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사치스럽게 침대에 널려 있었다.불이 언제부터인지 꺼져있었고 따뜻한 색의 조명 하나만이 방안에 겹쳐진 그림자를 비추고 있었다. 창밖으로 유유한 바람이 스치며 흰색 커튼을 불어올려 이 장면을 가렸다.강유리의 의식이 점차 혼미해질 때 감탄하며 생각했다. 남자는 역시 자신이 부자로 되는 걸림돌이네...이튿날 새벽 강유리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고 방도 정리되어 있었다.침대 머리맡에는 봉투와 현금, 지폐 계수기가 단정하게 놓여 있어 주인의 꼼꼼함을 보여주고 있었다.옆에는 숫자가 적힌 포스트잇도 놓여 있었다.강유리는 이제 결과를 직접 보니 오히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봤다.많은 메시지가 있었다.사촌이 있고, 아버지, 할아버지, 스승님과 도 씨 어르신도 있었다.그들의 설명은 모두 같았다. 이야기가 길다고 하며, 어쩔 수 없이 말하지 못했고 했다.결국 그들은 모두 한패로 함께 강유리를 속인 것이였다.분노가 금방 가라앉은 강유리는 다시 화가 났다.단체 채팅방에 들어가니 역시나 메시지가 엄청 많이 쌓여 있었다. 한 줄씩 읽어보니 강유리는 그녀들이 앞에서 공작 어른에 관해 몇 마디만 물어보고는뒤에 모두 눈치채고 다시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일을 토론했다.[그럼, 그 여자는 대체 뭔 상황이야? 이 일을 그냥 이대로 뿌리칠 수 있어?】[책임을 돌리는 것도 아닌데. 그 알레르기는 나도 조금 책임이 있어.][그래도 우리 유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급해서 막 물어뜯었지?][일부 사람들은 영원히 좋은 사람을 볼 수 없다니깐! 성신영까지 동정받을 수 있다니. 정말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대체 뭔 상황이래.][내일 아침 나는 이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원해.][너 진짜 이들을 암살하려 하니?][오타야, 이 악플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 싶어!][플랫폼에 돈을 줘서 그들보고 즉시 내리라고 했어.][...]돈을 보낸 사람은 조보희였다.돈을 보내니 여러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조보희는 이
강유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동영상을 보고 모두 화가 났다.“이걸 뭐라고 하죠? 이것을 구인득인이라고 합니다!”“그녀가 먼저 사람을 괴롭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쌍한 척을 하다니?”“이런 사람은 처음 보네.”“육경원 부인의 신분으로 남을 협박하고 가문의 명성을 내걸고 웨딩 브랜드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언니를 위하는 거야?”강유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하지만 여전히 약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어. 강유리의 악독한 행동은 성신영과 뭔 차이가 있어?”“그러니까! 호텔도 못 잡게 만드는 것도 지독한데, 결혼식에서 소란을 피우다니.”“돈 있고 권세가 있으면 나쁜 일을 해도 편을 드는 사람이 있어.”“결혼식 예쁘게 하고 싶지 않은 신부가 어디 있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데 또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면 누가 기분이 좋겠어?”악플러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어쨌든 그들은 강유리를 싫어했다.이때 연예계에서 잘 알려진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엘리스가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잘못과 옳음을 판단하지 않고 사실만 밝힙니다. 우리는 뇌물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리 초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수 여사의 개인적인 가치관이 우리와 맞지 않아서 협력할 수 없었습니다]이 대목 뒤에는 그날 미용실에서의 대화가 담긴 음성 녹음이 첨부되어 있었다.“너희들 눈 안 달렸어? 날 아프게 했잖아!”“앗!”“고 아가씨, 왜 사람을 때려요?”“왜냐고? 너희 같은 천한 놈들이 돈을 받으면 사람을 잘 모셔야지, 나를 다치게 하면 네가 배상할 수 있겠어?”“...”“뭘 봐?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할 거면 꺼져. 오늘 메이크업은 스타일링들이 다투어 받거든!”“...”연예계 사람들은 엘리스가 스타일링을 할 때 동영상을 찍는 습관이 있다고 알고 있다.그날 성신영은 미리 스타일링을 유출하면 안 된다며 촬영을 거절했다.그러나 그들은 동영상을 찍지 않고 오디오를 녹음해 증거를 남겼다. 미래에
욕설도 가득했다.단지 그녀를 욕하는 것이 아닐 뿐...대화창을 열어 답장을 했다.[결과에 만족함.] 답장이 가장 빠른 사람은 소안영이였다. [이제서야 본 거야? 육시준, 능력 있나 본데. 신혼 첫날밤은 뜨겁게 보냈나 봐!] 신주리가 맞장구를 쳤다.[그런가 본데.] 도희가 말했다. [찌라시에 의하면 공작의 차가 어젯밤 내내 JL빌딩에 멈춰있었다는데.] 조보희가 말했다. [신혼집 주소가 바뀐 줄도 모르는 거야? 친아버지 맞아?] 이 말이 나오자, 채팅방은 침묵했다.어제 결혼식의 에피소드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사실이든 아니든 강유리가 먼저 자리를 뜬 것은 사실이다. 그녀들은 어젯밤 내내 이 일에 관해 얘기했다. 강유리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들은 화제를 성신영로 옮겼다.그리고 다시는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도희가 지금 떠보고 있는 것도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하지만 조보희가 한 수 위였다. 눈치 없이 남의 상처를 들춘 것이나 다름없다...조보희는 자기가 말한 후 침묵이 흐르는 걸 보고 뒤늦게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말실수했나?조보희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릴리는 어디 갔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말이 없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수습 불가다, 수습 불가. 어제 결혼식 피로연에서 강유리와 공작의 진정한 관계만이 폭로된 것이 아니다. 공작과 강미연이 판을 벌여 강민영이 자기 대신 죽게 했다는 말도 나왔다.이 소식이 진짜든 가짜든 충격적이긴 했다.강유리가 미리 현장을 떠났다는 것은 이 말들의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았다는 뜻이다. 만약 정말 영향을 받았다면 이 일 때문에 릴리와의 사이가 멀어질 것이다.릴리도 지금 마음이 복잡한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유리의 '발언'을 기다리고 있었다.조보희의 말 때문에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다.꽤 용감하다...소안영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다들 점심 메뉴로 뭐 먹을래?] 신주리가 대답했다. [다이어트 중, 매니저가 나 요즘
다들 묻는 걸 보고 릴리는 강유리도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자신이 아는 소식을 모두 털어놓았다.사실 그녀가 얻은 소식도 많지 않다.그리고 전부 부정적인 것들뿐이다.예를 들어, 강미연은 강민영이 자신을 대신해 죽었다는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강미연은 확실히 바론 공작과 몇 가지 협의를 달성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어머니는 큰이모와 아주 각별한 사이예요! 아버지와 판을 짜서 해치려 했다는 건 무조건 지어낸 얘기 일거예요.] 릴리가 얼른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그 두 분의 죄책감 가득한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그리고 강유리의 반응이 어떨지 친딸인 릴리보다 더 긴장하며 관심했다.어젯밤만 해도 릴리는 자기도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이 일로 언니와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는데 왜 자기한테는 사과하지 않고 언니만 신경 쓰는지 말이다. 내 기분은 신경도 안 쓰는 건가?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강유리에 비하면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리고 다른 각도로 본다면 릴리는 '수익자'인 셈이다.큰이모의 죽음은 어머니를 대신한 것이니까 말이다.만약 큰이모가 아니었다면 죽은 것은 자기 어머니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릴리는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어제 강유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와는 사이가 제일 좋은 자매일 것이라고 분명히 얘기했지만 릴리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강유리가 답장했다.[알고 있어. 내가 바보도 아니고.] 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언제 돌아올 거예요?] 강유리는 툭 한마디 내던졌다.[어른들 일에 애들은 끼어들지 말지. 정 한가하면 신하균이나 찾아가.] [???] ...강유리는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부엌에서 나는 고소한 향기를 맡았다.이 별장은 그들이 어제 입주한 데다가 둘만 조용히 보내기 위해서인지라 도우미를 배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주방에서 분주하게 요리하고 있는게 누구인지는 뻔하다. 강유리는 빠른 걸음으로 주방으로 갔다.편안한 실내복 차림의 남자가 옅은 색의
갑자기 고정철이 생각났다.고정남의 복귀로 기세가 약해진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그의 뒤에는 도씨 가문의 사람이 있다. 즉 고한빈이 도가네 무술관 쪽에 있는 세력이 오랫동안 그를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어제 그렇게 충동적으로 강유리 앞에 뛰어든 것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그들은 바론 공작과 맞서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다.또 다른 예로, 캐번디시 가문이 다시 권력을 잡아서 그들이 더 이상 공격할 수가 없어지자 바론 공작의 허점을 노려 공격한 것이다. 즉 화살을 그녀에게로 돌린 것이다.고정철은 그저 그들의 칼자루일 뿐이다. 이 칼이 강민영에게 겨눠진 것은 고정철의 본심이 아니라 배후 인물의 지시일 수도 있다.그리고 이 배후 인물이 어머니를 죽이려는 것은 그가 고정남의 '정인'이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이유는 바로 바론 공작이다...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육시준이 강유리의 손을 꽉 잡고 자기 앞으로 당겼다.육시준은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가볍게 들어 올려 그녀를 싱크대에 앉히고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화를 자초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음은요? 어디까지 생각한 거예요?"맑고 청량한 목소리에 옅은 의혹이 담겨 있었다.강유리는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여보, 신분을 바꿔서 혜택을 본 건 이모뿐만이 아니라 제 어머니도 마찬가지예요."육시준은 잠시 멈칫하고 더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이틀 동안은 쉬고 이 일을 생각할 줄 알았는데, 역시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듯 하다.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따랐다. "외할아버님께서 장모님은 성격이 산만해서 사업에는 관심이 없으셨고, 오히려 취미가 많고 사주 보는 것도 좋아하셨다는 말 기억나요? "강유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작은이모는 권모술수에 능하다고 하셨었죠.""맞아요.""..."답은 대충 나왔다.그녀들의 신분 교환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쌍방 합의도 됐을 것이다.다만 이 과정에서 작은 사고가 일어났을 뿐이다.도씨 가
육시준은 큰 손으로 강유리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강유리는 얼떨결에 그의 품 안에 안겼다."당신...""뒤끝 있어야겠군요. 쉽게 용서하면 안 되겠어요."육시준은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강유리의 말에 동의했다.강유리는 잠시 어리둥절하고는 긴장한 것도 잊은 채 의아해하며 물었다."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요?"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제가 당신을 잠깐 속였을 때도 그렇게 냉대를 당했는데 그들은 심지어 20년이 넘게 속였으니까요.""..."강유리는 확실히 그들을 며칠 더 내버려두고 화풀이할 생각이었다.자기를 위한답시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그동안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육시준의 관점은 상상밖이었다.자기가 겪었던 수모를 그들도 겪어보라는 건가?강유리가 눈웃음을 살짝 짓고 농담 몇 마디를 하려던 찰나 육시준의 따뜻한 입술이 느껴졌다. 육시준이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남에게 벌을 준다고 자신에게도 각박하게 굴 필요는 없어요. 진실을 알고 싶으면 그들의 말도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끝까지 듣고도 용서할 수 없다면 그때 피해도 늦지 않으니까요.""..."강유리는 살짝 동요했다.방금 그 말은 취소다.육시준은 전혀 음흉하지 않다. 그는 자기가 수모를 겪더라도 남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다.강유리가 그들에게 벌을 준답시고 마음 고생할까봐 지금 설득하고 그들과 대화해 보도록 권유하는 것이다.육시준은 그녀의 '심쿵'한 눈빛이 느껴졌는지 시선을 그녀의 입술로 옮겼다. "유리, 지금 진지한 얘기 중인데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지."육시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멀리 떠돌던 강유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육시준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강유리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뭐요, 제가 뭘 어떻게 쳐다봤다고. 저도 지금 진지하게 고민 중이거든요. 점심으로 뭐 먹을래요?"육시준은 씩 웃고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좀 있으면 알게 될 테니 일단은 나가 있어요."강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싱
성신영은 몸을 떨며 갑자기 그를 돌아보았다. "너는 나를 때리면 안 돼! 너는 아직 고성 그룹과의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어, 나를 죽이면 내 아버지가 널 가만둘 것 같아!""고정남은 지금 자기 여자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 내 여자까지 신경 쓸 겨를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네가 망친 게 이 결혼식뿐인 줄 알아?"성신영의 신분과 이미지는 이미 강유리보다 훨씬 못하다. 따라서 어르신의 태도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그래서 LK그룹에서의 육경원의 지위도 곧 무너질 기세다.이 생각에 육경원은 더욱 분노했고 허리띠를 채찍처럼 휘둘렀다."악! 육경원, 이 변태야!""변태? 네가 먼저 이 변태를 건드렸잖아!"육경원은 목소리가 뒤틀리고 더 세게 성신영을 내리쳤다."..."성신영은 가끔 어지러울 정도로 아팠지만, 그 말 때문에 의외로 머리는 맑았다.그래 맞다, 그녀가 먼저 그를 건드렸다.성신영이 제 발로 이 남자에게 다가간 것이다."육경원! 이 악마야! 너는 꼭 지옥에 갈 거야... 아!""걱정 마, 지옥에 가더라도 너랑 함께 갈 테니까."육경원은 지옥에서 온 악마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섬뜩하고 오싹하게 말했다...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성신영은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느라 몸부림칠 힘도 다 잃었다. 성신영은 숨을 죽이고 땅에 엎드려 있었다. 온몸은 핏자국으로 가득했지만, 얼굴만은 온전했다.육경원은 허리띠를 내던지고 헐떡이며 성신영 앞에 다가가 땀에 젖은 성신영의 잔머리를 손으로 부드럽게 정리해 줬다."가엾어라, 너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너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강미연의 병은 이렇게 빨리 나을 수 없기 때문에 계획상에서는 결혼식이 끝난 후 병세가 반복되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게 될 것으로 정했다.인터넷이 온통 결혼식에 대한 보도로 뒤덮였으니 당연히 그녀의 병세에 대한 보도도 있었다.결혼식이 끝난 후 사흘째 되던 날 주치의가 강미연에게 연락을 해왔다.강미연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병실 안의 시선이 모두 문에 가서 꽂혔다.소파에 앉아 있던 바론 공작은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방금까지 화제에 올랐던 사람이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이다. 강유리는 육시준의 옆에 서서 강학도 뒤에 서있는 남자를 쳐다봤다."작은이모 병세가 반복된다는데 제가 안 올 수 있겠습니까."강유리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바론 공작의 시종일관 엄숙한 표정에 모처럼 당황함이 느껴졌다."일부러 네 이모의 병세를 이용해 너더러 억지로 오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주치의가...""그럼 제가 온 걸 환영하지 않으시는 건가요?""당연히 아니지! 나는 그냥...""환영하시든 안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을 보러 온 게 아니니까요."강유리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말은 예의 발랐다. 단지 말투에서 존경이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거리감까지 느껴져 듣기에 조금 거북했다.이 말을 남기고 강유리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하이힐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어깨를 쫙 펴고 바론 공작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육시준은 그녀보다 두 발짝 뒤떨어져 걸었다. 앞에 있는 이 젊은 여인은 지금 자기가 고귀하고 도도한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줄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스러워 죽을 지경이다.육시준은 올라간 입꼬리를 곧 빠르게 누르고 강유리를 따라 들어갔다."몸은 좀 어떠세요, 이모님? 어디 편찮은 곳은 없으십니까?"육시준은 맑고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강미연은 강유리가 온 걸 보고 늘 우아하고 여유롭던 얼굴에 약간의 기쁨이 느껴졌다."의사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아직 조금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이 나른해. 머리도 조금 어지러운 것 같고..."강미연은 침대에 기대어 한 손으로는 관자놀이를 비비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았다.동작이 가식적이고 말투가 연약해서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릴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경련이 일고는 눈을 뒤집었다.저기, 좀 더 실감나게 연기할 수 없으신지."그럼 어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