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가 떠나고 강윤아는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책임자를 통해 정보를 알아내긴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래도 이전보다는 단서가 생겼다는 점에 그녀는 위안을 느꼈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러한 마음이 수사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다.그녀는 다시 책임자의 말을 떠올리며 글을 끄적였다. 그리고 필기한 것을 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책임자는 아주 솔직하고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용의자는 분명 저들 사이에 있었다.강윤아는 추리를 시작했다.이 일은 강윤아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지금 해결하지 못한다면 회사 이미지는 나락으로 갈 게 뻔했다.회사 이미지는 이미 타격을 입었지만, 그녀는 빠르게 일을 해결해 더 나쁜 상황을 막아야 했다.이런 생각을 하던 강윤아는 초조함에 손을 떨었다.자신의 회사가 이렇게 망가져 가는 걸 그녀는 가만히 두고만 있을 수 없었다.한참을 고민하던 강윤아는 권재민이 자신에게 단서를 알려주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권재민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권재민이 이런 일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단서도 알려준 그가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 않을까?’그녀는 자신이 홀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상한 고집을 피우기보다 회사가 우선이었기에 그런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은 그녀는 다시 권재민을 찾아가기로 했다.다만 아까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자신이 다시 그를 찾아갈 생각을 하니 조금 부끄러웠다.권재민은 늘 자신을 위해 생각해 주는데 그녀는 회사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그녀의 태도에 권 재만이 실망을 하지 않을지 그녀는 걱정이 되었다.하지만 그녀는 권재민이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현재 회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권재민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권재민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길에 그녀는 두서없는 단서들의 조각을 조금씩 맞추어 갔다
권재민의 말에 스미스는 말문이 막혔다.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고 스미스는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스미스든 권재민이든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태클과 시장 경쟁, 아니 시장 전쟁을 걸쳤다.사장 경쟁이라는 건 바다 위를 항행하는 것과 같았다. 이 잠잠한 파도가 언제 나를 덮칠지 알 수가 없었고 이런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파도에 잠식이 되었다.스미스와 권재민은 바로 이러한 전쟁을 이겨낸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넓은 식견과 과감한 경영,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걸쳐가며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다.시장 경쟁의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익때문에 회사 기밀을 살려는 사람, 이익때문에 회사의 기밀을 파는 사람.스미스는 이런 세상에 발을 오래 담그다 보니 이 일을 오래 할 것 같은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강윤아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사실 강윤아는 이제 금방 태어난 새싹에 불과했으니 큰 그늘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새싹은 앞으로 거친 바람과 폭풍우를 거쳐 큰 나무로 자라나야 했다.하지만 스미스는 곧 자기 생각이 짧았다는 걸 느꼈다. 이런 새싹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했다.스미스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며 말했다.“이번 일은 미안해. 강윤아 씨를 믿어볼게. 그래도 평소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었잖아. 누가 계획적으로 무너뜨리려고 작정한다면 당할 수밖에 없지 뭐.”그 말에 권재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친구를 잘못 사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아내를 대신해서 말할게, 고마워. 그리고 내가 있는 한 그 회사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야.”권재민은 자신만만했다.그 말에 스미스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내가 그 말은 믿지.”두 사람은 오랜 협력 관계를 넘어 좋은 친구가 되었다.“그리고 지금 적자는 내가 두 배로 벌어줄게.”당당하게 말하는 권재민의 모습에 시장 경쟁의 황태자다운 자태가 보였다.“그래, 아주 좋아.”스미스가 연신 고개를 끄덕
다른 한편, 강윤아 회사는 이미지 타격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환불을 요청했다.요즘 강윤아는 매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해외에서 혼자 은찬이를 키우는 것보다도 더 힘이 들었다.사무실에 앉아있어도 언제 고객의 불만 신고 전화가 걸려 올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다.그녀는 직접 고객을 만나보지 않았지만 보고서를 통해 전해 들은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걸 알고 있었다.정말 이러다가는…… 얼마나 큰 적자가 생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회사들은 이 틈을 타 바로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기 시작했다.눈앞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회사는 바로 대체될 게 뻔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강윤아는 회사 문제로 나날이 말라갔다. 권재민은 이런 그녀를 보며 마음 아파하며 그녀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탓했다.‘강윤아 씨가 먼저 도와달라고 했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어……. 이번 상대는 어떻게 이토록 자신을 꼭꼭 숨길 수 있는 거지?’‘정말 강윤아 씨가 이대로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권재민도 점점 초조해질 무렵, 비서가 소식을 전해왔다. 스위스 은행에서 SY 그룹의 계좌 이체 기록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찾아본 결과 외국인으로 밝혀졌으며 SY 그룹이 아주 은밀하게 행동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아직은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지만 권 재만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고 비서더러 외국인의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윤기태는 그의 명령에 아무 말 없이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비서는 이번 조사에 있어 피곤함을 느꼈다. 권재민은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조사 진도를 물어왔고 그는 매번 똑같은 보고를 올렸다.그러던 어느 날, 권재민은 윤기태가 최선을 다해 조사하고 있는데 재촉만 해서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조사 결과가 나오면 어련히 알아서 찾아오지 않겠는가?’그래서 권재민은 윤기태를 재촉하는 대신 자신의 조급한 마음을 다잡았다.권재민이 지금껏 회사를 운영하면서 위기는 여러번 있었지만, 지금처럼 초조하고 불안했던
두 사람은 방으로 돌아갔다. 강윤아는 여전히 권재민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권재민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한 사람의 어깨에 이렇게 의지할 수 있구나…….’‘그리고 의지해도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있구나…….’강윤아는 권재민을 만나러 온 과정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권재민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강은찬은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조금의 불만을 품고 있었다.그러나 강윤아가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에 마음의 응어리는 사르르 녹아버렸다.‘엄마는 정말 일이 너무 바쁘셔서 그러셨을 거야.’강은찬은 스스로를 다독였다.강윤아는 지키지 못한 약속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진 않았는지 허리를 숙여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은찬아, 어젠 엄마가 너무 바빠서 은찬이와 놀아주지 못했어. 너무 미안해, 앞으로 안 그럴게. 엄마 용서해 줘, 응?”강윤아의 진심 어린 눈빛에 강은찬 마음이 동요했다. 강윤아는 다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네. 은찬이는 엄마 믿어요. 그런데 엄마가 정말 바쁘다면 은찬이 혼자 놀아도 괜찮아요.”강은찬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의젓한 말을 하는 강은찬이었지만 말투를 보아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게 티가 났다.이런 아이의 모습에 강윤아는 더 마음이 아팠다.‘이렇게 어린 은찬이가 벌써 내 걱정도 해주고 있어. 그런데 나는 일이 좀 바쁘다고 은찬이를 내버려뒀어…….’‘생각해보니 난 은찬이보다도 의젓하지 못한 것 같아.’강윤아는 강은찬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갔다.밥을 야무지게 먹던 강은찬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말했다.“아빠, 엄마. 내일 학교 부모님 참관 활동이 있는데…… 시간 되세요?”은찬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아이는 부모님이 요즘 많이 바쁘다는 걸 알고 있어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한다면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놀면 그만이었다.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강은찬은 뭐가 중요한지
권재민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며 강윤아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서운해할 권재진을 떠올리며 웃음을 꾹 참았다.비록 애써 웃음을 누른다고 해도 권재민은 그녀가 자신을 비웃고 있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미묘한 권재민 표정을 살피며 강윤아가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오늘 재민 씨 의상이에요.”이제야 권재민은 자신이 단번에 대답했을 때 강윤아가 왜 그렇게 의아해했는지, 심지어 왜 아주머니에게 부탁하려고 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이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권재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권씨 가문의 최고 책임자, 권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이런 옷을 입다니…….‘정말 너무 어울리지 않는 옷인 것 같은데.’권재민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가 치열한 전쟁을 펼쳤다.악마는 권재민이 이런 입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다그쳤지만, 천사는 강은찬과의 약속이 꼭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강윤아는 여전히 권재민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아주 착잡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강윤아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재민 씨가 안 입어도 괜찮아요. 그냥 확인차 온 거에요.”강윤아는 이런 그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옷을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도 권재민이 망설인다면 그녀는 다그치지 않을 것이다.옆에 선 강은찬이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하자 권재민은 바로 마음이 약해져버렸다…….‘정말…… 입어야하나?’권재민은 계속해서 고민했고 강은찬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기대 가득한 아이의 표정이 권재민을 향했다.강윤아는 권재민을 난감하게 하고 싶지 않아 다급하게 강은찬을 안아 올리며 달랬다.“은찬아, 아빠가 싫다고 하면 포기해야지.”강은찬이 한참이나 권재민을 바라보다가 눈물 그렁그렁 달고 말했다.“알겠어요…….”이런 강은찬의 표정에 권재민은 단번에 무너져 버렸다.“아니야, 입을게. 입고 함께 가자, 은찬아.”권재민의 결정에 강윤아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천하의 권 재만이 허락하다니?’그녀는 벌써 강은찬에게 말할 변명을 수
권재민은 얼굴이 잔뜩 굳은 상태였다. 이런 활동은 처음이라 어떻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할지 그는 전혀 몰랐고 이런 그의 모습을 친구들이 본다면 아마 배를 끌어안고 웃을 게 뻔했다.권재민은 곁눈질로 강윤아와 강은찬을 살폈다. 둘은 쇼를 200%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들은 죽이 척척 맞았고 표정이며 몸짓이며 모든 게 완벽했다.그러나 권재민은 옆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에 일조했다.모든 사람이 권은찬 가족의 공연에 집중했다.“저 늑대는 모든 늑대 중에서도 가장 잘생겼어요.”어느 여자아이가 권재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응, 맞아.”아이의 친구들도 맞장구를 쳤다.다른 남자아이가 입을 열었다.“은찬이 아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잘생기셨다니!”아이들을 제외하고 어른들까지 은찬이네 가족을 칭찬하고 있었다.그들은 이곳에서 핫피플로 등극 되었다.젊은 엄마들도 권재민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세상에, 너무 잘생기셨어. 내가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당장 쫓아갔을 텐데.”모든 여자의 마음을 대변한 여인이 한마디를 했다.그 여인의 옆에 있던 아이 아빠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자기 아내가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를 쫓아간다는 말에 화가 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권재민의 외모를 보고 나서 순순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권재민은 순식간에 장내 아빠들의 적으로 돌려졌다.은찬이의 공연이 끝나고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그 뒤로 다른 아이들의 공연이 이어졌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공연이 막을 내렸다.그다음으로는 오늘 공연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MC는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이렇게 말했다.“축하합니다, 오늘 투표 1위는 강은찬 어린이와 가족분들입니다.”이어 박수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많은 사람이 은찬이네 가족을 향해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권윤아와 권은찬이 행복해하며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여인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의의 있습니다!”사람
“허.”이영옥이 또 냉소했다.“무슨 말을 가려서 해요? 표절했으면 한 거지 왜 인정을 하지 않는 거예요? 얼굴만 더 예뻤다면 아주 연기하셔도 돼요.”이영옥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마치 자신이 권윤아보다 훨씬 위라는 느낌을 뿜어냈다. 강윤아의 표절 의혹 때문에 권윤아를 위해 말해주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강윤아는 너무 화가 나 숨이 거칠어졌지만 참아야만 했다. 이영옥의 태클에 넘어가 싸운다면 그녀 역시 똑같은 사람으로 보일 게 뻔했다.강윤아가 잠자코 있자 이영옥은 강윤아가 풀이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또 입을 열었다.“여러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런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는 불매 운동을 해야 해요. 소비자를 기만하는 회사는 빨리 망하는 게 여러분을 위한 길이에요. 그리고 강은찬도 이 유치원에서 내보내는 게 어떻겠어요?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알 리가 없잖아요.”학부모들은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지 조금 난감했다.이영옥은 계속해서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사기꾼 자식과 제 아이가 같은 유치원을 다닌다는 게 너무 무서워요.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 잘못 배운 습관이 평생 간다고 하잖아요.”자신을 모욕하는 말은 참을 수 있었지만, 아이까지 들먹이자, 강윤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이 말을 듣고 강은찬을 왕따시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강윤아는 이영옥에게 한발 다가가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사기꾼이라고요?”이영옥은 오만함에 잠식된 사람이라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당신이 교육해 낸 아이는 사기꾼으로 클 게 뻔해요. 어쩌면 더한 짓도 할지 모르죠. 빨리 원장님을 찾아가 강은찬을 내보내는 것에 대해 의논해 봐야겠어요.”옆에 가만히 서 있던 권재민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권재민은 차가운 눈길로 이영옥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건 이영옥이 어느 정도까지 막말하는지두고 보려는 심산이었다.오만한 사람이 막말한 후과가 무엇인지 그녀는 곧 알게 될 것이다.권재
유치원 원장의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멍해졌다.‘뭐? 이 사람이 태성 그룹 대표라고?’라는 생각에 모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하긴, 평생 쳐다도 볼 수 없는 사람을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다는 게 확실히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그런데 그 신비롭고 권세 있는 남자가 이런 옷차림으로 유치원 행사에 참가하다니.사람들은 눈앞의 이 잘생긴 남자가 태성 그룹 대표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물론 분위기부터 남다르긴 했지만…….그토록 유명한 권민재가 이런 곳에 오다니, 귀한 분이 누추한 곳에 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하지만 곧바로 자기가 이영옥 편에 서서 권재민과 척지는 말은 한 건 아닌지, 앞으로 권재민이 자기를 겨냥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해졌다.그런 생각이 들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안색이 눈에 띌 정도로 어두워졌고 이영옥을 탓하기 시작했다.만약 이 여자가 일을 크게 만들지만 안았다면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만약 권재민이 책임을 물으면 어쩌지? 수많은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을 파고들었다.권재민의 세력은 이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거다.그와 동시 권재민의 신분을 알게 된 이영옥도 순간 얼어붙었다.‘이럴 리가? 이 남자가 권재민이라고?’‘태성 그룹 대표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여기 있지?’‘지금쯤이면……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유치원 행사에 참가하다니?’이영옥의 남편 이성준은 이미 진작에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해졌다.아내가 원래부터 건방지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 데다 자기 집안이 뼈대도 있고 지위도 있는 집안이라 누가 됐든 두렵지 않다고 생각해 내버려둔 거였는데.지금 상황은 아예 달라졌다. 아내가 권재민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권재민은 지위 조금 있다고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권 대표님, 제 아내가 대단한 분을 몰라뵙고 방금 심한 말을 한 데 대해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이성준은 말하면서도 조마조마했다.권재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메리는 인큐베이터 옆에 있는 의사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그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주의를 시키었다.“존, 사람들이 묻고 있잖아요.”“네?”존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권재민은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다시 물었다.“내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어요.”“아기는 지금 상태가 안정돼 있고 아까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어요. 달이 차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존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고 무서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재민은 가볍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고 인큐베이터 안의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생명이 정말 완강하다고 느꼈다.강윤아에게 그렇게 많은 위험이 닥쳤는데도 이 아이는 이렇게 안전하고 무사하게 태어났고, 게다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앞으로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눈앞의 작은 아이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건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엄마 윤아는 분명 더 완강할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지만 윤아는 아슬아슬하게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재민은 보면 볼수록 더 반가웠고 윤아가 출산할 때 옆에 없었지만 수술실 밖에 있었으니 좀 멀지만 어떻게 보면 윤아 옆에 있은 셈이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윤아 옆에 꼭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재민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고 현진성과 한기현도 옆으로 다가가서 아기를 바라보았다.“윤아 씨를 많이 닮아서 참 예뻐. 앞으로 윤아 씨처럼 예쁘게 자랄 거야.”기현은 한참을 쳐다보았다.옆에 있던 진성은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윤아 씨와 닮은 줄 알아요? 갓난아이는 이목구비도 다 비슷비슷하고 쭈글쭈글한 모습이 늙은이 같다는 생각만 들어요. 게다가 머리카락이나 눈썹도 다 나지 않았잖아요.”“진성 씨…… 왜 그래요? 분명 윤아 씨를 닮았잖아요?”핀잔을 들은 기현은 얼굴이 빨개졌다.“재민아. 진성 씨 봐, 너의 아이가
한기현은 다시 권재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숨은 곳을 알려줬지만 강윤아가 끌려갔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재민은 재빨리 이곳으로 달려와 둘러보았으나 윤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스러운 얼굴로 기현과 현진성을 힐끗 쳐다보았다.“기현아, 현진성 씨, 윤아 씨는요? 윤아 씨가 왜 여기에 없죠?”두 사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재민 앞에서 감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기현은 슬며시 진성을 쳐다보고 몰래 진성을 쿡 찔렀다. 진성은 방심하다 밀려났고 뒤를 돌아보며 기현을 노려보았지만 기현은 고개를 숙이고 더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묻고 있잖아요! 윤아 씨는요? 내 아내 어디 갔어요? 당신들 윤아 씨를 어디로 데려갔어요?”재민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소리쳤다.진성은 미안한 표정으로 재민을 바라보며 재민에게 그가 떠난 후의 일을 대충 말했다.“권재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윤아 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애스릭에게 빼앗겼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그 방에 숨으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애스릭이 이렇게 교활하게 두 가지 계략을 쓸 줄은 몰랐어요.”“권재민 대표님, 지금 저를 때리고 욕해도 저 할 말이 없어요.”이 말을 들은 재민은 온몸에 살기가 피어올랐고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진성을 노려보며 허리에서 총을 꺼내려 했다. 기현이 황급히 그런 재민을 말렸다.“재민아, 일단 흥분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은 편이니 우릴 도울 수 있어. 게다가 인터폴이야. 너 인터폴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윤아 씨부터 찾아야지. 지금 우리는 진성 씨가 필요해.”기현은 재민의 허리춤의 총을 쥔 손을 힘껏 눌렀다.진성도 황급히 위로했다.“권재민 대표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밖에 비도 오고 바람도 심해서 빨리 갈 수 없으니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게다가, 우리 배에는 위치추적 장치가 있어요. 아주 은밀한 곳에 두었으니, 그들은 분명히 찾을 수 없
한기현은 사람과 함께 현진성의 사람들을 따라 수술실의 암도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길을 따라가다가 애스릭의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기현은 그들 모두가 깨끗이 떠난 줄 알고 있었는데 애스릭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사람을 남겨 그들을 몰살시킬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다.기현의 눈에 갑자기 핏빛이 솟구쳐오르더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맨주먹으로 몇 사랑을 해치웠다.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살스러운 모습까지 보여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그 사람들은 애스릭을 보낸 후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한바탕 뒤지고 나서 도망갈 계획이었는데, 결국 절반 정도 뒤지다가 기현 일행을 만났다. 특히 기현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그들은 원래 기현 일당과 대충 싸우려고 일부러 그들을 놓아주려 했는데 기현이 달려들어 그들 몇 사람을 쓰러 눕히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기현 일행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기현이 상대방의 생각을 알면 지금쯤 후회해 죽을지도 모른다. 몇 분 동안 아무렇게나 싸우면 될 일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또 한 번 미뤘다.몇 분 동안 싸운 후, 쌍방은 모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기현의 왼팔이 그 무리의 두목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있어 쌍방이 모두 시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기현은 그들의 타협을 기다렸고, 그 사람은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이 팀장은 원래 타협하려 했지만, 지금 이 지경에 이르니 승리욕이 자극되었고 지금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숙이면 부하들이 그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그는 승부를 내려고 했다.이때 폭발음이 드디어 또렷하게 들렸고 그 사람은 이때 갑자기 손을 썼다.기현은 그가 성급히 달려들 것을 예상한 듯 손을 빼 권총을 내던지고 날쌔게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등 뒤로 돌렸다. 두 발은 날렵하게 그의 허리와 배를 걷어찼고 곧 사납게 그의 몸을 비틀어 앞을 가
현진성은 애스릭의 부하들이 베티를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애스릭이 아직도 단념하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애스릭이 베티를 포기하거나 그들과 함께 죽으려고 이 보이지 않는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생각했다.애스릭이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베티를 데려가서 부활을 꿈꾸고 있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애스릭은 고승혁 교수와 강윤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진성은 갑자기 눈꺼풀이 미친 듯이 뛰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아와 고승혁 교수가 숨어 있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그는 급히 아까의 그 방으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그가 배치한 사람 중 몇 명은 상처를 입었고, 또 몇 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으며 그중 한 명은 이미 죽었는데 의사였다. 그 의사는 아기의 인큐베이터를 필사적으로 안고 있었다.진성은 그 의사의 시체를 땅에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의 손이 인큐베이터 가장자리를 필사적으로 잡고 있어서 아주 많은 힘을 써서야 그 손을 쪼갰다. 진성은 겨우 옆 깨끗한 곳으로 메고 가서 그를 살며시 내려놓았다.의사를 내려놓은 진성은 돌아서서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매우 달콤하게 자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엎드려 있어서 진성은 한동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하나하나 뒤집어 보았다. 애스릭의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고승혁 교수를 데려갔을 줄은 몰랐다.진성은 갑자기 윤아가 떠올랐다. 총소리가 그렇게 컸으니 윤아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 리 없다. 진성은 급히 모퉁이의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이불 속이 울퉁불퉁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승혁 교수 등이 윤아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어보니 안에 베개가 있었다. 진성은 멍해졌다.“이 방은 밀폐되어 있는데 그들은 어디에 잡혀간 거지? 게다가 방금 내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으니 문으로 나갔을 리가 없어.”진성은 조급했다.갑자기
고승혁 교수는 숨을 헐떡이며 말하고는 바다 위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애스릭이 그 배에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고승혁 교수는 깜짝 놀라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현진성은 그에게 대답할 방법이 없어서 그를 붙잡고 비밀 통로로 갔다.권재민도 급히 한기현에게 연락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다.그러나 신호를 받자마자 재민은 기현 쪽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기현아, 무슨 일이야?”재민은 노심초사하여 급히 물었다.“방금 그 사람들이 들이닥쳐 시스템을 파괴했어. 최선을 다해 구조했으니 지금은 30분 정도 지연될 수 있어.”“시스템 복구가 시급한데 지금 그들과 싸우는 중이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어.”기현은 시스템 감시실에서 애스릭의 부하들과 싸우며 관제탑에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권재민과 이쪽의 상태를 보고했다.보고하는 과정에서 재민은 기현의 끙끙거리는 소리까지 듣고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기아현, 너는 어때? 버틸 수 있겠어? 시스템 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지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어.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시간은 안 남았어요, 재민아.”“상대편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우리 사람은 이 몇 명밖에 없어. 버티기 힘들 것 같아, 재민아, 빨리 와.”기현이 헐떡이며 소리쳤다.재민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지만 윤아가 이쪽에 있었기에 결정하기 어려웠다. 윤아가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매우 걱정했다.진성은 재민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내 부하들이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했고, 그자들이 통제실의 시스템을 파괴했대요. 지금 우리 부하들이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기현이도 그들에게 얽매여 시스템을 고칠 기회가 전혀 없어요…… 나는 윤아 씨가 마음에 걸려요.”재민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가요, 여기 내가 있을게요. 기지 안에 내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