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혜는 말을 마치고 차를 천천히 마셨다.소혜의 말에 강윤아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르신을 방문하는 일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따라서 윤아는 곧바로 동의했다.“재민 씨의 외할머니이니 당연히 방문해야죠.”윤아가 권재민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그의 외할머니는 손자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아는 고민 없이 바로 수락했다.또한 윤아는 너무 기뻤다.‘이건 어머님이 나를 며느리로 인정했다는 뜻이 아닐까?’하지만 소혜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일단 윤아와 재민을 잠깐 못 보게 하고 그사이에 재민과 케이티의 관계를 발전시킨 뒤, 자연스레 윤아를 떠나게 할 생각이었다. 또한 은찬은 권씨 가문의 혈육이기에 당연히 남겨둬야 하기에 윤아에게 위자료를 지불하고 내보낼 생각이었다.이런 생각에 소혜는 윤아가 예전만큼 미워 보이지 않았다.이윽고 고용인이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렸다.권승호는 은찬의 손을 잡고 식사를 하러 갔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지 승호와 은찬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또한 은찬의 말재주가 좋아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그들이 떠날 시간이 되자 승호는 조금 아쉬워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은찬아, 종종 와서 이 증조할아버지를 만나야 해.” 이제 권씨 집안에 은찬이 있어야만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증조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앞으로 자주 찾아 뵐 거예요. 증조할아버지도 시간 나시면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똑똑한 은찬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 알고 있었기에 승호를 깍듯하게 대했다.승호는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좋아.”승호와 작별 인사를 마친 후, 세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다.“내일 혼자 갈 수 있겠어요?” 재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윤아의 손을 잡았다. 혹여나 임신한 윤아가 불편할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아까 모두들 있는 자리에서 묻지 않은 건 이 사건을 계기로 고부 관계가 개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권재민의 외할머니가 강윤아를 처음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이 아이와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윤아의 말솜씨에 재민의 외할머니는 완전히 그녀에게 빠졌다. 필경 재민의 외가 쪽도 명문가였기에 그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르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아는 진심으로 그들을 위하고자 하였고, 심지어 얼굴을 닦아주는 것조차 정성스럽게 대하며 마치 진짜 가족처럼 그들을 대했다. 윤아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재민의 외할머니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마음에 들어. 어린 나이에도 똑똑하게 말도 잘하고, 또 동그랗고 생기 있게 생겼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야.”재민의 외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윤아의 볼을 쓰다듬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윤아도 재민의 외할머니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이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여나 어르신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윤아는 작은 입술을 삐죽이며 부드럽게 웃었다.“그럴 리가.”어르신은 얼굴의 주름이 부드럽게 펴지는 듯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그들이 달콤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서 지켜보던 소혜가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다.“윤아!”김소혜가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며, 그녀의 손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차가운 물기가 있었다. 그리고는 윤아 앞의 세숫대야를 가로채며 말했다.“윤아야, 이렇게 찬물을 받으면 어떡해. 어르신들이 세수할 때는 따뜻한 물을 사용해야 해. 추운 날씨에 찬물로 씻다가 감기에 들 수도 있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니?” 소혜는 어두운 눈빛으로 윤아를 꾸짖었다.윤아는 세숫대야의 물에 손을 대보며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했다.“어르신, 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나 봐요. 미온으로 한다고 했는데 아마 찬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봐요.”“하, 단순히 모른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소혜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권재민의 외할머니는 강윤아를 한 번 흘끗 바라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 “내 보기엔 너는 이 노인네들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윤아를 보러 온 것 같은데?”윤아도 옆에서 어르신의 농담을 듣고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떴다.“그럴 수도 있지. 못난 며느리가 시댁에 가야 하니 남편인 제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이 재미있는 광경을 놓칠 순 없죠.” 재민은 빠르게 생각을 전환하고 말했다. 재민의 말에 모두가 크게 웃으며 분위기가 한편 더 편안해졌다. 특히 두 어르신은 예비 며느리에게 큰 기대감을 내보이며 분위기는 더더욱 화기애애해졌다.분위기가 잘 어우러지는 모습에 계속 외면당한 채 서 있던 김소혜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아까 일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난 거예요?” 권재아가 소혜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몇 걸음 다가가 레드 와인 한 잔을 건넸다. 잠시 멍하니 있던 소혜는 와인잔을 받아 들며 고개를 저었다.“두 어르신들이 요 몇 년 동안 너무 외로우셨나 봐요. 누군가가 함께해 주길 원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조금 더 편애하는 건데 너무 화내지 마세요.” 재아가 소혜를 위로했다.그러자 소혜는 한숨을 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알아, 하지만 재아야, 지금 네 동생은 실수하고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네가 누나로서 그들을 말려야지 따라가선 안 돼. 시간 날 때 재민이랑 케이티를 좀 이어줘.”소혜는 이마의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지시하자 손에 든 와인잔이 흔들렸다.재아는 소혜의 말을 듣고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말하고 싶었어요, 엄마. 너무 편견이 심한 거 아닌가요? 사실 윤아는 나쁜 애가 아니에요. 보세요, 두 어르신에게도 잘하잖아요.”“내가? 편견이 심하다고?” 소혜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네, 지금 재민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윤아인데 우리가 축복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김소혜의 요구하에 권재민은 물건을 가져다준 뒤에 생각지도 못하게 그곳에서 케이티를 만났다.사실 소혜가 미리 케이티에게 말했기에 케이티는 줄곧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재민이 나타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다가가 인사했다.“재민 씨,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재민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이렇게 안배했으니 우연도 아니죠. 당신도 아주 잘 알고 있잖아요?”재민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해 케이티는 순간 얼굴이 굳어진 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재민 씨는 정말 유머가 넘치네요.”케이티는 원래 재민과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내려고 화제를 찾아 얘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재민은 자신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무참히 떠났다.재민의 멀어지는 모습을 보자 케이티는 내키지 않는 듯 주먹을 꽉 쥐면서 실망했다.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케이티도 총명한 사람이다. 그녀는 재민과 여러 번 만나면서 재민이 자신에게 반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다행히 그녀는 전혀 조급하지 않았고 짝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재민처럼 우수한 남자를 가지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재민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유일하게 그를 유혹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일밖에 없을 것이다.하여 일이 가장 유리한 핑곗거리가 되었다.아마 재민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그녀의 장점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본 뒤에야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케이티는 능력과 인물이 겸비한 여자이며 사업도 나름 잘하고 있다.그녀의 회사는 최근 마침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권재아에게 들어보니 재민이 그 프로젝트를 따내려고 아주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케이티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그날 케이티는 재아가 마침 회사에 가서 재민과 상의할 내용이 있다고 해 재아를 따라 회사로 향했다.재아는 케이티의 고집에 어
케이티는 재민의 표정을 보고는 그가 자신의 말을 찬성했고 자신의 말이 드디어 작용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된 이상 저희는 자연히 우리의 결점을 고칠 것입니다. 하지만 귀사도 성의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이런 성격이 화끈한 사람과의 협력은 당연히 화끈하다.“당연하죠.”케이티가 큰소리로 대답했다.“제 아버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아버지가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니 저는 단지 의견을 제기할 뿐 최후 결정은 아버지가 할 거예요.”“좋아요, 감사합니다.”재민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이 프로젝트가 태성 그룹에 가져다줄 이익이 많기에 그들은 순식간에 협의를 달성했다.몇 분간의 대화 끝에 케이티에 대한 재민의 태도도 조금 바뀌었다.비록 열정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과 같은 혐오감은 많이 줄어들었다.케이티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슬기로운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그때 재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것 같아 말문을 열었다.“할 말이 다 끝난 거 같으니 같이 식사하러 갈래?”케이티는 친구가 똑똑해 드디어 자신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며 재아에게 칭찬의 눈길을 보냈다.한편 재아는 자신의 행동이 맞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꾸 윤아에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이왕 분위기가 좋은 김에 계약사항에 대해 얘기 나누려고 했다.재아는 재민이 이 프로젝트를 무사히 따내길 바라기 때문이다.만약 이전이었다면 재민은 동의하지 않았을 거지만 오늘은 특별한 상황이니 빨리 이 일을 해결하기를 바랐다.하여 재민은 일어나 양복 외투를 입었다.“좋아요. 같이 식사나 하죠. 제가 살게요.”그러고는 성큼성큼 사무실을 나와 윤기태에게 호텔을 안배하라고 했다.재민이 자리를 뜰 때 케이티는 너무 신나 폴짝폴짝 뛰며 재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역시 넌 내 절친이야. 정말 잘했어.”그녀는 말을 마치자 재아의 얼굴에 뽀뽀한 뒤 재민을 따라갔다.재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결국 그녀는 거울을 꺼내 얼굴의 립스틱 자국을
권재민은 얼굴빛이 어두워진 채 마음속으로 강윤아가 자신의 몸에서 다른 여자의 냄새를 맡고 벌주지 않을까 걱정했다.재민의 얼굴이 굳자 케이티가 얼른 말했다.“알았으니 화내지 말아요. 우리 아버지를 만나러 가요.”케이티는 말을 마치자마자 재민의 팔을 당기려 했지만 재민은 이미 예상했던 터라 얼른 피했다. 그러자 케이티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치사해.”케이티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앞장섰고 재민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아빠.”케이티가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자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케이티의 아버지 찰스는 반갑게 맞이했다.“케이티, 요즘 잘 놀고 있었어?”찰스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묻자 케이티는 아빠의 팔짱을 끼더니 애교 섞인 어투로 말했다.“네. 아주 재밌게 놀았어요.”그때 찰스는 케이티의 뒤에 있는 남자를 눈치챘으며 아버지의 직감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이분은?”재민을 언급하자 케이티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곧바로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아빠, 이분은 재아의 동생 권재민이에요.”“그래?”찰스는 아주 차갑게 대답했다.비록 재민은 케이티에게 호감이 없지만 그 부분 때문에 프로젝트를 따낼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그가 찰스에게 자신이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 찰스는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고 그가 프로젝트 때문에 케이티를 이용해 자신에게 접근한 것인지 의심했다.하지만 한바탕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재민을 아주 흡족해했다.재민의 말투에서 그는 재민의 능력을 아주 분명히 알 수 있었고 게다가 이전에도 태성 그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 재민의 능력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찰스는 재민과 아주 유쾌하게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이런 파티에는 기회를 찾는 사람이 아주 많아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불려 갔다.그는 떠나기 전에 특별에 재민에게 당부했다.“파티가 끝나면 다시 얘기해요.”재민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찰스가 자리를 뜨니 재민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
“재민 씨, 조심해요.”케이티는 조심스레 권재민을 부축하며 걸어갔다. 가는 내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재민에게 기대며 존재감을 알아차리게 했다.피부 간의 접촉 때문에 재민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린 채 케이티를 멀리하려 했지만 전혀 힘이 없었다.“날 가까이할 필요 없어요.”재민은 다소 귀찮은 듯 말했다.재민은 온몸에 술 냄새가 가득하다. 케이티는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멀리했겠지만 재민이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그녀는 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민에게 점점 더 가까이했다.집 앞에 도착하자 케이티는 멈칫하더니 결국 노크를 한 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그때 강윤아가 문을 열었다.그녀는 설명하기 힘든 불안감이 엄습해 한참 동안 재민을 기다리던 중이었다.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도우미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바로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그때 문밖에 서 있는 재민과 케이티를 보자 어리둥절했다.케이티와 재민의 자세가 아주 친밀해 윤아는 아주 눈에 거슬렸다.재민과 만나는 동안 송해나를 제외하면 그의 곁에는 아무런 여성이 없었기에 윤아는 재민이 아무리 우수한 남자지만 조금의 위기감도 느끼지 않았다.하지만 재민이 그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그런데 케이티와 재민의 다정한 모습에 윤아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재민은 여태껏 그 어떤 여자와도 접근하지 않았는데, 설마…… 케이티와 그의 관계가 다른 것일까?’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곧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한편 윤아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케이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윤아 씨, 오늘 재민 씨가 파티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제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데려다주는 거예요.”케이티가 싱긋 웃으며 윤아에게 설명해 주자 윤아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재민이 다른 여자 앞에서 술에 취했다?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생각할 필요도 없이 케이티는 윤아가 의심을 품기를 바란 것이다. 그때 재민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윤아를 본 순간 곧바로 케이
“고마워요, 아줌마.”강윤아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돌려 진화옥에게 싱긋 웃었다.그와 동시에 윤아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자책했다. 만약 방금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너무 조심하지 않는다.그때 진화옥은 윤아의 상태가 안 좋아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왜 그러세요? 방금 그 여자, 얼핏 보기에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거 같은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절대 그런 생각이 없을 거예요.”윤아는 도우미마저 자신의 생각을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들마저 케이티의 속셈을 알 수 있는데 재민이 모를 수가 있을까?그가 알고 있으면서 왜 케이티와 거리를 두지 않는 걸까? 심지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케이티가 집으로 데려다주는 걸 허락했다. 그는 혹시 다른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 걸까?윤아는 점점 더 생각이 많아졌다. 그때 화옥은 재민의 옷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발견하고는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방금까지도 그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지금 그 립스틱 자국을 보니 생각만 해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윤아가 불쾌해하는 것도 당연하다.그러나 화옥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으며 재민이 절대 윤아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권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 해왔기에 재민의 성격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하여 그녀는 재민이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보고 절대 마음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화옥이 설득하려고 입을 열려던 순간 윤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재민을 부축하여 계단으로 올라갔다.그녀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민하다 결국 따라갔다.“사모님은 지금 임신 중이니 제가 부축할게요.”윤아는 입술을 굳게 오므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손도 놓지 않았다.화옥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윤아와 함께 재민을 방 앞까지 부축했다.비록 재민은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마침내 어렴풋이 정신이 든 뒤 윤아를 불렀다.“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