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 가문은 끝내 무너졌다.해나의 아버지는 체면을 버리고 재민을 한 번 찾아갔는데, 재민은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권 어르신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어르신은 아직 휴양 중이어서 외부인을 만나주지 않았다.그리하여 해나의 아버지는 회사가 빚더미를 안게 되어 부도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휴…….”해나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는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 그는 순풍에 돛을 단 듯한 생활이 끝날 거라 예상하지 못했고 가문의 산업이 자기 손에서 망가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해나의 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사업에 진심이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끝났다.스티븐 그룹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안토니가 혼란한 틈을 타서 도망간 후 회사를 관리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가뜩이나 엉망진창인 회사는 더 불리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안토니가 제자리를 찾게 되더라도 스티븐 그룹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송씨 가문이 처참한 결과를 맞이한 후 해나는 조용히 집에서 떠났다. 해나는 가족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해 한동안 밖에 나가 있을 생각이었다.가족들의 마음이 좀 가라앉은 후에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해나는 떠난 후에 안토니와 연락이 닿았다. 안토니는 자신의 상황도 그다지 안전하지 않았지만, 해나를 자기 곁으로 데려오려고 했다.“해나야, 걱정 마, 비록 지금 잠시 숨어서 지내야 하지만 내가 맹세할게. 이런 날이 오래가진 않을 거야.”안토니가 장담하는 것을 듣고 해나는 담담했다. 안토니가 장담한 일이 한두 가지 아니었지만 마지막 이뤄낸 일은 별로 없었다.송씨 가문이 무너지자 재민을 향한 해나의 원망을 더욱 많아졌다. 옛 원한까지 더해져 재민을 떠올릴 때마다 이를 갈았다.안토니도 같은 마음이었다.스티븐 그룹은 안토니가 혼자의 힘으로 키운 회사였다. 그는 다른 재벌 집 자식들이랑 달리 자수성가한 타입이었다. 집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아 여러모로 힘들게
해나는 이렇게까지 독한 재민은 처음이었다. 자기 가문까지 가만두지 않는 것을 보고 다소 두려웠다.해나는 지금 금서구에 숨어서 불안해하고 있었다.‘이번에 만약 잡히면 또 어떤 수단으로 날 처벌할까?’“안토니, 우리 여기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해? 정말로 재민 씨한테 잡혀가는 건 아니겠지?”해나는 잡혀가기 너무나도 싫었다.안토니는 해나의 머리를 만지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 이번엔 도망갈 수 있어.”“근데 회사도…….”조상님들부터 대대로 이어진 가문이 한순간에 무너지자 해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안토니는 해나랑 달리 별로 감정적이지 않았다. 비록 가슴 아팠지만 그래도 자신만만했다.“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야. 회사가 망하면 다시 설립하면 되지. 살아있는데 뭘 못하겠어?”해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감이 얘기해주고 있었다. 이번 일은 결코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근데 우리 여기에 갇혀있는데, 어떡해?”안토니는 눈썹을 찌푸리면서 자부했다.“괜찮아, 이번에 다 고수들만 불렀으니까 넌 나만 잘 따라오면 돼.”안토니는 해나의 얼굴을 잡고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이번에 안토니는 전문적인 살인 청부업계에서 키운 킬러들을 고용했다. 그들의 실력으론 충분히 자기랑 해나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해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시름을 놓게 되었다.해나는 안토니랑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안토니의 세력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도와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알았어.”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를 안심시켰다.‘이대로 질 순 없어, 살아가야 해!’바로 이때 안토니는 전화를 받았다.“형님, 헬기가 금서구 쪽으로 가지 못할 것 같은데요. 세울 곳이 없어요.”다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토니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그럼 제일 가까운 공터에 세우고 우리를 그곳까지 호송해줘. 나머지는 나중에 보자.”“네.”전화를 끊은 후 안토니는 해나를 위로하고
송해나는 착지하기 전에는 안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눈 앞의 경치가 모든 고민을 잊게 했다.한편 안토니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윤기태는 감시하기 시작했으며, 그와 동시와 다른 방향에서 여러 대의 헬기가 이륙했다.토니의 헬기가 한 산맥을 지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조종실 직원이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서 보고했다.“보스, 앞에서 여러 대의 헬기가 저희를 향해 날아오고 있어요.”“뭐라고?”토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이야?”해나는 그 소식을 듣자 순간 심장이 사정없이 뛰었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그러자 토니가 벌떡 일어나 해나를 위로했다.“넌 여기 앉아있어.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그가 말을 마치고 조종석으로 향했고 해나는 자신의 옷자락을 꽉 잡아당겼다. ‘틀림없이 권재민의 짓이야.’그녀는 재민이 반드시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해나는 순간 절망했다. 그녀는 여전히 도망치지 못했다.한편 토니가 조종실에 도착하자 재민이 안배한 헬기가 그들의 헬기를 포위하고 있었다.그러자 토니는 화가 나 욕하기 시작했다.“뭐야? 저건 누구야? 감히 내 길을 막다니, 살기 싫은가 보지?”토니는 자신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길이 막혔다.그때 옆에 있던 비서가 말했다.“보스, 저건 아마 권재민의 짓이에요.”그러자 토니가 콧방귀를 뀌었다.“대단하네. 돈 많은 집안이라 이렇게 많은 헬기로 나랑 겨루는 거야?”토니가 계속 욕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헬기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무슨 상황이야?”토니는 지금 아주 조급하고 난폭했다.그때 그의 부하가 보고했다.“보스, 그들이 총기를 쓰고 있어요.”“뭐라고?”토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목숨도 마다하는 거야? 오늘 반드시 날 잡겠다는 거야?’“반격해.” 토니는 손짓하며 명령을 내렸다. 그가 그 사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모를 리가 있을까?그의 부하는 명령을 받고 즉시 조종실
“넌 네가 포위된 걸 모르는 거야? 어떤 상황인지 잘 파악하는 게 좋아.”“난 내가 포위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권재민, 김칫국을 마시지 마.”토니는 자신의 사람이 구하러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곧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좋아, 그럼 지켜보자.”재민은 어깨를 으쓱했다.양쪽은 갑자기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를 쳐다보았다.재민은 토니를 잡는 것은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서로 거의 30분 동안 맞섰지만 토니 쪽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아 토니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겨우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지원하러 온 사람이 도중에 막혔다고 보고했다. 하여 토니는 일이 심상치 않게 발전되어 미간을 찌푸렸다.한편 재민은 토니의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네가 한 거야?”토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누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막겠는가? 생각만 해도 재민밖에 없다.“부인하지 않을게.”재민은 다른 부하에게 이 구역을 봉쇄하여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했다.어쨌든 오늘 그가 갑이다.“비겁한 놈.”토니는 재민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재민은 박장대소하더니 순간 차가운 눈빛을 하였다.“내가 비겁해? 이 단어는 너한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단지 네 회사 사업을 막은 건데, 이럴 필요가 있어?”토니는 고개를 들어 재민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재민은 피식 웃더니 독기가 서린 눈빛을 하였다.“단지? 보아하니 넌 자신이 뭘 했는지도 잊은 것 같네.”재민의 차가운 목소리에 해나는 부들부들 떨었다.“그렇지, 해나야?”재민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하지만 해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대답도 하지 않았다.“네가 윤아를 아프리카로 데려간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윤아에게 한 짓을 백배, 천배로 갚아줄 거야.”재민은 윤아를 해치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어떻게 하고 싶은데?”토니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재민이 지금 손쓰지 않는 걸 보아
“하하.”재민은 지금 기분이 아주 좋다.“난 고상한 사람이 아니야. 난 어떤 수단이든 널 잡기만 하면 돼.”“권재민, 이리 와. 다시 한번 싸우자.”토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재민은 그를 경멸의 눈빛으로 보며 무시했다.“데리고 가. 그리고 잘 지키고 있어.”토니가 끌려간 뒤, 토니의 보호가 없어지자 해나도 자연히 잡혔다.토니와 해나는 재민이 전문적으로 사람을 가두는 곳으로 끌려갔다.이곳은 감옥과 별로 차이가 없지만 그의 보안 시스템은 감옥보다 훨씬 낫다.“어떻게 됐어?”재민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물었다.“두 사람을 분리해서 가뒀어요. 토니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있고, 그의 비서는 조용해요. 그리고 해나는 피곤한 것인지 자고 있어요.”기태는 재민의 분부대로 모두 처리했다.“그래, 그 비서는 괜찮아 보였어. 토니도 피곤할 건데 좀 자게 해.”재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돌멩이를 만지작거렸다.현재 재민은 사람을 가두는 곳 위층 사무실이다.감옥은 지하에 있고 재민의 사무실은 지상에 있어 겉으로 볼 때는 다른 집과 다름없다.“네.”기태는 재민의 뜻을 알아차리고 손짓하자 부하들이 곧바로 가서 처리했다.“가자. 나랑 같이 해나를 만나러 가자.”재민은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재민의 부하가 앞장을 서서 문을 열더니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걸어간 뒤 시야가 탁 트였다. 그 순간 역겨운 냄새가 들이닥쳐 재민은 미간을 찌푸렸다.“이곳 위생이 너무 나쁘네. 좀 치우라고 해.”“네.”재민은 이곳에 자주 오지 않기에 평소 이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재민은 곧 해나를 감금한 곳에 도착했다. 그는 멀뚱히 선 채 바닥에 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시각 해나는 머리가 엉망이 된 채로 눈을 감고 있었지만 여전히 온화한 미인이다.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재민은 그녀를 보고 있으면 아주 역겨웠다. 이런 뱀 같은 여자는 동정할 가치도 없었다.“물을 뿌려서 깨워.
권재민이 떠난 뒤, 송해나는 망연자실하게 그곳에 앉아있었다. 비록 재민의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좋을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그녀를 매몰차게 잡아당겼다. 방금 재민이 발로 찬 곳이 여전히 따끔거려 해나의 낯색이 어두워졌다.애석하게도 재민의 부하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동정심이 없었으며, 해나의 아픈 표정을 보면서도 전혀 관심 가지지 않았다.그렇다, 재민이 여태껏 반드시 잡아서 벌을 주려는 사람인데 그의 부하가 어떻게 재민의 뜻을 거역하겠는가?“어디로 가는 거예요?”차에 앉은 뒤, 해나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너무 처참하게 보이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정리했다.한편 무표정한 채 그녀를 힐끔 보던 사람들은 결국 동정 섞인 어투로 대답했다.“감옥.”그 말에 해나의 마음은 아주 차가워졌다.그녀가 이 말의 뜻을 모를 리가 있을까?애초에 강수아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재민에 의해 감옥으로 보내진 뒤 나올 수가 없었다.자신도 이번에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기회가 없을 것이다.재민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 이토록 무정할지 생각지도 못했다.여태껏 재민을 미워했던 감정이 지금 이 순간이 되자 후회로 바뀌었다.그녀는 재민과 맞설 능력이 전혀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그 생각에 해나는 씁쓸함과 함께 윤아에 대한 질투가 더해졌다.그 여자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을까? 재민의 눈에는 그 여자밖에 없다.해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애초에 해나가 송씨 가문을 떠날 때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녀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걱정한 뒤에야 잠시 떠난다는 해나의 메시지를 받았다.해나의 부모님도 해나의 뜻을 잘 알고 있다. 아마 그녀는 그들을 따라 고생하기 싫었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딸이니 뜻대로 하게 놔둘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해나는 감
송천수는 밖에 앉아 해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송해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가볍게 말문을 열었다.“아빠.”“그래.”한동안 침묵이 이어진 뒤 천수가 부드럽게 대답했다.해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천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예전과 좀 달라 보였고 무언가 묵묵히 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그에게 물었다.“아빠, 왜 그러세요?”그러자 천수는 살며서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손이 테이블 밑에 있기에 해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그는 주먹을 쥐고 놓고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입을 뗐다.“아니야. 그냥 널 보러 온 거야.”“아…… 네.”해나는 아무리 봐도 아버지는 할 말이 있고 심지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해나가 대답한 뒤 두 사람 사이에는 또 침묵이 일관되었다. 하지만 천수는 주동적으로 말을 걸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이상해…… 날 보러 왔으면서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해나는 의아하게 천수를 바라보았다.천수는 줄곧 그녀를 아꼈기에 이런 모습에 해나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아빠…….”이렇게 계속 침묵하면 너무 어색하기에 해나는 결국 한참 고민하다가 말문을 열었다.그때 해나의 목소리를 듣고 천수가 그녀를 힐끔 보았다. 하지만 해나는 그 눈빛에 담긴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무슨 뜻일까?’무슨 이유인지 이 순간 해나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조금 당황스러웠다.“왜 그래?”천수가 물었다.아마도 천수 자신조차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태도는 평소 해나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게 아주 차갑다.하지만 해나는 아주 예민하게 발견하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재민이 자신과 완전히 틀어지는 것은 운명적인 일이다.마찬가지로 토니도 재민의 부하에게 고문당하고 있으니 자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가족뿐인데 자신의 아버지조차 지금 자신을 이렇게 대한다.“혹시…… 저 때문에 송씨 가문이 힘들어져서 아빠가 이렇게
권재민은 우습다고 생각하며 차가운 표정으로 안토니를 바라보았다. ‘지금이 언제인데 아직도 자신과 겨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재민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토니는 지금 완전히 잡힌 상태이지만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재민이 끈기 있다고 칭찬하겠지만 토니에게는 그런 좋은 말을 할 기분도 없었다.“내가 보기에 넌 아직도 네 처지를 모르는 것 같은데?”재민은 토니를 힐끔 보더니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하지만 토니는 분노가 가득한 듯 이를 갈고 있었다.만약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그는 아주 조심할 것이고 반드시 이런 결말은 아닐 것이다.“권재민, 수작 부린 거면서 뭐가 그렇게 정정당당해?”토니가 울분을 토했다.순간 재민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눈썹을 치켜올렸다.“수작? 내가 언제 수작 부렸어? 오히려 네가 수작을 잘 부리는 거 같은데.”토니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재민이 유일하게 숨긴 것은 바로 자신의 진짜 실력이며 그것 때문에 토니가 그를 무시했다.그리고 그는…… 확실히 많은 수작을 부렸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내키지 않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그러면 왜? 이번에 네가 이겼다 해도 날 어떻게 하지 못하잖아? 만약…… 네가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넌 아직도 단념하지 않았어? 내가 제대로 얘기해줄게. 네가 미리 내 실력을 알았다고 해도 넌 내 상대가 아니야. 심지어 넌 먼저 물러날 거야.”재민은 토니의 표정을 신경 쓰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 아마 그 시각 토니는 아주 다채로운 상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토니처럼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 어떻게 그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재민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게 토니는 이를 악문 채 분노에 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하지만 화가 난들 방법이 있을까? 패배한 건 패배한 것이며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결말이다.“도대체 어떻게 할 거야?”이미 정해진 사실을 인지한 것인지 토니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