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지는 당황했지만 신속하게 냉정해졌다.“아주버님, 농담하지 마세요.”그녀는 하시원의 뜻에 따라 연기를 끝까지 하기로 했다. 지금 그녀는 하시원의 진정한 아내이지 자신을 연기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허점을 보여서는 더욱 안 된다.하동훈은 하씨 집안의 셋째이자 하시원의 윗사람인 유일한 형이라 강수지도 그를 아주버님이라고 존칭했다.하지만 나이로 따지면 하동훈이 하시원보다 나이가 꽤 많은데, 강수지가 보기엔 아빠뻘인 셈이었다.그래서 ‘아주버님'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게 들렸다.하동훈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
“외삼촌, 이분은 누구예요?”그러자 백아린는 하시원의 곁에 있던 강수지를 발견했고, 특히 강수지의 손이 하시원의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옆에 있던 한성준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이곳에서 강수지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지난번에 카페에서 만났을 때 강수지가 돈 봉투를 두 번 내야 한다며 결혼했다고 했는데... 설마...’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 한성준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비비며 환각이 아닌지 의심했다.하시원은 고개를 돌려 강수지를 바라보며 소개했다.“얘는 우리 큰누나의 딸
말을 마치자 백아린는 얼른 자신의 입을 막으며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외삼촌 죄송해요.”그녀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지만 강수지는 그녀의 입가에 감춰진 웃음기를 발견했다.강수지도 여자라 당연히 백아린이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런 모습은 마치 여우 년 같았다.백아린은 분명히 일부러 그녀 앞에서 그 신하리라는 여자를 언급했다.강수지는 신하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분명 하시원과 얽히고설킨 관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전 여자친구라든가.하지만 누구든 그녀와 관계가 없고, 그녀도 이 여자 때문에 질투
“그래.”하시원은 담담하게 대꾸했다.강수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깨물며 그 신하리가 누구냐고 따지기가 쑥스러웠다.하시원도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 보여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아마 하시원이 많이 사랑했던 여자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아린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오늘 밤 네 임무는 여기까지야.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대처할 필요 없이 방에 남아 쉬면 돼.”이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서려던 하시원은 떠날 때 다시 물었다.“혼자 있을 수 있지?”강수지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네, 물론
강수지는 하시원이 무엇을 들었는지 몰라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녀가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만약 하시원이 알게 된다면 하시원의 성격으로 그녀를 어떻게 처벌할지 모른다.아마 가장 가벼운 처벌이 계약을 파기하고 그녀를 하진 그룹에서 내쫓는 거겠지? 이것은 단지 가장 가벼운 벌일 뿐이다...그래서 강수지는 두려웠다.그녀는 바짝 말라 드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애교스럽게 그를 불렀다.“여보!”그녀는 하시원 곁으로 다가가 팔짱을 끼며 설명을 덧붙였다.“방금 배부르게 먹어서 위가
이날 밤은 유달리 평온했지만 강수지는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고택은 회사와 멀리 떨어져 있어 하시원은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강수지도 꾸물거리지 못하고 재빨리 일어나 빠르게 행동했다.그녀는 식탁에 앉은 후 맞은편에 앉은 하시원을 바라보았는데 그는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꼼꼼하게 다듬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강수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옷자락을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간단하게 포니테일을 묶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마음이 찔렸다.‘역시 난 대표님만큼 정교하지도 못하네.’다시 올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정수는 두 사람을 직접 배웅하며 차에 타는 것도 옆에서 지켜봤다.강수지는 그와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올렸다.차는 빠르게 고택을 떠났고 차 안은 매우 조용했다.강수지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고 경치를 감상하는 척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심호흡하며 하시원과 분명히 말하려고 용기를 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그녀는 계약을 체결할 때 하정수 앞에서 무조건 하시원에게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만약 아이를 가지라고 한다면 난 거절할 수도 없는
“자료실에 있는 자료를 다 정리한 다음... 다시 비서실로 돌아오세요.”전영미는 질투와 시기에 가득 찬 표정으로 비아냥거리며 쌀쌀하게 말했다.강수지는 안색이 변했다.“전 부장님. 부서에는 자료를 정리하는 직원이 따로 있어요. 이건 저의 업무 범위가 아니에요.”비서실에는 단독 자료실이 있었는데 안에는 하진 그룹에서 비서실을 설립한 후의 모든 자료와 기록을 남겼다.기밀 사항이라 종이 문서가 대부분이니 정리하자면 업무량이 어마어마했다.전영미가 그녀를 변두리로 자리로 내쫓으며 일부러 괴롭히는 게 틀림없다.“저에 대해 편견이 있
강수영은 2초간 웃는 모습을 멈추더니 계속해서 아첨했다.“대표님은 저녁에 계속 일해야 해요?”그녀는 하시원이 진심으로 거절한 게 아니라 단지 일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착각했다.책상 밑에 숨은 강수지는 심장이 목구멍을 타고 곧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그녀가 이곳에 숨었다는 것이 강수영에게 발견된다면 이 일은 아주 시끄러워질 것이다.“여긴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하시원은 강수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쌀쌀하게 이렇게 말했다.강수영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자신이 너무 주동적임을 알았다.‘혹시 내가 너무 적극적이어서
질... 질투라니?강수지는 의아해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럴 리가!강수지는 당연히 자신이 질투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하시원은 그녀가 질투한 줄 알았다!‘헐, 역시 남자들은 쉽게 나르시시즘에 빠지네.’“하 대표님, 만약 정말 저의 동생이 마음에 들었다면 저는 두 분을 중매할 수도 있고 제가 먼저 계약을 폐지할 수도 있어요. 그저 저의 외할머니가 치료를 계속...”강수지가 부탁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시원이 가로챘다.“난 강수영에 관심 없어.”강수지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남자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갑자기
뜨거운 호흡이 그녀의 목덜미에 뿌려졌다.강수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이 남자를 밀쳐버리며 그의 불만스러운 눈빛을 마주 봤다.“왜 그래?”강수지가 이유 없이 반항하자 하시원의 마음은 더욱 불쾌해졌고 강수지는 어리둥절해졌다.‘대표님은 계약을 해지하려는 게 아닌가? 강수영을 마음에 들어 한 게 아닌가?’“대표님, 저는...”입가에 말이 맴돌았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강수지는 하던 말을 잇지 못했다.하시원은 화내지 않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의 시선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도 오늘 밤 강수지가 마음이 다른 곳에
만약 전영미 부장이 나중에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강수지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그저 그녀가 이곳에 2시간이나 있었는데 하시원은 일만 할 뿐 계약 해지에 관해 언급하지 않아 의아했다.혹시 출근 시간에는 일만 하고 퇴근한 다음 다시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강수지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고 데이터를 정리하면서도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업무 효율도 그렇게 높지 못했다.해가 점점 지면서 이 큰 사무실도 어두컴컴해졌다.하시원이 노트북을 덮는 ‘퍽’ 소리에 강수지는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은 즉시 시선을 마주쳤다.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요?”허유리는 놀란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그렇지만 소 비서님이 일이 바쁘고 야근이 잦아서 아마 수지 씨를 만날 시간이 없을 거예요.”강수지는 어이가 없었다. 하유리가 글쎄 소정원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오해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소정원이 점심을 먹을 때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다. 평소에 소정원은 회사에서 슈퍼 로봇이라고 불릴 정도로 워커홀릭이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유리 씨
강수지의 머릿속에는 또 어젯밤의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하시원은 이미 고난도 동작을 시도하고 있어 그녀는 너무 피곤했고 그를 상대할 정력도 없었다.강수지는 말없이 묵묵히 밥만 먹었고 허유리도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이때 소정원이 느닷없이 불쑥 물었다.“강 비서,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요? 혹시 불편한 데라도 있어요?”소정원은 하시원의 암시를 받고 특별히 강수지를 관심했다.강수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흔들었지만 하시원을 힐끗 보며 얼굴이 더 빨개졌다.그녀는 방금 정신을 팔 때 19금 화면을 떠올렸기 때문
강수지가 멍해 있을 때 갑자기 여자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려가 하시원의 앞에 섰다.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수지 앞에 서 있던 강수영이다.“하 대표님.”강수영은 익숙한 척 애교스럽게 불렀다.“하 대표님, 감사합니다. 하진 그룹에서 저를 합격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꼭 열심히 일해 대표님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강수영은 가슴을 곧게 쭉 펴며 인사했다. 그녀는 몸매가 좋았고 타이트한 니트를 입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추를 세 개나 벌려놓고 있어 가슴을 쭉 펴자 바디라인이 예쁘게 드러났다.이 장면은 보고만 있어도 여
강수지는 도박하고 있었다. 한성준이 혼사를 위해 감히 모험할 수 없다는 도박이다.“너!”한성준은 화나 나서 이빨마저 떨렸지만 그렇다고 하시원에게 고자질할 수 없었다.천신만고를 거쳐 겨우 백아린을 손에 넣었지만 백씨 가문에서는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강수지와 사귀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는 백아린과의 결혼에 무조건 영향을 줄 것이다.이렇게 하면 얻는 것보다 오히려 잃는 게 더 많았다.“강수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야!”한성준은 독설을 내뱉은 다음 노기등등해서 전화를 끊었다.강수지가 하시원과 결혼했다
강수지는 잠들기 전에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낮에 회사에서 전영미의 괴롭힘을 받고 저녁엔 ‘야근’해서 하시원의 잠자리 시중을 하다 보니 이 가냘픈 몸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특히 하 대표님의 에너지가 보통 왕성한 게 아니다.이런 상황이 오래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생리 기간이 되면 조금이나마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수지는 난생처음 생리가 빨리 오길 기다렸다.전영미의 괴롭힘을 받는 부분에 관해서 그녀는 아직 하시원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지난번 경험이 있고 난 뒤 전영미는 만단의 준비를 하고 괴롭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