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언니가 잘못 알고 있어요. 저희는 육경서 팬들과 싸워서 진 적이 없어요.”“...”댓글 창이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육경서 팬들은 신주리 팬들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자 한지원을 겨냥했지만 경서 오빠가 바보같이 되레 욕하지 말라고 부탁했다...‘이참에 아예 탈덕해 버릴까?’한지원이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나머지 게스트들도 연이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마도 피디가 일 층으로 집합하라고 한 모양이다. 육경서는 서진태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신주리 곁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고 혹시라도 누가 끼어들기라도 할까 봐 곁에 딱 들러붙어 앉았다. 그러자 신주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힐끗 보기만 했고 제지하지는 않았다. 서진태가 자기 옆에 앉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의외지만 서진태가 아래층으로 내려와 어제처럼 열성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신주리는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고 무의식적으로 강미영 쪽을 바라봤다. 소지석도 육경서와 거의 흡사한 행동을 했고 한 발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강미영의 뒤를 바짝 따랐다. 누군가를 경계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이모가 아직 사적으로 소지석과 소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서 선생님이 혹시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가?’‘아니면 해결책을 찾았기에 도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 없는 걸까?’이것 역시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피디가 입을 열면서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방금 강 대표님 메시지를 받았는데 도희 씨가 해결책을 제작팀 메일로 발송했대요.”피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서진태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그리로 전이되었다. 어제 강미영과 신주리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었다.‘목표를 전이한 거네.’ 역시 서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은 목표에 따라 전이되는 거였다.피디는 그런 서진태의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가볍게 기침하고는 계속해 말했다.“마지막 코너가 끝난 뒤 문서를 서 선생님 메일로 발송해 드릴게요.”그 말과 함께 서진태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고 초조하게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번 시즌은 조금 달랐다. 메시지는 거실에서 보내졌다. 모두가 모여 앉아 있었다. 보기엔 더 익숙해졌지만 실제로는 분위기가 더 미묘해졌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여러 번 메시지를 받았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메시지만 보내고 전혀 받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사람들의 표정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어쨌든 이 단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다. 만약 관리가 잘못되면 어색한 건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된다. 모두들 속으로 다 알고 있었기에 모두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유독 눈에 띄는 그 사람 말고는... 육경서는 신주리를 몇 번이나 훔쳐보며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신주리는 그의 신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결국 육경서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이미 준비해 둔 메시지를 보냈다. [일출이 정말 아름다워. 너랑 더 많은 일출을 보고 싶어. 다른 장소에서 일출을 보고 싶어. 예를 들면 바닷가 어때? 너도 원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꽃이 정말 예뻐. 정말 맘에 들어.] 육경서는 그 메시지를 보고 자연스레 입고리가 올라갔다. 조금 고개를 들어 보니 근처에 있는 꽃병이 보였다. 그가 직접 따 온 야생화가 정성스럽게 손질되어 꽃병에 꽂혀 있었다. “예스!” 그는 두 손을 꽉 쥐고 힘차게 일어섰다. 모두가 그를 보며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육경서는 얼떨결에 웃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는 다시 신주리에게 흥분과 기쁨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신주리는 품에 베개를 안고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은 어쩔 수 없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도 들지 않고 있었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연출한 의도는 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짓는 걸 보는 것이었지만 결국 계획은 틀어졌다. 그들은 결국 신주리의 어색한 표정만 보게 되었다. 육경서의 어리광 섞인 기쁨의 모습 덕분에 분위기는 자연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아, 미안해요. 주 선생님, 저 바꿀게요!” “둘이 웃을 때 진짜 달콤해!” “여러분, 이건 쌍방이에요! 지원 언니 첫 시즌에서는 그냥 감사의 메시지 보낸 거고 이번 시즌은 진짜 사랑이에요!” “아닐 수도 있죠? 그냥 고마울 수도 있잖아요. 두 시즌 모두 감사 인사라고요!” 댓글 창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목소리는 확실히 이전보다 많이 늘었다. 이 커플의 팬덤은 점차 조용히 확장되고 있었다. 한편 소지석은 화면에서 메시지를 수정하고 지우며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정말 진지해 보였다. 댓글들은 그를 보며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 무능한 지석아, 너는 채팅창에서 논문을 쓰고 있는 거야?” “용기 내서 물어요. 소 선생님은 전에 연애한 적 있나요?” “보기에 연애한 적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내 영혼이 소지석의 몸으로 들어가 메시지를 대신 보내고 싶어!” 많은 수정을 거친 후 소지석은 드디어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게 뭐야...?” “수정하고 또 수정하길래 대단한 메시지 올릴 줄 알았는데 결국 인사말이잖아?” 댓글 창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곧 이어서 다시 터져 나왔다. 소지석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메시지에 만족하고 있었다. 비록 글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다고 생각했다. ‘선배’라고 부름으로써 더 이상 후배로서의 위치를 벗어나 동등한 입장에서 그녀에게 다가간다는 뜻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은 것은 앞으로 동문 관계로서 그녀가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강미영은 이름을 제작진 팀에 보내는 데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지만 막상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려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첫 시즌에서 심수정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제작진 팀은 이 버그를 수정했
강미영은 서진태의 메시지를 읽고 대화창을 닫았다. 그때, 그녀는 다시 한번 익숙한 번호에서 미처 읽지 않은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며 메시지를 열어보았다가 다시 대화창을 닫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고 우아했으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소지석은 메시지를 보낸 후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잠시 떠오르다가 곧 불안과 기대, 그리고 실망으로 갈아탔다. 메시지 발송 시간이 다 되어 갔지만 그는 결국 전화가 울리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육경서의 흥분과 기쁨은 그의 얼굴에 숨겨진 억제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팬들은 그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속상해했다. 메시지를 보낸 후 이 프로그램은 본래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감독이 갑자기 모든 출연진을 불러 모은 뒤 서진태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고 싶은 다음 여행지를 적으라고 했다. 서진태와 주상현은 이미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적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적었고 제작진 팀은 무작위로 그들의 소원을 이뤄주기로 했다. 이 제안은 첫 번째 시즌에서 강미영이 제안한 것이었다. 소지석은 메시지를 보낸 후 몰래 몇 번이나 강미영을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평소처럼 여유롭고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그녀가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녀는 분명히 당당하게 그를 마주할 것이고 말속에서 서슴없이 선을 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실망 속에서 다시 희망의 불꽃이 일어났다. 그녀의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은 어쩌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쟁자를 살펴봤다. 육경서 외의 두 명, 이단호와 서진태였다. 그의 시선은 이단호와 서진태를 스쳐 지나가다가 결국 서진태에게 멈췄다. “서 선생님, 이번 여행을 마치고 목적을 달성하셨다면 프로그
소지석은 그 질문을 던진 후 사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서진태가 아마 생각을 바꿔서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 답을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만약 떠나고 싶다면 위약금은 별일 아닙니다. 한의학을 위해 헌신하는 거라면 제작진 팀도 이해할 거예요.” 만약 지금 그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영화의 황제인 소지석이 복수할까? “제작진 팀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위약금 제가 대신 낼게요.” 소지석은 담담하게 덧붙였다. 서진태는 잠시 멈칫하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지석 씨 나이대에 이런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사실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이유가 진짜 이유가 아닐 때도 많죠.” 상대방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서진태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여유롭게 받아치며 오히려 상대가 너무 강하게 나오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소지석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순수한 마음이라...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서 선생님이 더 뛰어나시죠. 어쨌든, 어떻게 아세요? 제가 한 제안이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일 수도 있다는 거?” 그 말이 떨어지자 분위기 속에 확실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대화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어리둥절한 표정과는 달리 육경서와 신주리는 얼굴에 가득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맞아! 바로 이런 거지! 싸워라!” “서로의 진심을 드러내. 넌 그냥 적을 없애고 싶은 거잖아!” “자, 이제 작은 이모에게 다 말해줘...” 그들은 서진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소지석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겸손한 군자, 온화하고 예의 바르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번엔 이렇게 정면으로 갈등을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서로를 은근히 겨냥하는 모습에 어린애 같은 뉘앙스까지? 그리고 둘의 뉘앙스도 너무 얕았다. 생각에 잠긴 그들이 동시에 눈을 돌려 강미영을 향한 눈빛을 던졌다. 그들의 반응에 댓글 창은 폭발적이었다. “하하하, 경서
육경서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우상과 작은 이모 두 사람 모두에게 불편하게 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소지석과 강미영의 관계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자신들이 몰래 전달한 쪽지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작은 행동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분위기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감독은 출연자들의 소망 여행지 리스트를 수집한 뒤 갑자기 선포했다. “남은 여행지 중에 두 명의 출연자가 동일한 목적지를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지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겠습니다. 세 번째 시즌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있어 출연자들이 일정을 짤 필요 없이 제작진 팀에서 모든 일정을 준비할 것입니다.” 모두 어리둥절했다. 제작진 팀의 일정 변경에 놀란 것도 잠시 그들은 더욱 놀랐다. “도대체 누가 같은 목적지를 쓴 거지?” 한지원은 신주리와 육경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너희 둘인가? 방금 쪽지로 얘기한 거 아니야?” 둘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쪽지로 얘기한 건 그냥 뒷담화였다고 하면 믿겠어?’ 제작진 팀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육경서는 아이돌과 팬의 관계를 고려해 소지석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지석 형, 오늘 저녁은 작은 이모 집에서 식사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소지석은 잠시 당황했다. “가.” 강미영은 의아했다. ‘왜 나와는 상의도 없이 우리 집에 오는 거지?’ 불만은 있었지만 이미 말이 나온 이상 그녀는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거절하지 않았고 그냥 릴리네도 같이 오라고 말했다. 해가 지고 성씨 별장의 불빛은 환하게 켜졌다. 강미영은 미리 집에 전화해서 아버지에게 오늘 저녁 손님이 오니 릴리도 돌아올 예정이라고 알리고 저녁 준비를 부탁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거실에는 세 명뿐이었다. 강학도는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젊은
강미영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그동안 이 가족의 연기력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드라마를 그녀 앞에서 너무 서툴게 펼쳤다. 손님을 보내고 난 뒤 그녀는 꼭 그들에게 제대로 한 번 교육을 시켜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팔꿈치를 밖으로 굽히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정원에 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강미영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빠르게 통유리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강학도의 검은색 세단이 정원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눈가가 미세하게 떨린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결국 이 아빠가 팔꿈치를 밖으로 굽혔고 릴리 그 자식도 그녀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 아저씨는 릴리 데리러 갔어요?” 갑자기 소지석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강미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노인네는 늘 릴리를 봐줘요.” 소지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게 맞죠.” 분위기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소지석이 묵묵히 눈치채지 못한 척하고 있어 강미영은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다시 소파로 돌아가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일단 먹어요. 릴리 그 녀석은 시간 개념이 없어서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좋아요.”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소지석은 계속해서 얕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일에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던 강미영이 지금은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표정에서, 움직임에서, 그리고 말투에서까지 느껴졌다. 예전에 그는 릴리와 함께 강 할아버지라고 불렀었는데 이제는 강 아저씨라고 부른다. 강미영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을 인정한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소지석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고 말속
소지석은 그녀의 감정 변화를 느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지금의 당신이라면 학생으로 다시 학교에 가는 건 힘들겠죠? 아마 교수로 신청하는 게 더 현실적일걸요?” 사람은 모두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했고 강미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농담을 던지자 마음속에서 일었던 불편한 감정도 빠르게 사라졌다. “너무 과찬이네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르칠 수 있는 게 너무 많죠! 믿거나 말거나, 당신이 대학에서 명예 교수로 이름을 올리면 학교 측에서 구걸할걸요? 심지어 일부 명문 학교에서는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당신을 끌어들이려고 할 거예요!” 강미영은 결국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녀는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담 식의 아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온화한 성격과 안정된 감정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가 지금 그녀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그녀는 차갑게 선을 긋기 힘들었다. 만약 그의 호감이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으면 차라리 마음을 조금 열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젠 모두 어른이고 문제 될 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대부분의 인생을 전체를 배려하며 살아왔으니 이제 한 번은 자신을 위해 이기적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왜요?” 소지석은 그녀의 침묵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물었다. 강미영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은 맑고 부드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긴장된 기색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잠시 흔들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당신은 제 후배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이렇게 저를 무서워해요?” 소지석은 본능적으로 반박했다. “그런가요?” 강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주었다. “그래요. 이제 더 이상 후배가 아닌 걸 깨닫지 못한 거죠?” 소지석은 고개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