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민은 화가 났다. 어떻게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서 강윤아가 납치되었단 말인가?“알아봐요, 빨리 알아봐요, 꼭 잡아줘요.”재민은 CCTV에서 은찬을 기절시킨 사람을 보면서 열불이 날 것 같았다.윤기태는 온 마음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네.”곧이어 기태는 급히 차를 몰아 조사를 하러 떠났다.윤아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이제 하루가 지났다. 그 약의 약효는 정말 세다.윤아가 금방 깨어났을 때 온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았다.그녀는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뜰 수가 없었다.그래서 먼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다시 눈을 떴다.주위 환경이 또렷하게 보이자 윤아는 자신이 화물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은찬은 지금 그녀의 곁에 누워 있다.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은찬아, 은찬?”은찬은 미간을 찌푸리고 속눈썹을 몇 번 가볍게 떨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눈앞에 있는 사람이 엄마인 것을 안 은찬이 감격에 겨워 말했다.“엄마.”윤아는 은찬을 품에 안고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엄마 여기 있어.”윤아는 은찬이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이전에 윤아는 자신이 쓰러졌을 때 다시는 은찬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은찬이가 아직 자신의 곁에 있다.“엄마한테 어디가 아픈지 보여줄래?”윤아는 은찬의 손을 들어 좌우를 둘러보며 한 바퀴 돌기도 했다.은찬이가 자기 목을 움직이더니 까닥하는 소리가 났다.“어머?”“엄마, 목이 아파요.” 은찬은 자신이 그 서비스 직원 때문에 다친 곳을 가리켰다.윤아가 얼른 살펴보니 그곳이 이미 파랗게 멍들었다. 은찬의 뽀얀 피부에 이렇게 눈에 띄는 멍 자국을 보니 마음이 아파 났다.“엄마가 호호 불어줄게, 괜찮아.” 윤아는 은찬의 상처를 불어 주었다.“엄마가 불면 안 아파요.” 은찬은 윤아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아파도 꾹 참았다.윤아는 아이를 이대로 둘 수 없어 연고를 사러 가려고 했다.“엄마랑 연고
분위기가 너무 긴장된 탓인지 은찬의 표정도 무거워졌다.강윤아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은찬이가 항상 즐겁게 지내길 바랐고, 은찬이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윤아는 은찬에게 급히 위로를 건네며 말했다. “은찬아, 두려워하지 마.”은찬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윤아가 그렇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윤아의 곁에 서 있는 은찬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이 시점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활발했던 은찬이가 이런 상태가 되자 윤아는 마음이 아팠다.“은찬아.” 윤아는 은찬 앞에 쪼그려 앉아 진지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엄마가 반드시 아빠와 연락할 방법을 찾을 거야. 그러니 너도 걱정하지 마, 알았지?”“알았어요, 엄마.” 은찬도 진지하게 윤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윤아는 은찬의 순한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윤아는 왜 자신이 항상 위험에 처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꾸 은찬까지 연루되는지 몰라 답답해 났다.가끔 그녀는 모든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꼭 엄마 뒤를 따라야 해. 절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 알겠지?” 윤아는 매우 단호하게 은찬에게 당부했다.물론 윤아도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이 워낙 위험하기에 은찬을 놓아둘 수 없었다.은찬을 계속 자신의 곁에 두는 것만이 그녀가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그래서 윤아와 은찬은 어쩔 수 없이 배 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이곳은 그들에게 완전히 낯선 곳이었고, 선장의 태도와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에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었다.배 위에서는 먹을 것이 전혀 없다.게다가 윤아는 낯선 환경에 너무 뚜렷하게 노출될까 봐 매일 사람들이 다 먹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식당에 가서 남은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았다.그래서 요즘 윤아와 은찬은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한다. 음식도 매우 형편없었다.이런 상황은 그들 두 사람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그러나 필경 이미 이런 지경에 이르렀기에 적응하
윤아는 잠시 침묵하던 남자가 갑자기 돌아서서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틀 후면 목적지에 도착해. 그동안 그냥 순순히 배 안에 있어,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윤아는 이 남자의 신분이 단순하지 않음을 빨리 깨달았다.하긴 그런 정보는 윤아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 사람이 자신을 도와주고, 몇 마디 조언을 해준 것만으로도 윤아는 이미 매우 감사했다.“알겠어요, 고마워요.”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현진성은 입을 꾹 다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진성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아는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한편 권재민은 며칠을 애쓴 끝에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윤아를 납치한 사람들은 호텔 직원으로 위장한 자들이다.이 일로 인해 호텔도 책임을 져야 했다. 재민에게 밉보였다는 것을 알게 된 호텔 측은 최선을 다 해 윤아의 행방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추적 끝에 재민은 윤아가 어느 선착장으로 끌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선착장은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혼란스러운 곳이었고, 윤아가 거기서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었다.이를 알게 된 재민은 더욱 긴장했다.윤아가 그런 곳으로 보내졌다고 생각하니 재민은 편안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혹여나 윤아가 무슨 일을 당할까 두려워했다.선착장에 도착한 후, 재민은 고생스럽게 찾아다녔지만 윤아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저기요, 이 사람을 본 적 있나요?”선착장에서 재민은 보는 사람마다 윤아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재민의 마음이 타들어 가는 순간, 윤기태가 전화를 걸어왔다.재민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윤아 쪽 일이야? 무슨 정보가 있어?”“조사한 결과 윤아씨는 현재 선착장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미 배를 탄 것으로 추정됩니다.”“뭐라고?” 재민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어떤 배야?”기태는 손에 든 자료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대로라면 아마도 밀항선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해외로 가고 있
토니는 해나의 말에 다소 놀라며 말했다.“누가 우리의 아름다운 송 아가씨를 이렇게 화나게 했을까요?”“상관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해나는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할 수는 있죠.” 토니는 통쾌하게 말했다.그에게는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토니는 해나가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해나도 토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도와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해나는 토니를 힐끗 쳐다보며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토니는 일어서서 해나의 곁으로 걸어갔다.“송 아가씨를 오랫동안 좋아해 왔습니다. 송 아가씨, 제 여자친구가 돼주시겠습니까?”토니는 해나에게 다가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해나의 향수 냄새를 맡았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해나는 온몸이 긴장되어 있었다. 준비는 해 두었지만 토니가 직접 말하자 해나는 약간 두려웠다. 물론 겉으로는 들어내지는 않았다.해나는 당연히 거절하고 싶었다. 토니의 여자가 되면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해나는 송씨 집안의 귀한 딸이다. 사람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자신을 판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알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방법만이 윤아를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해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토니는 크게 웃으며 다시 의자에 기대며 해나를 음흉하게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좋은 태도를 보여주셔야죠. 그래야 제가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토니는 기분이 좋았다. 그의 눈은 지금 해나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 찼다.해나는 극도로 꺼려했지만 지금은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해나는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진한 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으로 토니를 유혹했다.그리고 천천히 토니에게 다가갔다.평소에 해나는 차갑고 고상한 이미지이다. 하
송해나는 단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 만큼 간절했다. 지금 당장 권재민의 곁으로 돌아가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의 향기로운 품에 말이다.특히 며칠 동안 재민을 볼 수 없었던 강윤아는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다. 비록 현진성이 계속 자신과 은찬을 지켜주고 있지만, 윤아는 여전히 불안했다.윤아는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자신이 이 무시무시한 곳을 빨리 떠날 수 있기를, 재민이가 자신과 은찬을 빨리 찾아내어 가족이 다시 모일 수 있기를 바랐다.한편 재민은 직접 아프리카로 출국했다.공항은 상당히 북적이었다.재민은 아직 마중 나온 사람을 찾지 못했기에 공항 출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공항 한쪽에서 소란스러워 보였다.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사람은 중·영 혼혈인이었다. 1미터 90의 키에 바다같은 푸른 눈과 금빛 자연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그는 뱀파이어처럼 잘생겼다.그렇게 잘생긴 모습은 당연히 많은 소녀의 비명을 자아내기 충분했다.재민은 공항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곳을 바라보며, 그곳이 태준이가 있는 곳임을 알았다.태준은 상당한 매력을 가진 남자이다. 뱀파이어 같은 날카로운 외모를 가졌지만 실제로는 성숙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또한 태준은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며, 재민의 해외 매니저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재민이가 태준을 신뢰한다.태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빠져나와 혼자 서 있는 재민을 발견하고는 말했다.“나왔다?” 재민은 약간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태준을 바라보았다.“네.” 태준은 마음속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알았다면 제대로 차려입고 마스크를 쓰고 나왔을 것이다.“가자.” 재민은 캐리어를 끌고 출구로 향했다.태준은 재민에게 있어서 그의 부하이자 동료이다.만약 평상시였다면, 재민이가 태준을 더 잘 놀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긴박하다. 윤아 쪽이 1초라도 급박한 상황이기에.밀항선에 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재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차
윤아와 은찬은 대형 기지로 끌려갔다. 이 기지는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기품이 넘쳐났다.윤아는 어리둥절하게 그 사람들을 따라갔다. 짧은 동안에도 은찬을 잃어버릴까 봐 은찬의 손을 꼭 잡았다.곧 일행은 한 사람 앞으로 안내되었다.“저는 이곳의 책임자, 조학해라고 합니다.”학해가 자기소개를 했다.조학해는 말하면서 득의양양해 보였다. 마치 스스로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윤아는 이런 표정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살며시 눈썹을 찡그렸다.학해를 처음 본 순간부터 별로였다. 물론 직감이긴 하지만.또한 말투뿐만 아니라 학해 자체도 도둑놈처럼 생겨 윤아는 더욱 그를 꺼렸다.그녀가 묵묵히 학해를 관찰했다. 학해는 하나하나 소개하기 시작했다.“여기는 전자 부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러니 이미 여기 온 이상 착실하게 일 하세요. 딴 마음 품지 말고.”“그러면 숙소는 어떻게 안배하나요?”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물었다.조학해는 그의 질문에 불만이 많은 듯 째려보았다.“기다리세요. 제 말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끼어드세요?”학해가 불쾌한 표정을 짓자 그 사람은 얼른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제 주둥이가 문제예요.”그 사람이 사과한 후에야 학해는 고개를 돌려 엄숙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우리가 숙식을 책임질 것입니다. 하지만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은 안 됩니다. 이 정도를 해준다는 것을 아신다면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숫자가 있겠죠?”밀입국해 온 많은 노동자들에게 이런 조건은 상당히 좋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만족하는 웃음을 지었다.“너무 좋네요!”“그러게, 생각보다 훨씬 좋네요.”몇 사람이 작은 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학해는 그들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자그마한 은혜에도 이리 기뻐들 하다니. 수준이 참 낮네.’“자.” 한바탕 의논을 한 후에 학해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이제 숙소를 배정하죠. 한 칸당 네 사람입니다.”학해는 말을 다 한 후에 가서 쉬라고 했다.윤아는
채비를 마친 현진성은 떠났다. 강윤아와 은찬은 숙소에 남아 있었다. 가슴이 너무나도 뛰었다.윤아도 이런 환경에서 얼마나 머물러야 할지 몰랐다.‘진성, 정체가 뭘까?’윤아는 진성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도와주었기에 꼭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진성은 떠난 후 바로 일하는 곳으로 달려가지 않고 먼저 학해를 찾아갔다.“조 매니저님, 제 아내는 임신해서 몸이 불편합니다. 제가 윤아의 일을 다 해놓겠으니 한동안 쉬게 해도 되겠습니까?”진성이 학해를 향해 말했다.학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나는 표정을 지었다.자선단체도 아닌데 왜 아무 이유 없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해야 하는지 몰랐다. 따라서 진성의 부탁에 불쾌해 났다.“할 수 없는데 왜 와요?”학해의 말투는 좀 좋지 않다.진성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어서 말했다.“제 아내는 제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윤아는 최근에 몸이 나빠진 것일 뿐 이내 회복할 것입니다. 갈 길이 머니 며칠만 쉬었다가 다시 일하면 안 되겠습니까?”학해는 처음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윤아의 고운 얼굴을 생각하고는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그러고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요, 며칠 쉬게 하죠.”이때도 윤아는 숙소에 남아 모두 일하러 가려는 소리를 들었다.“엄마, 밖에 저 사람들은 뭐 하러 가요?” 은찬은 윤아의 옷을 잡아당기며 물었다.윤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았다.‘물론 진성이가 당부했지만 만약 이쪽 책임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떡하지?’‘에이, 임신을 안 했더라면 고생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하필.’그때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밖에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마치 그들에게 일을 재촉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윤아를 본 그 사람은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당신 남편이 휴가를 냈어요?”윤아는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네.”“아, 네.” 그 사람도 더 묻지 않고 바로 떠났다.한편 재민 쪽은 마침내 항구에 도착하여
현진성은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다.그들 모자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상처일 수 있다. 만약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희망이라도 꺾어 놓는다면 그들에게 정말 잔인한 짓을 한 것이다.“자, 먼저 밥을 먹어, 식으면 맛이 없어.”가져온 도시락을 은찬과 강윤아의 눈앞에 내밀었다.진성은 특별히 좀 더 좋은 요리를 담았다. 필경 윤아는 임산부이니 영양이 따라가야 한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고로 좋은 것들을 가져왔다.밥 냄새를 맡은 윤아와 은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너희들 먼저 먹어. 나 먼저 일하러 갈게. 아직 일이 많아.” 진성은 도구를 들고 떠날 준비를 했다.윤아는 손을 뻗어 진성을 잡고는 말했다.“잠깐만요.”진성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 더 있어?”윤아는 웃으며 답했다.“저희를 이렇게 챙겨주시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저도 일하러 가려고 합니다.”윤아는 어차피 반나절이니 비록 임신한 상태이지만 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기에 일을 할 수 있었다.기왕 이렇게 된 이상, 또 너무 심심한 것도 있고 해서 윤아는 일을 하면 진성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너는 갈 필요가 없어. 내가 이미 그 조학해에게 말해놨어. 너희 모자는 여기 있으면 돼.” 진성은 정말 납득이 안 갔다. ‘어떻게 임산부가 이렇게 부지런할 수 있을까?’“괜찮습니다. 어차피 한가해서요. 도와서 일도 하고 좋을 것 같은데요.”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은찬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일어나 진성을 쳐다보았다.“할아버지, 저도 일할 수 있어요. 저를 얕보지 마세요.”은찬은 아버지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은찬에게는 아버지가 없을 때 어머니를 잘 돌볼 의무가 있었다.‘막상 일을 한다면 어떻게 엄마 혼자 하게 할 수 있겠어.’진성은 어쩔 수 없었다.“네가 나를 도와 일하는 것이 아니야. 너는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도와 일을 하는 거야. 그들이 너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 이상 왜 억지를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