 오셨군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대표님, 난 정말 사모님을 납치하지 않았어요. 제발 여기서 멈춰주세요.”이때 재민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정말로 에릭이 사람을 납치했다면, 이미 윤아를 이용해 자신을 협박했을 것이다. 그리고 권현우와 권은우가 이 시기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혹시 그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재민은 윤아가 그들에게 고문당하는 모습을 상상하자마자 이성을 잃었다.태성 그룹에 문제가 생긴 이후, 은우는 멀리 피해 있었고, 특히 윤아가 사라진 후에는 재민이 자신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워했다. 윤아 사건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지만, 태성 그룹의 비밀을 누설한 것에는 관여했기 때문이었다.재민은 윤기태에게 은우와 현우를 데려오게 했고, 그들 모두를 태성 가문의 대저택으로 데려왔다. 물론 김소혜, 권기태 등도 모두 불러
권재아와 윌도 놀 만큼 놀아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아가 짐을 싸는 동안 윌이 두 장의 티켓을 예약한 것을 보고 농담을 건넸다.“이미 돌아왔는데 나랑 같이 경성으로 돌아가려고? 나를 특별히 에스코트하려는 건 아니겠지?”윌이 티켓을 예약한 뒤, 침대에 앉아 재아가 짐을 싸는 걸 지켜보며 말했다.“아니야, 너무 앞서가지 마. 내가 돌아가는 건 태성 그룹과의 협력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야. 게다가 돌아가면 할 중요한 일이 있어.”“잘난 척은. 나한테 한마디 잘해주는 건 안 되나?” 재아가 옷을 들고 윌을 툭 쳤다.“근데 할 일이 뭐야?” “네가 맞춰봐.”재아가 묻자 윌이 가볍게 웃으며, 이미 잘생긴 그의 미소가 더욱 매력적으로 빛났다.재아는 매일 윌의 미소를 봤지만, 이렇게 매혹될 때는 드물었다. 윌의 입가에 더 큰 미소가 번지자, 재아는 자신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웃기만 하지 말고, 난 안 맞출 거야.”윌이 재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 더 환하게 웃었다. 재아가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윌은 오히려 더 꼭 안았다.“안 맞추면 내가 말해줄게. 내 와이프가 경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당연히 나도 가야지.”“게다가 나는 경성에서 영주권을 신청하고, 집을 사서 꾸미고, 장모님을 만나 내가 얼마나 좋은 사위인지 어필할 거야.”“그리고 장모님의 아름답고 친절하고 현명한 딸을 나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할 거야.”“마지막으로 결혼식을 올려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평생 내 곁에 묶어둘 거야.”“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재아는 윌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돌리고, 계속 짐을 싸며 주제를 바꾸려고 했다.“어이쿠, 나 집에 한참 연락 안 했네. 윤아는 어떻게 지내는지, 핸드폰 좀 줘. 엄마한테 전화해야겠어.”태성 그룹에 문제가 생긴 뒤, 재민이 해결할 수 있다며 둘에게 좀 더 놀라고 하여 윌이 재아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재아는 국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이제 귀국할 시간이 되어
고승혁 교수가 오후에 방에 들어왔을 때, 윤아는 눈에 띄게 긴장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이불을 꼭 안고 떨고 있었지만, 여전히 사납게 굴려고 했다.“당신 누구야? 여기서 뭐 하려고 하는 거야?”“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를 고승혁 교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저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단지 당신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뿐입니다.”하지만 윤아는 그를 전혀 믿지 못하고 계속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왜 나를 납치했는지, 여러분의 목적이 무엇인지만 알고 싶어요.”고승혁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윤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윤아는 그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며 화를 냈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구리 교수는 한숨을 쉬며 강윤아를 안타까워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살아남고 싶다면 잘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잘 쉬고,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혼자가 아니란 걸 기억하세요.”말을 마친 고승혁 교수는 방을 나갔고, 문 앞에서 다시 한번 윤아를 돌아보고 한숨을 쉬었다.고승혁 교수가 나간 후, 윤아는 겨우 긴장을 풀었다. 그의 눈빛에서 느껴진 안타까움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도대체 무슨 일이야? 정말로 내 아이를 배에서 꺼내려는 건가? 안 돼! 스스로 겁먹어서는 안 돼.”“고승혁 교수 말 대로 난 혼자가 아니야. 지금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난 나와 아이를 잘 보호해야 해.”“내가 벌써 며칠이나 사라졌을 텐데, 재민이는 분명히 매우 걱정하고 있을 거야.”“언제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여태까지 항상 나를 찾아냈으니 이번에도 분명히 할 수 있을 거야.”“왜 나는 항상 재민 씨한테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나를 귀찮아할까?”“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재민 씨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한편, 권재민은 한기현의 정보에 따라 동료들과 함께 추적해 이곳까지 왔다. 며칠 동안 조사한 끝에 일부 단서를 찾아냈다.그들은 이 신비한 남자가 속한 남미의 제국 조직을 발견
강윤아는 의식을 잃기 전에 고승혁 교수는 그녀를 다시 방으로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는 것을 들었고, 그 말에 윤아는 조금 두려워 났다.윤아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방으로 돌아온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몸이 매우 허약해진 것을 느꼈다.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려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팔이 마치 천근처럼 무거웠고 약간의 통증도 느껴졌다.이윽고 모든 힘을 다해 팔을 들어 올린 윤아는 고승혁 교수에게 피를 뽑힌 후, 피 뽑힌 부위가 이미 멍들기 시작했음을 알아차렸다. 윤아는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고수혁 교수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권재민, 지금 어딨어?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어? 언제 구하러 올 거야?”의료실에서, 고승혁 교수가 윤아의 많은 양의 피를 뽑고 그녀를 방으로 돌려보낸 후, 계속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그는 피를 뽑힌 윤아의 창백해진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의 배 속 아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안도했다. 물론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였다.그렇기에 고승혁 교수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연구를 계속하면서 윤아가 너무 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윤아와 윤아 배 속 아이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그때, 문밖에서 인사 소리가 들려왔고, 고승혁 교수는 연구하고 있는 척했다.들어온 사람은 바로 비밀스러운 남자, 애스릭이었다. 이 기지는 애스릭의 본거지였다.애스릭은 신비로운 자주색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다소 반항적으로 보였다. 또한 검은색 캐주얼 청바지와 오른쪽 귀에 박힌 자주색 귀걸이, 그리고 목에 걸린 어두운 자주색 크리스탈 십자가가 빛을 발했다.애스릭의 눈은 매혹적이었지만 긴 앞머리에 가려진 탓에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다. 또한 벚꽃처럼 얇은 그의 섹시한 입술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강윤아는 자기의 손목을 보았다. 케이스는 윤아의 꼭 잡고 있었다. 윤아는 케이시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힘을 쓰면 다칠 것 같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윤아는 몸부림치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케이시는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순순히 먹는 게 좋을 거에요. 내가 억지로 먹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요.”“독인지 아닌지, 당신을 뭘 믿고 이걸 먹어요?”윤아는 겁 먹은 듯한 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벌써 널 어떻게 하진 않을 거야. 반대로 널 잘 살게 놔둘 거야. 넌 아직 쓸모 있으니까.”케이시는 윤아를 놓아주고 제자리로 되돌아갔다.윤아는 급히 손목을 감싸고 가볍게 문질렀다. 케이시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도대체 날 왜 잡아 온 거예요? 원하는 게 내 피이에요? 더 없어요?”윤아는 케이시가 웃는 것을 보았다. 왠지 그 웃음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에 경각심을 조금 내려놓고, 케이시를 떠보았다.“음…… 다 맞는 거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도 돼요. 그래서 몸조리를 잘하고 있어요. 네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잘 있어야죠.”윤아는 반신반의하였다. 그녀는 더 묻고 싶었지만 금방 피를 뽑고 긴장된 상태로 제대로 쉬지 못했는지라, 지금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케이시는 윤아의 모습을 보고, 얼른 그녀의 입에 약을 쑤셔 넣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윤아는 그대로 약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급히 목에 손가락을 넣어 뱉어내려 했지만, 구역질만 할 뿐, 약을 뱉어내지 못했다.케이스는 얼른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헛구역질 때문에 속이 불편한 윤아는 얼른 받아 물 마셨다. 그제야 윤아는 좀 나아진 것 같았다.약을 먹은 후, 윤아는 힘이 좀 생겨나는 것 같았다.‘독약은 아니네, 그럼 날 해치려는 생각이 없는 건가?’윤아는 케이시를 슬쩍 쳐다보았다. 케이시는 윤아가 별일 없는 것을 보고 그냥 떠났다.권재민은 자리를 잡은 후 한기현이랑 함께 디 엠파이어를 조사했다. 기현은 재민에게 디
재민은 이렇게까지 도와준 데이비드가 고마웠다. 비록 지금 바로 윤아를 구해내고 싶었지만, 차질 없이 윤아를 구해내기 위해선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재민은 윤아가 더 버텨 주기를 바랐다.“데이비드 씨, 저 한 평생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제 아내를 위해서, 정말 진심으로 부탁드려요. 도와주세요.”재민은 이 말을 다하고 허리 굽혀 감사를 표하려 했다. 하지만 차 안이기에 허리를 약간 굽힐 수밖에 없었다.데이비드는 다급히 재민을 말렸다. 그리고 재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권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윤아는 깨어나 처음 채혈한 후부터, 며칠째 계속 같은 시간대에 채혈을 했다. 윤아는 매번 창백한 얼굴로 방으로 돌아왔고, 케이시는 약을 챙겨와 윤아에게 먹였다.케이시는 계속 친절한 태도를 보였다. 올 때마다 몰래 디저트를 챙겨와 윤아에게 줬고, 윤아랑 잠깐 수다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윤아는 그에게 아무런 호감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케이시도 애스릭이랑 한 무리였기 때문이다.고승혁은 윤아를 보내고 고민에 빠졌다. 윤아의 몸은 점점 더 약해졌다. 매번 약도 먹이고 보양식도 준비했다. 하지만 윤아는 워낙 빈혈이 있었고 기분 영향도 있었기에 컨디션 회복이 아주 느렸다.그렇다고 해서 고승혁은 윤아를 설득할 방법도 없었다. 그도 수시로 채혈하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윤아를 다치게 해야 했다. 윤아는 고승혁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를 믿을 리는 없었다.고승혁도 나름 난처했다. 그래서 지금 두 사람의 생명 안정을 보장하는 동시에 가능한 시간을 오래 끌려고 했다.고승혁은 이번 채혈을 끝마친 후, 윤아의 혈액 세포를 연구했다. 그동안의 검사와 연구를 통해, 고승혁은 지금 베티에게 수혈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승혁은 조수더러 실험실을 준비하고, 베티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는 실험을 하려고 결정했다.애스릭은 이 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